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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건축 세운 '주춧돌' 4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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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면

*** 이희태 경주박물관

이희태 건축이 풍기는 인상은 한국적 정감이요, 본질은 형식미이다. 형식미에 치중해 있기에 형식을 이루는 다양한 조형언어가 중요하다. '경주박물관'은 기하학적이고 입방체적인 특징을 잘 보여주는 건물로 정사각형의 평면에 기와지붕, 곧 형식미와 한국적 전통을 지녔다.

지붕-기둥-기단으로 이어지는 형식체계로 이해할 수 있다. 이런 형식을 이루는 지붕형태, 기둥의 배열, 기단부의 형성, 벽체와 창호의 구성, 지붕과 기둥의 관계, 기둥과 기단부의 관계가 이희태 건축을 결정하는 중요한 건축언어들이다. '절두산 성당' '국립극장'에서도 그 감각과 정감을 느낄 수 있다.

*** 김중업 서산부인과 병원

김중업이 지은 건물은 기하학적인 딱딱함에서 벗어나 콘크리트가 이루는 자유스러운 곡선의 가능성을 열어놓았다. 그는 생전에 "건축이란 하나의 뚜렷한 사인(sign)이며, 인간의 감성에 던져지는 강한 몸짓"이기에 "삶에의 희열 또는 새 삶에의 찬가를 부른다"고 말했다. '서산부인과 병원'은 둥근 면에 뚫린 구멍들, 그 사이로 살짝 붙어 돌아가는 발코니들로 이런 기쁨을 표현하고 있다. '증식하는 원'이란 파격적인 조형언어는 김중업 건축을 대표하는 하나의 상징이다. 그의 건축은 보는 이에게 감동을 불러일으키는 시적 울림에 기울어 있다. '프랑스 대사관' '올림픽 기념 조형물, 평화의 문'이 그 시적 열정으로 남았다.

*** 김종성 경주 선재미술관

김종성씨가 일관되게 매달려온 주제는 테크놀로지와 보편적인 공간에 대한 탐구이다. 이성적이며 과학적인 이론을 건축에 적용해 모더니즘 건축이 계속 진화하고 있음을 주장한다. 그는 나날이 발전하는 기술력을 시대정신으로 바라보며 건축미에 통합시켰다. 이런 김종성 건축의 특징이 한국미 또는 한국의 지역성을 축으로 작업했던 다른 세 건축가와 그를 구별하게 만든다. '힐튼호텔' '육사도서관' 등 그가 일군 1천개가 넘는 프로젝트는 그런 끊임없는 노력의 결과물이다. '경주 선재미술관'은 모더니즘 건축의 화려한 부활을 희구하는 이 건축가의 꿈을 읽게 한다. 기술을 고도의 정신성으로 통합하는 꿈이다.

*** 김수근 공간사옥

김수근은 55년이란 짧은 삶 동안 '공간사옥' '잠실 올림픽 주경기장' 등 2백여 채가 넘는 건축물을 설계했다. 그는 한국의 전통건축이 지닌 공간적 특징에 천착해 그 깊고 그윽한 맛을 현대적 건축언어로 이끌어낸 첫 건축가로 꼽힌다. '공간 사옥'은 이런 생각을 최초로 실험한 건물로, 겸허와 실질과 소박의 아름다움을 아우르며 '내가 바로 한국이노라'고 말하고 있다. 공간이 자연 속으로 자연스럽게 담기도록 건물과 건물, 공간과 공간을 서로 엇물리게 한 그의 건축은 '둘러싸여 있으나 결코 막히지 않은 공간'으로 요약된다. 그는 한국 건축의 새로운 이념을 세우기 위해 동분서주했던 다재다능한 인간이었다.

<바로잡습니다>

◇2월 19일자 S8면 이희태의 설계작인 '경주박물관'기사 중 사진이 경주박물관이 아니라 부산시립박물관으로 잘못 나갔기에 바로잡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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