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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춘「중앙문예」당선 소설|매일 죽는 사람-조해일 작·김송번 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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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일요일데도, 그는 죽으러 나가려고 구두끈을 매고 있었다. 그의 손가락들은 조금씩 떨리고 있었다. 마음의 긴강이 손가락 끝에까지 미치고 있는 모양이었다. 3년 동안이나 그의 체중을 견디어 내 준, 그의 검정색 구두는 이제 더 이상 참아 낼 힘이 없다는 듯이 피곤하고 악에 받친 표정을 하고 있었다. 일찌기 초식동물 (초식동물)의 가죽이었던 부드러움과 제학공의 숙련된 솜씨가 빛어 낸, 한때의 윤택은 이제 굳어지고 찌들어서 본래의 모습과는 다른 어떤 것이 되어 있었다. 그것은 사람의 발에 신겨진다는 것이 이제는 조금도 영예스러울 것이 없다는 듯, <제발 이젠 좀 놓아주었으면>하는 지친 노예와도 같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몇 번이나 줄을 갈아가면서까지 이 놈을 묶어 두고 있었던가? 그런데 이 놈은 또다시 말썽을 부리려 하고 있다. 오른쪽 구두의 양날개를 잡아 매기 위하여 좌우 세개씩의 구멍을 엇지르며 나란히 꿰어져 나간, 실로짠 구두 끈의, 오른쪽 두번째 구멍과 닿아 있는 부분이 닳아 빠져서 끊어지기 직전에 있었다.
그것은 마치 사람의 발에 밟혀 허리가 터진 한 마리 작은 송충이의 형상을 닮고 있었다. 그는 어린애를 다루 듯 조심 조심 손 끝읕 움직였다. 어쩐지 이일에 실패를 하면 오늘 하루의 모든 일이 뒤죽박죽이 될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기실 마음이 조금만 대범한 사람이라면 매일 죽으러나 나가는 마당에서 구두 끈 같은 것에 신경을 쓰지는 않을것이다. 미리 적당하게 매어 두고 구두 주걱을 사용하거나 손가락 하나만 잠시 움직이면 될 것이다.
그렇게만 한다면 두 개의 손을 다 동원하고 이렇게 오랫동안 허리를 굽히고 있지 않아도 될 것이며 또 그렇게만 해왔더라면 구두끈도 좀더 오래 견디어 낼수 있었을 것이다. 그도 그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그러한 편리한 방식, 날림이라고도 할 수 있는 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최소한 자기 자신에게만은 그것을 허용하지 않을 방침이었다. 세상의 모든 편리한 방식, 세상 사람들이 추구하고 있는 모든 편리한 규범과 방식에 그는 지쳐 있었으며 나아가서는 간단하게 처리되는 일 전반에 대해 그는 증오심을 품고 있었다.
자칫하면 담박에라도 끊어져 나가 구두의 양 날개를 헤벌려 놓을 것만 같은 오른쪽 구두 끈을 조심조심 달래서 비끄러매는데 성공하고 나자 그는 허리를 펴고 일어섰다. 그리고는 어려운 승부를 이기고 나서 상대를 바라보는 득의에 찬 시선으로 아내를 쳐다 보았다. 아내는 그러나 구청의 민원담당계원과도 같은, 성의 없고 무표정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시위라도 하듯, 임신 7개월의, 커다랗고 질긴 고무풍선 같은 배를 끌어안고 방 문설주에 기대 서서 아무런 감동도 담겨져 있지 않은, 희뿌연 눈으로 태아 (태아) 의 아버지를 바라보고 었었다.
그는 곧 풀이 죽었다. 그의 승부의식은 전혀 빗나간 것이었고 끊어지려는 구두끈을 잘 비끄러 맸다는 사실 같은것은 그녀에게 아무런 존경심도, 또는 아무런 적개심도 이제는 불러 일으킬 수 없다는 것을 자기 자신에게 주의 시켜야 했다. 허리를 굽히고 있었음으로 해서 높아진 혈압이 평상으로 되돌아 온과 함께 그는 차츰, 매일 죽음을 겪어 보지 않은 사람이면 얻을수 없는 겸손한 침착성을 되찾기시작했다. 그리고 그는 아내의 낡고 빛 바랜 플라스틱 제품 같은 입술이 열리면서, <셋방삼이><저금><아파트><석달뒤에 태어 날 아이>따위의 말들이 그의 주의를 환기시키기 위한 노력으로 조용 조용하고, 짐짓 지나가는 말처럼 들리도록 꾸며진 냉담한 어조로 흘러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그 그 꾸며진 냉담성 뒤에서 주의깊게 번득이고 있는, 살아 남으려는 의지와 종(도)에 대한 애착심에 부딪치게 되어 조금쯤 서럽고 답답해지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아내는 그러한 그의 의중(의중)을 꿰뚫고 있다는 듯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영양 부족이고, 아무런 욕구도 담겨있지 않아, 희뿌연 두눈으로 남편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러한 그녀의 시선에 무언가 천착하는 듯한 질긴 번득임이 잠시 떠올랐으나 그것은 이내 사라지고 다시는 아무것드 떠오르지 않았다. 그리고는 종일이라도 그렇게 서있으려는 듯이문설주에 기대 서 있었다. 그녀가 바라는 것은 지극히 작은 것들, 예컨대 심구공탄을 백장 쯤 들여 놓고 집주인 아주머니에게 더러는 꾸어 줄 수도 있게 되는 일이라든가, 냄새 나는 일본 쌀이라도 좋으니 쌀을 한가마쯤 들여 놓고, 끼니때 마다 식량걱정을 하지 않아도 좋게 되는 일, 조금 크게는 아침마다 변소에 가는 습관을 가진 남편이 그 안에 선참자가 있음으로해서, 콩나물 십원어치를 쌌던 포장지를 구겨 쥔 채, 변소 앞에서 서성거리는 추한 모습을 보지않기 위해서라도 값싼 영세민 아파트에나마 들게 되는 일, 따위에 지나지 않았으나 그는 그중 어떤 것도 충족 시켜줄 수 있었던 때가 없었다. 하루 한번 죽는(그것도 거르는 날이 많았으나) 댓가로 받는일금 3백원중에서 점심으로 먹는 라면 값30원과 왕복 교통비인 시내버스 승차요금20원을 제한 2백50원이 그녀에게 전해지는 그의 보급(보급)의 한계였는데 그것으로 그녀는 그녀가 바라는 지극히 작은 소망 중 어느 한 가지도 충족시킬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그녀는 이제 아무 말도 하지 않음으로써, 아무런 표정도 지어 보이지 않음으로써 남편의 경각심을 일깨워 보려고하는 것 같았다. 일종의 시위, <나는 이제 당신에게 아무것도 바라지 않아요. 다만 석달 뒤에 태어 날 아기가 가엾을 뿐예요>라는 뜻의, 무언의 시위일는지도 몰랐다.
그는 그런 정도일 거라고 생각하면서 조금쯤 암담한 기분이 되어 집을 나섰다. 조금쯤 암담한 기분이라고한 것은 그가 아침의 이런 암담함에는 이미 익숙해져 있었기 때문이다.
다만 아내의 전술이라할까, 태도가 오늘 아침과 같이 고도로 억제된 형태를 갖추기 시작한바에는 그로서도 그에 대처하는 마땅한 전술을 따로이 생각해 보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을 뿐이다. 아내의 강세 앞에서는 무관심을 내건 겹겹의 말없는 수세로, 아내가 그강세를 교묘한 냉담성 뒤에 감추고 나설때에는 관심을 내건 겸손한 무관심으로 각각 대응해 오던 이제 까지의 기본전략은 다소 수정되지 않으면 안될 것 같았다.
자동차가 한대쯤 빠져 나갈수 있는 서울의 골목이라면 어디에서나 볼수있는 약방·이발소·미장원·복덕방·라디오TV수리점 등이 저마다 자기네가 거기 있다는 사실이 사람들의 무관심에 의해서 은폐되어, 생존(생존)을 위협받게 될 일에 반대하여 서투른 도안(도안)의 간판들을 내 걸고 있는 골목길을 빠져 나오면서 그는 그러한 전략의 수정에 대하여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그는 한가지 어두운 빛깔을 띤 생각에 부딪쳤다. 그것은 아내가 이제는 아주 절망해 버리고만 것이나 아닌가 하는 위구심이었다. 그때부터인가 보다. 그가 이름 지을수 없는 기묘한 상태로 빠져 들어가기 시작한 것은…. 그것은 일종의 보행상의 도착감이라고나 할까? 분명히 앞을 향해서 걷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꾸 뒤로만 물러서고 있는듯한 느낌….다리의 관절이 어딘가 풀려 버린듯한 허전한 느낌…. 그리하여 평상시에는 그의 집으로부터 10분이면 걸을수 있는 시내버스 종점까지의 거리를 20분이상 소비해서 걸었다. 그리고 종점에 도착하여 거기 대기하고있는 버스에 올라타려고 마악 오른발을 승강구에 올려 놓았을때 그는 구두끈이 끊어져 있음을 발견하였다. 순간 그는 발이떨어져 나가는 듯한 아픔 같은것을 느꼈다. 그것은 마치 돌부리에 채어 넘어진 아이가 뒤늦게 무르막의 피를 발견하고 더욱 기가 넘어가게 우는, 그런 심경같은 것이었다.
아야! 하고 그는 소리를 질렀는지 모른다. 먼저 타고있던 승객들이 일제히 그를 바라보았다. 하나 같이, 내가 남의 간섭을 받는 것도, 남에게 간섭하는 것도 귀찮다는, 피로한 무관심을 내걸고 있는 얼굴들이었으나 그들의 눈알은 그러한 그들의 의사를 배반하고 또랑또랑 살아있었다. 눈알의 그러한 배반에 대해서만은 그들도 통제하기가 곤란하다는 듯, 그대로 내버려 두기로 작정한 걱 같아다.
어쩌면 그들의 내부에는 눈알의 배반을 통제할만한 어떠한 힘도 이미 남아있지 않은 것인지도 몰랐다. 그리고 그때 앞뒤 두명의 차장은 <한 사람만 더타면 출발해아지>하는 속셈이 무언중에 서로 통하기라도 했는지 엉덩이부터 나란히 차 안으로 끌어 올리면서 익숙한 손 늘림으로 차체를 탕탕 쳤다. 커다란 차체가 꿈틀하고 앞으로 나가는 바람에 그는 앉으려는 의자를 일으킬사이도 없이 떠밀려 쑤셔 박혀서 버스의 맨 뒷좌석에 앉혀졌다.
차가 가속을 얻기 시각하자 숭객들의 시선은 아무런 일도 더 일어날 것 같지 않음에 실망하면서 각각 자기의 안저로 거두어 지거나 차창밖의 낮익은 풍경들로 보내어졌다. 그리고 그는 차츰 마음의 안정을 되찾기 시작했다. 보행의 속도가 느렸던 것은 아내 때문이 아니라 끊어진 구두 끈때문이었다는 것을 안 그는 힘을 주어 오른쪽 구두끈을 꽉 밟았다. 이제 아무도 그를 바라보는 사람은 없었다. 버스가 정류장과 만나는 횟수가 증가함에 따라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날 승객들로 하여 시야와 호흡, 그리고 신체의 자유가 최대한으로 제약받게 될 일에 대해서도 준비가 되어가고 있었다. 그것은 준비라기 보다는 기다림, 또는 기대라고 불러도 좋을, 그런 감정이 되어있었는데 첫번째 정류장이 그의 그러한 기대를 보기 좋게 배반해 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두번째 정류장에서 다시 한번 보기좋게 배반당한 뒤에야 그는 오늘이 일요일임을 깨달았다. 어쩐지 종점에서부터 승객수가 어느날 보다 적었다는 사실도 아울러 깨달았다. 뒤미처 깨달은 이 사실은 그에게 신선한 감명을 주었다. 시내버스의 맨 뒷좌석에 앉아서도 운전수의 뒤통수를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즐거운 일이며, 엿새의 낮과 밤 뒤에 하루를 온전히 쉬는날로 정한 인간의 지혜는 얼마나 아름답고 훌륭한가! 그는 운전수의 뒤통수를 바라보는 즐거움을 잠시 보류하고 창 밖을 내다 보았다. 마악 퍼지기 시작하는 가을아침의 햇살이 흘러가는 낮익은 풍경들의 껍질을 야금야금 벗겨가고 있었다. 그것은 죽은 사람의 눈꺼풀이 서서히 견어 올려져서 마침내 눈동자가 반짝 드러나기라더 하듯 건물의 유리창에서 번쩍 빛을 발하기도 했다. 그는 마음의 눈이 활짝 떠지는 듯 함을 느꼈다. 어쩌면 오늘 하루는 그럴듯한 날이 될는지도 모른다. 구두끈이 끊어졌다는 사실도 어쩌면 재수가 나쁘지 않으리라는 것을 반어(반어)로서 계시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자 그는 어이없는 활기에 사로잡히기 시작했다. 정말 오늘은 재수가 좋을는지도 모른다. 재수가 괜찮아주기만 한다면 공을 친다는 일 따위는 없을 것이고 어쩌면 두번쯤 죽을 수 있게 될는지도 모른다. 두번쯤…. 욕심이 너무 과한가? 하지만 재수만 좋아준다면 두번 죽는것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만일 두번 죽을 수만 있다면 일금 6백원…. 6백원이면 아내의 희뿌연 시선에 한줄기 생기를 보태 줄 수도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는 마음의 눈이 곧 침침해 옴을 느꼈다. 아내의 커다란 둥근 배가 앞을 가려 선것이었다. 그리고 그 둥근 뱃 속의 태아, 그 태아가, 자기의 성장이 지연되는 것에 반대해서 기를 쓰고 빨아 먹고있을, 아내의 재고부족일 유선 (유선), 그에 잇달아 쌀, 연탄, 아파트들이 그의 앞을 막아 선 것이었다. 그는 마음의 눈을 감았다. 그러자 정작 코 위에 달린 두개의 눈이 활동을 시작했다. 선명한 낮익음으로 흘러가던 풍경들이 별안간 낮설어 보이기 시작했다. 태연자약하고 시치미떼는 듯한 낮선 그림자가 풍경들 위에, 어두운 그늘을 만들고 있었다. 마치 아무런 대항도 받지 않고 몰래 진주해온 새벽의 점령군처럼 그것은 풍경 위에 있었고 풍경은 이러한 종류의 점령, 조용하고 아무런 떠들썩함도 없는 점령에 익숙한 포정으로 스스로를 맡겨 두거 있는것 같았다. 그들이 존재하기 시작한 때부터 주욱 그래 왔다는 듯이…. 그것은 생명의 개념에 반대되는 어떤것, 그가 일성의 순간 순간에서 본다고 생각하는 소멸(소멸)의 흐름이라고 할만한 것, 죽음옴이라고 불러도 좋은것의 그림자였다. 그때 차가 멎으며 일단의 요란한 등산객 차림들을 태우고 다시 떠났으므르 그는 풍경의 어두운 그림자로 부터 놓여 날 수가 있었다. 이 새로운 승객들의 옷차림이 우선 눈이 부시도록 밝은 것이었기 때문이다. 젊은남자 4명으로 구성된 그들 일단은 오늘 산 하나는 기어이 잡아 먹고야 말겠다는 듯한 기세등등한 얼굴을 하고 있었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러한 옷 차림을 갖추지 않으면 안된다는 듯, 한결같이 하얀 스키파커를 입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차에 오르는 순간부터 떠들어 대기 시작했던 것이다.
마치 그들의 젊음이 젊음이기 위해서는 이버스 안은 너무 좁으며 이러한 부당하고 협소한 장소에 일시적이나마 요금을 지불하고 갇히지 않으면 안되게된 이상 떠들어댐으로써 항의하는 방법 이외에는 도리가 없다는 듯이 버스의 손잡이에 체중을 매달고 난 뒤, 그들은 주로 치마의 길이가 가장 중요한 시대에 있어서 남자들이 선택해야 할 가장 유리한 시선의 각도에 대해서 거침없이 떠들어댔다. 육교밑에서의 시선의 각도와 지하도 층계 아래서의 시선의 각도에 대해서 그들은 커다란 소리로 의견을 교환했다. 그리고 그들의 의견이 행복한 일치를 보았을때 그들은 유쾌하게 웃어 젖혔다. 그는 그들의 상태, 이를테면 스믈 두셋 시절의 왕성한 다변(다변)이 낮익었다. 그도 한때는 여자들의 허영에 관한 이야기를 유쾌하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지금은 어떠한 이야기도 그를 즐겁게할 수는 없지만…. 그러한 그들에 대해서 공공연한 적대 감정을 표시할 수 있는 세력은 두명의 차장 뿐이었다. 남자의 수가 지배적인 전체 승객의 분위기는 어느 편인가 하면 얼굴로는 대체로 무관심을 표방하고 있으면서도 미상불, 귀를 즐겁게 해주는 그들 일단의 출현을 내심 기뻐하고 있는 눈치였다. 개중에는, 이런 유쾌한 화제에 도저히 한몫 끼어 들지 않고는 견딜 수 없다는 듯, 회오리 바람이 불었을 때의 시선의 각도는 신사의 체면을 조금도 손상시키지 않는다고 한마디 거들고는 그들과 함께 넉살좋게 웃어대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자 그들은 승객들의 분위기가 그들을 편들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그에 고무되었음인지, 또는 이러한 행복한 일치감은 몇번이고 반복해서 음미되어도 충분하지 못하다고 생각했음인지 다시 육교 아래서와 지하도 층계 밑에서, 그리고 회오리 바람이 불었을때의 시선의 각도에 대하여 좀 더 부연해서 의견을 교환하고, 그리고 다시 웃어젖혔다. 그때 그는 처음으로 그들의 이빨이 하얗고 가지런 하다는 사실을 발견했고 그들이 필요 이상으로 입을 크게 벌리고 웃었으므로 그 이빨의 안쪽에 숨어 있는, 검누른 니코틴의 퇴적을 볼 수 있었다. 순간 그는 그들이 쓰러지지나 않나 하고 걱정했는데 그것은 그가 그들의 이빨 뒷면, 니코틴의 검누른 퇴적 사이에서 홀낏 하나의 그림자, 음험하고 교활한 표정을 띤, 어두운 그림자를 보았다고 착각한 때문이었다. 이 착각은 그의 마음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고 말았다. 그가 보았다고 착각한 그 그림자는 소밀(소멸)의 조직이라고 할만한, 어떤 거대하고 비정적인 조직이 보낸 첩자(첩자), 이런 일에 잘 훈련되지 않은 종류의 인간에게는 좀처럼 눈에 띄지 않는 죽음의 첩자라는 느낌이었는데 별안간 그 첩자의 수많은 작은 분신들이 아직 정복되지 않은 세계의 모든 사물과 수작들 사이로 재빠르게 스며들고 있는 것 같은 두려운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음험하고 교활한 죽음의 첩자들은 무관심을 내걸고 있는 승객들의 피로한 얼굴 뒤 어디쯤에, 달리고 있는 버스의 바퀴들 사이에, 기름때 묻은 운전수의 소매 속에, 두명의 차장이 움켜 쥐고 있는 손때묻은 지폐들 사이에, 그리고 줄이 끊어진 그의 오른쪽 구두, 벌어진양 날개 사이, 어디쯤에 숨어서 그 노회(노회)한 눈초리를를 번득이며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고 있는 것 같아다. 그리고는 마침내 온 세계가 이들 죽음의 첩자들로 미만(미만)해 있는 것 같은 두려운 느낌이 들었다. -저 놈들 잡아라- 하고 그는 소리질렀는지 모른다. 아니면 가위눌린 어떤 소리가 그의 입에서 튀어나갔는지 모른다. 승객들이 모두 그를 바라보았다.
등산객 차림의 청년들도 웃음을 멈추고 그를 바라보았다. 더운날씨가 아닌데도 그는 땀을 흘리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승객들은 자기 혼자만 알수 있는 소리를, 자제력도 없이 벌써 두번씩이나 입밖에 내는 이사내에게 예의를 지킬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 모양인지 이제는 아무런 거리낌도 없이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이는 서른살 안팎, 다소 헐색이 나쁘긴 하나 그다지 못생겼다고는 할 수 없는 얼굴, 줄이 끊어져 헤벌어진 오른쪽 구두외에는 이렇다할 어지러움을 발견 할 수 없는 옷매무새, (비록 값싼 여름용 잠바차림이긴 했으나) 어디하나 미친 사람다운 구석은 없었으나 미친사람 가운데는 멀쩡한 외양을 하고있는 사람도 얼마든지 있다는 것을 알고있는 그들은 그를 미친사람 이라고 믿어버린 모양이었다. 등산객 차림들은 커다단 소리로 정신병의 유전에 관한 그들의 지식을 털어 놓고 다시 유쾌한 듯 웃어대기 시작했다. 모두들 그들의 의견에 찬동하지 않을수 없다는 듯한 표정으로 혹은 고개를 끄덕이고. 혹은 눈살을 찌푸리며 그의 얼굴과 줄이 끊어진 그의 오른쪽 구두를 바라보았다. 마치 단서는 바로 그 구두에서나 발결할 수 밖에 없다는 듯이….그는 그러한 그들의 시선을 피한다기 보다는 자기 자신의 두려운 생각에서 벗어나 보려고 고개를 돌려 창 밖을 내다 보았다. 두 줄의 낡은 선로 (선로)가 뒤로 빠져 달아나고 있는 것으로 보아, 버스는 지금 앞의 차를 앞지르기 위해 얼마전에는 전차의 궤도였던 곳을 달려 나가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죽음의 첩자는 바로 그 뒤로 빠져 달아나고 있는 선로의 틈새, 어디엔가 숨어서 함께 달아나며 그를 조롱하고 있는것 같았다. 그는 눈을 감았다. 그리고 한참 뒤에 떴다. 그제야 그는 그가 소유하고 있는 사방 수 평방미터 미만의 한정된 공간으로 확실하게 돌아와 있는 자신을 느낄수가 있었다. 그러나 그는 삶의 밝아보이는 모습 뒤에 음험한 빛깔로 숨어있는 죽유의 그림자에 관한 생각을 머리 속에서 지워버릴 수는 없었다.
등산객 패거리는 종로5가에서 내렸다. 거기서 차를 갈아타고 백운대나 도봉산 중 어느 하나를 잡아 먹기 위해서 다시 뗘날 모양이었다.
그는 종로 3가에서 내렸다. 도시의 가을 아침이 그를 에워쌌다. 이제 제법 퍼지기 시작한 햇빛과 바쁜듯 서둘러 대는 자동차들이 일으킨 먼지가 서로 악수하고 있었다. -자, 오늘 하루도 사이좋게 지냅시다. 우리가 지켜보고 있는동안 몇명이나 또 죽어 자빠지는가를 보기 위해서…. -그는 햇빛과 먼지의 속삭임을 귓전에 들으면서 횡단보도를 건넜다. 충무로까지는 한참을 걸어야 하는 거리다. 그러나 그는 이 길을 싫어하지 않고 있었다. 자동차 부속품 상점들이 찌든 어깨를 맞붙이고 있는, 세기극잠 건너편 길, 한 낮에도 항상 그늘이 져있는 것같은 이 길을 그는 좋아한다고도 할 수 있었다. 도시의, 저 마비에 가까운 활기의 주인공인 자동차들이 힘을 쓰지 못하고, 해체된 부분품으로서만 오글쪼글 모여 있는 곳, 물론 일시적이라곤 해도, 극성스러운 속도와 그 속도가 가지는 폭력을 잠시 보류당하고 있는 곳, 그는 이 길을 지날적마다 기묘한 안도감 같은 것을 얻곤 했다. 그러나 오늘은 어쩐지 뒤숭숭 하기만 하다. 역시 끊어진 구두끈 때문일까? 하고 그는 생각해보았다. 아뭏든 구두끈은 끊어져 있는 것 보다는 매어져 있는 것이 좋겠다고 그는 생각했다. 주위를 살펴 보았으나 구두끈 같은 것을 파는 곳은 눈에 띄지 않았다. 그리고 자기 주머니에는 지금 10원까리 한장도 들어있지 않다는 사실을 그는 곧 깨달았다. 어제는 공을 쳤던 것이다. 그저께는 1920년대의 권총에 맞아서 죽을 수가 있었다. 그끄저께는 시대와 국적이 미상한, 지팡이 속에 감춰진 칼에 맞아서 죽을 수가 었었다. 그러나 어제는 다방에서 엽차만 마셨던 것이다. 대학을 그만 둘 무렵만해도, 아니 군에서 제대한 직후만 해도 그는 이렇게 거의 매일을 죽음과 만나게 되리라곤 상상하지 못했었다. 물론 그것은 허구속의 죽음이었으나 회가 거듭됨에 따라 그것은 점차 음산한 실제성을 띠고 그를 사로잡기 시작하여 마침내는 일상외 순간 순간에서 마저 그것의 그림자와 만나게 되곤 하었다. 그러나 그는 이 일을 그만 둘 수가 없었다.
그만둘 수가 없었다기 보다 그는 이일에 매어 달리고 있었던 것이다.
정직했기 때문에 가난한 관리였던 그의 아버지가 과로로 쓰러지고 다시는 일어나지 못한 채, 동전 한닢, 땅 한조각 물려줄이 없이 세상을 떠났을때, (그때 임종시 아버지의 입가에 보일락말락 떠들던 철학적 단념의 옷음을 그는 잊을수가 없다.) 그는 문과대학의 신입생이었다. 향후 2년간을 그는 저 살인적인 대학의 납부금과 두 사람 몫의 식량을 버는데에만 소비했다. 그리그 다시 어머니마저 세상에서 쫓겨나자 (어머니가 위독해서 병원에 갔을때 의사는 수술비의 선불을 요구했다. 그러나 그에겐 돈이 없었다.) 완전히 외톨이가 된 그는 납부금을 물기 위해서만 대학에 다닐 이유를 찾아 낼 수 없어 대학을 그만두었다. 군대엘 갔다. 약간의 인내심을 배우고 속물이 되어가면서 3년동안을, 1주일은 7일이고 2윌을 제외한 모든 달은 30일 혹은 31일, 그리고 1년은 365일이라는 것을 생각하는 것으로 소비했다.
제대를 하자 갈 곳이 없었다. 옛날에 가정교사를 하던 집으로 찾아갔다. 옛날의 제자였던 소녀가 3년동안을 자라서 숙녀가 되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결합이 그녀 부모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쳤을 때 그녀가 보여준 용기에 감복해서 그녀와 결혼했다. 내리 사랑이지 치사랑 있더냐는 이치에 애소(애소) 해서 그녀가 부모로부터 얻어내온 최초이자 마지막인 구호금으로 셋방을 한간 얻고 살림을 시작했다. 그후 2년간 그는 그와 같은 종류의 인간에게 종종 반응하는 저 도시의 거부반응에 부딪쳐 다섯 차례의 취직시험에서 (그중 세번은 최종 면접에서, 보증인이 없다는 이유로) 떨어졌고 체력이 약하다는 이유로 네번이나 노동판에서 쫓겨났으며 그중 3개월은 늑막염으로 병상에서 보냈다. 그리고 나서 그가 완전히 껍질만 남은 인간이 되었을 때, 노상에서 만난 옛 중학교 친구로부터 귀띔을 받고, 나는 왜 여지껏 이다지도 어리석은 후회를 하였는가 하고 탄식했을 정도로 간단하게 얻어 낸 직업이 다방에 앉아서 죽음을 기다리는 일이었다.
다방엔 벌써 패거리의 일부가 나와 있었다. 그가 들어서자 그들은 얼굼을 쳐들어 아는 체를 했다. 하나같이 펑퍼짐하고 누르끼리한 몽고인종의, 개성이라곤 없는 얼굴들. 생물학적으로만 어른이 되어 있을뿐, 전혀 어린아이와도 같은 얼굴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 다만 저마다의, 동물적 영위에 어려움을 치러오는 동안 찌들어지고 질겨진 피부를 얻어가지게 되고 그러한 피부의 경화 내지는 퇴학에 의해서만 어른대우를 받고 있는 사람들. 김씨라던가 이씨, 혹은 박씨, 하는 식으로 저마다 불리는 호칭은 따로 가지고 있으나 그저 한 무더기의 사람들 일뿐, 한 무더기의 사람들로서만 필요할뿐, 한사람 한사람의 자격으로서는 별반 소용이 닿지않는 사람들,
도맷금이란 말이 있던가? 그 도맷금에 팔리기가 소원인 사람들. 그는 그 도맷금에 팔려가서 떼죽음을 당하게 되는 순간을 기다리기 위하여 패거리들 사이에 섞여 앉았다. 그러자 그도 곧 패거리의 한 부븐이 되었다. 그러나 의식만은 동떨어져서 계속 일련의 생각을 뒤쫓고있었다. 다섯 아이의 아버지이고 한 여자의 남편이며 한쌍의 늙은 부부에게는 아들인, 그래서 그들에게만은 소중하기 짝이 없을 김씨가 『무슨 좋은소식 좀 있읍디까?』하고 물었을 때에도 『글쎄요, 무슨 좋은 소식이 있겠읍니까?』하고 그는 건성 대답했고, 어린 두 동생의 형이며 한 과부에게는 아들인 박씨가 『아니, 저 구두끈은 왜 끊어졌어요?』하고 그의 오른쪽 구두를 눈으로 가리켰을 때에도 『아마 달아나려구 그런 모양입니다』하고 그들에게는 알쏭달쏭한 소리로 건성 대꾸 했으며, 한 때는 두 아이의 아버지였으며 한 여자의 남편이었으나 지금은 그여자가 그의 어깨에서 짐을 덜어 주기 위하여 두 아이를 데리고 다른남자에게로 시집을 갔기때문에 홀아비가 된, 따라서 그들 가운데서는 가장 짐이 가벼운 이씨가 『재수 있긴 다 틀렸구려』하고 눈살을 찌푸렸을 때에도 『그게그런가요?』하고 건성 마주 쳐다 보았을 뿐, 그의 의식은 계속 그들과는 동떨어져서 일련의 생각을 뒤쫓고 있었다.
그가 직업을 얻고 나서 최초에 맡았던 일은 관 (관) 속에 들어가, 시체가 되어 누워있는 일이었다. 그것은 그가 한 무더기의 사람들로서가 아닌, 개인의 자격으로서 취급을 받은 최최초이자 마지막 일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그다지 어려운일이 아니었다. 관속에 들어가 있는 동안, 그리고 촬영기가 타르르르 하는 가날프고 둔탁한 음향을 내고있는 동안, 호흡을 중지하고 신체의 어느 한 부분도 꼼짝을 못하도록만 통제하고 있으면 되는 것이었다. 그는 잘 참아냈다. 감독은 그때 그의 창백한 얼굴과 연기가 (이것더 연기라고해서 괜찮을지는 모르겠으나) 바로 시체에 흡사하였다 하여 만족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그후 그는, 어느 면에서는 그와 비슷한 종류의 인가를, 대체로 반항심이 없고 아무렇게 다루어도 잘 참아 내는 사람들, 이를테면 김씨, 이씨, 박씨 같은 사람들과 함께 주욱 죽는일에만 불려다니게 되었던 것이다. 그것은 주로 주인공의 성공을 좀 더 화려한 것으로 하기 위한 약간의 장애가 된 뒤, 월등한 실력의 차이, 예컨대 검술이나 사격술의 차이로 말미임아 간단하게 베임을 당하거나 사격을 당해서 죽는 경우가 태반이었는데 그러한 단순한 허구속의 죽음을 거듭해 오는 동안 언제가 한번 그는 실제로 죽을뻔 했고 죽음의 손길이 시시각각으로 온몸을 죄어오는 듯한 실감에 빠졌던 경험이 있었다. 실제로 죽을뻔 했다는 것은 단순한 우발사고 (화면효과를 위한 TNT 폭발로 생긴) 에 지나지 않았으나 후자, 즉 죽음의 손길이 시시각각으로 죄어오는듯 하던 경험은 두고두고 잊을 수가 없었다. 지난 여름, 유난히도 무덥던 어느날 저녁무렵 이었다. 장소는 양 옆으로 울창한 소나무 숲을 낀 꽤 널찍한 개활지였다.
아침서 부터, 점심도 먹지못한 채 혹사당하여 어느덧 저녁이 다가오고 있었는데 그는 백여명의 다른 사람들과 함께 그날의 마지막 작업을 위해 거기 시체가 되어 누워 있었다. 그것은 개활지 전체가 시체로 뒤덮여 있는, 한마디로 말해서 처절을 극한 장면일 것이었는데 이제 이날의 주인공인 박도식이 자기의 칼 한자루에 쓰러져 나간 이 무수한 시체들 사이를,일말의 수심띤 표정으로 천천히 걸어 지나감으로써 대단원의 막이 내려질 것이었다. 그리고 이때의 화면에는 ,아마 석양에 비낀 외로운 주인공의 그림자가 길게 음영(음영)질 것이었다.그는 그때 자잘 투성이인 땅바닥에 등을 붙이고 누워서 감독의 『레디·고!』소리가 떨어지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조감독들이 시체들 사이를 누비면서 마치 정말의 시체들을 다루는 태도로, 발로 툭툭 차서 자세를 고쳐주고 나간지도 벌써 한참이 지났다. 감독은 아마 해가 좀더 기울기를 기다리고 있는 모양이었다. 여름날, 해떨어질 무렵의 무더운 열기는 개활지 전체를 삼아 버릴듯이 가득 짓누르고 있었고 종일올 굶은 그의 위장은 자갈때문에 고통을 받고 있는 등뼈와 공모하여 반란이라도 일으킬 기미를 보이고 있었다. 처음에 그는 선무(선무)정책으로서 조금만더 기다려 달라고 이들에게 호소했으나 마침내는 중앙집권체제를 강력히 재인식 시킴으로써 이들의 반란태세를 누르는 수 밖에 없었다. 그러고도 한참을 더 기다린 뒤에야 <레디·고>는 떨어졌다. 주위에서 수선스럽게 숨을 길게 들이마셨다가 바로 토해 놓는 소리들이 들려오고, 노출된 신체 각부분의 통제상태를 검검하기 위한 부시럭 소리들이 잠시 들려온 뒤 사방은 드디오 거짓말 같은, 쥐죽은 듯한 정적 속으로 빠져 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날따라 기묘하게도 새소리, 바람소리 하나 없는 적막 사이를 촬영기의 저 가냘프고 둔탁한 소리, 타르르르 하는 필름 돌아가는 소리만이 외릅고 규칙적인 음향으로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는 눈을 감고 호흡을 정지한 채 그 소리를 듣고 있었다.
모든 호흡기관이 중앙집권체제에 반대하여 자꾸 들고 일어나려고 했으나 그는 역시 강압책으로 이를 누르고 있었다. 여름날 저녁의무더운 열기가 내려 누르고 있는 가운데 개활지 일대는 이제 완전히 죽음과도 같은 침묵 속으로 잠겨 들어 갔고 외롭고 규칙적인 소리를 내는 촬영기만이 계속 타르르르 하는 둔탁하고 가냘픈 음향을 토해내고 있었다. 그때부터였다. 그가 저 기묘한느낌속으로 빠져 들기 시작한 것은…. 모든 것이 다 죽어 있는데 유독 저 소리나는 기계만이 살아 있다는 느낌…. 그리고 그것은 허구 속의 죽음이 실제의 죽음으로 서서히 뒤바뀌고 있는 듯한 착각을 거쳐 마침내는 온 세계가 순식간에 커다란 죽음의 침묵 속으로 잠겨 버리고만 듯한 느낌이 되었다. 그러자 그의 신체 각부분에 어떤 변동이 오기 시작했다.
각부분이라고는 했지만 그것은 거의 동시에, 어떤 막아 낼수 없는 힘에 의해서 조종되는 것 처럼…그렇게 왔다. 반란의 기미조차 보이던 위장과 등뼈도 차츰 감각이 없어져 가기 시작했고 기회만 있으면 들고 일어나려던 호흡기관들도 서서히 수그러 들기시작했다. 혈관 속을 흐르는 피들은 점차 그 흐름의 속도를 늦추기 시작하는 것 같았고 모든 살갗은 체온이 빠져 나가는 것을 마지못한 채 서서히 식어가고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마침내는 촬영기의 저 둔탁하고 규칙적인 음향도 아득히 먼 곳에서 들려 오듯, 작고 가냘픈 소리로 끊일 듯 말 듯 들려 오다가 그것마저 들리지 않게 되었다. 오수(오수)와도 같은, 일종의 편안한 상태로 그는 빠져 들어갔다. 이제 살아남은 것은 오직 뇌수(뇌수) 뿐인 것 같았다. 뇌수만이 살아 남아서 이 편안한 상태에 반대하며, 한발 한발 다가 오고 있는 어떤 발짝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 것 같았다.
발짝 소리는 기이하게도 커다란 울림으로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불길하고 기이한 울림을 가진 그 발짝 소리는 점점 가까이 다가 와, 이제는 그의 뇌수를 걷어 차 버릴 수도 있는 지점까지 바싹 다가섰다. 뇌수는 피해야 한다! 피해야 한다! 하고 절망적으로 소리치고 있었으나 움직여 주는 기관은 하나도 없었다. 그리하여 마침내 그의 육신은 이상한 종류의 무정부 상태로 완전히 빠져 들어가고 말았다. 뇌수만이 외로이 살아 남아서 계속 절망적인 목소리로 피해야 한다! 피해야 한다! 하고 소리치고 있을뿐이었다. 그러자 발짝소리는 만족한 듯한 울림으로 서서히 멀어져 갔다. 아득한 곳에서, 감독이 『캇!』 하고 외치는 듯한 소리를 그의 뇌수는 들었으나 그는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주위에서 시체들이 줄레줄레 일어나며 움직이는 소리도 그는 들었다고 생각했으나 몸을 움직일 수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그는 아득히 길은 물 속으로 저항할 힘도 없이 자꾸만 빠져 들어가고 있는 느낌 속에 있었다. 기피은 수중에서 눈을 뜨고 있을때와 같이 희뿌연 빛이 눈 가죽안에 있었으나 점차 그 빛마저 흐려져 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는 더는 아무런 소리도 들을 수 없게 되었다.
나중에 그를 살려 낸 사람의 말에 의하면 작업이 다 끝나고 모두들 몰아갈 무렵이 될때까지도 그는 그냥 그렇게 누워 있더라는 것이었다. 이상하게 생각하고 그 사람이 다가가 발로 옆구리를 건드려 보았으나 마찬가지더라고 했다. 나중에는 조감독들까지 달려와 인공호흡을 한다, 팔·다리를 주무른다, 수선을 피우고 나서야 그는 죽음에서 깨어나는 사람처럼 간신히 숨을 토해내며 눈을 뜨더라는 것이었다. 그때 감독은 농담삼아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송장 칠뻔 했군, 그래. 하긴 연기를 하려면 저 정도의 경지엔 가야지』 라고.
그런 경험을 한 뒤로, 그는 일상의 순간 순간에서 섬뚝 섬뜩 죽음의 그림자와 만나는 착각에 빠지곤 했다. 밝고 확실한 걸음걸이로 오가는 거리의 사람들 모습 사이에서, 햇빛을 받아 번쩍 번쩍 빛나는 건물의 유리창들에서, 그리고 먼지와 매연을 뿌리고 달아나는 자동차의 바퀴들 사이에서도…. 사람들이 취하는 각각의 몸짓, 각각의 표정, 그들이 아무런 의식 없이 토해내는 언어들 사이에서도…. 그것은 우발사고로서의 죽음 보다도 더욱 어둡고, 더욱 갑갑하며 그리고 더욱 분명한 모습으로 그의 오관(오관)을 어지럽히기 시각했던 것이다. 하긴 누군들 매일 매일을 죽어 가면서 살아가지 않는 사람이 있으랴.
이제야 막 세수를 끈낸듯한 얼굴로 카운터 뒤에 나와 앉아서, 맞은편 벽의 거울을 들여다 보고 있는 저 레지 아가씨만해도 그렇다. 도시의 온갖 학대로 질겨지고 무뎌져서, 남자의 손이 엉덩이나 허백지쯤에 와서 닿는 것에는 별반 본능적인 수치심 같은 것도 일으키지 않게 돼 버린 여자, 저 여자의, 지금은 꽤 맑고 신선해 보이기까지 하는 얼굴 뒤에서 죽음의 세포가 야금야금 자라나고 있지 않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겠는가? 누구의 얼굴에 선들 그러한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있으랴. 생각이 여기에 이르자 그는 조금 가벼운 기분이 되었다. 좀더 펀안한 자세로 그는 등받이에 잔등을 기댔다. 한결 여유가 생기는 것 같았다.그러나 그때 레지아가씨가 그의 그러한 기분을 눈치 챘음인지. 그리고 그것을 방해하지 않으면 안되겠다고 생각한 모앙인지 거울보던 일을 그만두고 이쪽을 향해 걸어왔다. 오만하고 세련된 걸음걸이-라고 스스로 믿고 있고, 그렇게 걷는 자기 다리의 아룸다움을 과시하기 위해서만 걷는 듯한 걸음걸이-로 다가와서 거만한 미소를 입가에 띠며 (그녀는 그렇게 미소지음으로써만 자기 얼굴이 보다 아름답게 보인다고 믿고 있는 모양이다/)
『차, 드시겠어요』하고 물었다. 그것은 일종의 야유였다. 너희들에게 차한잔 마실 돈이나 있겠느냐는…지독한. 매일같이 출근하다시피 나와 앉아서 엽차만 시켜 마시는 너희들에게…라는 뜻의. 그는 이럴때에 어떻게 해야 레지 아가씨의 비위를 건드리지 않고 사양할 수 있는지는 아직도 배우지 못한 채있었다. 그러나 그는 우물쭈물 하지 않아도 괜찮게 되었다. 마침 그때, 그를 그러한 궁지에서 건져주기 위하여 조합(조합) 사람인 최씨가 나타났던 것이다. 최씨는 들어서면서부터 서둘러 댔다.
『빨리들 일어나라구. 차가 기다리구 있으니까』
레지 아가씨는 콧방귀를 뀌며 돌아섰다. 그리고 그는 김씨, 이씨, 박씨들과 함께 그들의 보스라고도 할수 있는 최씨를 반가와 하기위해서와 서둘리 일어나기 위해서 엉덩이를 들었다.
그가 김씨, 이씨, 박씨 들과, 또 다른 백여명의 사람들과 더불어 ㄷ영화사의 촬영소에 도착한 것은 따가와지기 시작한 가을 햇볕이 이미 가설돼 있는 세트장(장) 위에 가득히 내리 쬐고 있을 때였다. 세트는 이조중엽(이조중엽)의 어느 주막거리를 흉내내고 있었다. 대강 대강 욧점만 강조한 흔적이 여실한 페인트칠과 임시 용도를 위한 엉성한 조립으로 도무지 실물감 이라곤 나지 않는, 이 빈약한 의장(의장) 의 주막거리에는 그래도 마침 장날을 재현하기 위함인듯, 여기 저기 서투른 목수질의 좌판들이 늘어 놓이고 그 좌판들 위에는 각종의 가난한 상품들, 예컨대 포목류, 과일류, 어포류, 자기류 들이 올려 놓이고 땅바닥에는 곡물류, 나뭇짐, 갓, 지필묵 같은 것들이 늘어 놓여있었다. 그리고 미루어 주무대가 될 모양인 주막의 대문간에는 특별히 멋들어진 붓 글씨로 「주」자가 쓰여진 지등(지등)이 하나 외로이 걸려 있었다. 따가운 가을 햇볕에 몸을 맡긴 채….
이윽고 머리가 구둣솔 같은, 낯익은 얼굴의 조감독이 그들을 향해 소리쳤다.
『은하수 여러분, 집합하시오.』
「은하수」란 그들을 통칭하기 위해서, 바로 지금 이 고감독이 지어낸 이름이다. 배우가 밤 하늘에 영롱히 빛나는 하나 하나의 별(스타) 이라면 그들은 두루뭉수리란 소리겠지. 모두들. 모여 서자 작업 진행상의 몇가지 주의점과 지시사항을 하달하고 백명이 넘는 사람들을 몇 무더기로 갈라서, 『당신들은 포졸, 당신들은 행인, 당신들은 장사치, 당신들은 주막의 술꾼』 하는 식으로 각기 맡을 일을 정해 준 다음, 그들이 입어야 할 의상을 나눠 주기 시작했다. 그에게는 포졸의 의상이 주어졌다. 남색과 색, 그리고 검정색이 주조를 이루는 저 이조중엽의 포졸복, 마름질이나 바느질이 다같이·날림이고, 수 많은 사람들에게 입혀져서 낡아 빠지고 때묻은, 그리고 그 많은 사람들의 체취와 땀내가 배어 있어, 썩는듯한 종잡을 수 없는냄새가 코를 싸매게 하는, 의상이라기 보다는 넝마를 걸쳐 입으면서 그는 하루중 가장 견디기 어려운 시간을 맞기 시작했다.
오늘도 예외없이, 3백년 또는 그 이상의 오랜 과거로부터 끊임없이 이어져 온, 수만, 수십만의 이름 없는 주검들과 전 존재로는 연길되는 듯한 두렵고 답답한, 도망칠 수 없는 서먹서먹함에 그는 사로잡히기 시작했던 것이다. 하루중의 이 시간, 매우 낮익은 것이랄 수도 있으면서 그것으로부터 도망칠 수는 없는 서먹서먹함에 사로잡히는 이 순간이 그에게는 가장 견디기 어러운 시간이었다. 어떤 거대한 투망(투망)에 걸린 수만의 물고기, 한3, 4백년간에 걸친 가난하고 이름없는 주검들과 한 그물 속에 갇혀 버린 듯한 이 일종의 낮익은 서먹서먹함이 그에게는 가장 견디기 어려운 고통이었다. 3백년전의 포졸이 낮선 얼굴로 다가와서 <어이! 자넨가?>하고 손을 내미는 듯한 서먹서먹함…. 이때로부터 그의 하루의 일과 (일과), 죽어가는 일과는 가속을 얻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것의 혜택이라면 너무나 지겹게 받아 온 햇볕에 죽어가고, 그 햇뱉을 더욱 견딜수 없는 것이게 하기 위해 은종이를 발라서 번쩍 번쩍 빛나는 조명부패들의 반사판(레프라그 한다던가?)에 죽어가고, 배고픔(그의 주머니에는 오늘 10원 한장 들어 있지 않았으므로)에 죽어가고, 주연배우의 사전 연습 없는 연기로 해서 생기는 간단 없는 반복에 죽어가고, 그리고 감독과 조감독들의 사정없는 혹사에 죽어 가는 동안, 김씨, 이씨, 박씨들은 주막에 앉아 술을 마시고있다가 오늘의 악역인 고독성의 칼에 맞아 죽었다. 그리고 주막거리가 은봉 수라장이 되어 뒤얻어 지는 싸움판에서 또다른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그러나 그는 어떤 악덕사또의 심복무사(무십)일 고독성의 졸개였으므로, 그리고 뒤에서만 얼쩡대는 비겁한 졸개였으므로 아직 죽지는 않고 있었다. 그리하여 마지막 대회전 (대항전) , 오늘의 주인공인 신장균과 고독성의 최후의 결판을 위해 장소가 어느 이름을 알수 없는 왕릉 (왕능)으로 옮겨졌을 때 가을 햇빛은 이미 서서히 기울기 시작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이미 기진맥진해 있었다.
어느 임금의 능인지는알 수 없으되 그 거대한 규모의 무덤 앞에는 그 임금의, 생전의 의용을 말해 주는 번듯하고 놀따란 잔디밭이 마련되어 있었고 그 잔디밭은 이제 한 여름의 푸름을 잃고 시들어잔 누른빛을 띠고 있었다. 가을 햇빛은 그리고 그 빛을 서서허 거둬 들임으로써 잔디의 누른 빛을 회갈색으로 바꿔가고 있었다. 그는 수십명의 다른 포졸들과 함께 신강균을 세겹으로 포위하고 있었다. 고독성은 뒷전에서 독서만 하고 있을뿐, 아직 앞에 나서지는 않고 있었고 포즐들은 신장균과 근접한 순서로 한꺼번에 서너명씩 죽어나가기 시작했다. 언제 어디서 번쩍, 할는지 알 수없는 신장균의 검광은 제 주인의 신변을 보호하기 위해 화려하고도 날카로운 곡선을 그리며, 의상 아닌 넝마를 걸친 ,한 목숨 당 3백원 짜리 포졸들을 풀베둣 베어 나갔다. 그는 맨뒤 열에서 싸움의 중심을 향해 다가 들고 있었으므로 아직 차례가 오진 않았으나 거의 죽은 몸이나 다름 없었다. 배가 등과 달라 붙어서 제 주인의 무능함을 수근거리고 있었고 언제부터인지 옆구리가 뜨끔뜨끔 결리기 시작했다. 늑막염이 재발하려나, 하고 그는 생각했다. 그때 차례가 왔다. 그는 칼을 높이 치켜 들고, 온몸을 신강균의 칼에 내맡기기 위하여 드러내놓은 채 달려 들었다. 신장균의 칼이 번쩍 했다고 생각했다.
다음 순간, 그는 왼쪽 옆구리에 격렬한 동통을 느끼고 쓰러켰다. 베는 시늉만 하도록 되어 있는 것인데 신강균이 실수했음에 틀림 없었다. 진검이 아니라 나무를 깎아만든 칼에다 은분 (은분)을 바른것이었으므로 회장은 대수롭지 않을 것이었으나 옆구리로부터 가슴께까지 저려드는 듯한 동통을 참을 수 없는 것이 었다. 그러나 그 한사람으로 말미암아 촬영을 중단할 수는 없다. 그는 참아야 했다. 먼저 쓰러진 포졸의 시체위에 덧걸쳐 엎드려서 그는 이를 악물었다. 그러자 동통은 더욱 무섭게 저려드는 듯 했다. 촬영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 계속 되었다. 마침내 신장균과 고독성의 최후의 결전이 벌어진 모양으로, 이제 두 사람의 고함 소리와 나무칼 부딪치는 소리만이 단조롭게 들려오기 시작했다. 촬영기의 저 타르르르 하는 갸날프고 둔박한 음향과 함께…. 그리고 그는 자기의 목구멍에서 차츰 죽은 사람의 냄새가 나기 시작한다고 생각했다. 무언가 심하게 썩는 듯한 냄새와 썩고 있는 물체가 발산하는 연기(연기)가 목구멍 안에 있다고 느꼈다. 어디선가 3백년전의 포졸이 낮선 듯도 하고 낯익은 둣도한 목소리로 속삭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렇지, 자네도 별 수없이 죽어 자빠졌군. 보게, 임금도 죽고 말았거든> 하고. 그는 하마터면 벌떡 일어날 뻔 했으나 그러지 못했다. 우선 그의 의식속에서 아내의 희뿌연 시선이, 그러지 말라고, 그래선 안된다고 말하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고는 이미 일어날 기운조차 없을 지경으로 탈진해 있었기 때문이다.
최씨가 오늘의 첫번째 3백원읕 쥐어 주면서 그의 창백한 얼굴을 한번 힐끔 쳐다보고는, 야간 촬영이 있는데 나갈 수 있겠느냐고 물었을때, 그는 이미 손가락 하나 움직일 수 없을 지경이었으나 따라 나섰다. 라면 한그릇 사먹을 겨룰도 없이…. 그리하여 최씨가 그의 손에 오늘의 두 번째 3백원을 쥐어 준 것은 밤 11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주연배우가 무슨 까닭에서인지 나오지 않았으므로(빵꾸를 냈다고 일컫는다.) 보통이면 밤을 꼬박 새워야 할 일이 일찍 끝난 셈이다. 그러나 그는 그때, 바로 눈앞의 사물을 판단할 수 없을 정도로 흐리멍텅한 의식속에 있었다. 지금도 그것은 마찬가지다. 단지 자기는 지금 집으로 향하는 버스에 타고 앉아 있다는 사실과 이 버스는 아마 막차라는 사실, 그리고 몇몇 승객의 피곤한 얼굴과 졸고앉아 있는 차장의 가여운 모습이 먼풍경처럼 망막에 비쳐들고 있다는 흐릿한 의식 뿐….
그리고 참, 자기의 주머니에는 지금, 차징에게 10원을 지불하고 남은 일금 5백90원이 들어있다는 사실, 이 사실은 하늘에서 별을 따 왔다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과 한번 나란히 서 보고 싶을 정도의 굉장한 재수라기 보다도 앵운이라는점…. 그는 단지 아직 죽지 않은 근육과 뼈의 무게만으로 그렇게 달리는 버스에 앉아 있었다. 몇몇 송객이 자기를 바라보고 있는 것 갈다고 느꼈으나 그것도 분명치는 않았다.의식이 가믈가물 꺼져가는 것 같은 느낌도 풀었으나 그것 역시 분명치가 않았다. 그러한 그의 의식이 선명하게 되살아 나기 시작한 것은 버스가 종점에 닿아 그가 마악 오른발로 땅을 내려 딛으려는 순간이었다. 선뜻-. 했다. 그의 오른발은 맨발이었던 것이다. 발이 땅에 닿은 순간. 냉습한 어떤 술기같은 것이 오른쪽 다리를 통해 전신으로 쭉 끼쳐 올라왔다. 그리고 그것은 머리 끝에서 차가운 분열을 일으켰다. 머리 속이 물 벼락을 맞은듯 선명해 졌으나 구두가 어느 사이에 달아 나버렸는지는 생각해낼 수가 없었다. 다만 오른쪽 다리가 갑자기 뻣뻣해지기 시작하는 것을 느끼고 지금 그다리는 차고 습기 낀, 죽음의 외각 (외각)을 딛고 있다는 생각만이 선명했다. 그는 걷기 시작했다. 오른쪽 다리가 경직(경직)이라도 일으긴 듯, 뻣뻣하고 불펀했으나 그는 안간힘을 써서 걸었다. 골목익 가게들은 아직도 불을 켜 놓은 채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그에게는 그것이 마치 죽은 사람을 전송하기 위한 장의(장의)의 불빛처럼 보였다. 이태리에서는, 맨발은 바로 입관직전의 사자(사자)를 뜻한다던가? 그는 생각했다. 하긴, 어디 나만이 죽은 것이랴. 세상의 모든 사물이 커다란 소멸(소멸)의 흐름 속에 던져 진 채있다. 사진까지도….누구나 매일 매일 조금씩은 죽어 가면서 살고 있다. 어린 아이들 조차 그러하다. 아내의 뱃속에서 자라나고 있을 태아도 이를테면 죽음의 싹이다. 아내는 죽음을 배고, 그것을 키우고있다.언제부터인가 다시 옆구리가 뜨끔뜨끔 결리기 시작했다.
늑막염이 재발하려나 하고 막연히 생각하며 그는 구두가 신겨져 있지 않은발과신겨져 있는 발을 부자연스럽게 번갈아 움직여서 계속 걸었다. 마치 죽음의 발과 생명의 발을 하나씩 가지고 있는, 죽음의 발과 생명의 있을법한, 이상한 그림자 처럼… 그러다가 그는 자기의 왼쩍 발에는 아직 구두가 신겨져 있다는 깨달음과 만났다. 그리고 그는 놀랐다.
나는 아직 한쩍은 신고 있구나. -하는, 이 아무렇지도 않을수 있는 깨달음은 그를 놀라게 했을 뿐만 아니라 그의 마음올 어떤신선한 감명으로 떨게까지했다. 아, 나의 또하나의 발은 아직도 살아 있었구나! 이발은 그리고 따뜻하고 편안하구나! 이것은 튼튼하구나! 마치 반석파도 같군! 아내의 등근 배가 머리에 떠올랐다. 그녀 뱃속의 태아가 하고있을 몸짓이 상상돼 왔다. 그래, 그건 죽음의 싹이 아니다. 그렇게 불러선 안돼. 그는 걸음을 빨리했다. 아내에게는 지금 단백질이 필요하리라고 그는 생각했다. 주머니에는 지금, 일금 5백90원이 들어 있다. 그래, 쇠고기를 한근사자. 식육점의 문이 닫히기전에…. 저앞에, 펄펄한 소를 때려잡아서 피가 뚝뚝듣는, 싱싱한 고기를 팔고 있을 듯한 식육점의 불그레한 불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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