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취재일기

오바마의 골프, 청와대의 골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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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박승희
워싱턴 특파원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또 골프를 쳤다.

 오바마 대통령은 한국전쟁 정전 60주년 기념식이 열렸던 27일 오전 10시45분(현지시간) 워싱턴 한국전쟁 참전 기념공원에서 축사를 했다. 그러곤 백악관에 돌아와 채비를 갖춘 뒤 낮 12시17분 워싱턴 인근의 군 골프장인 ‘포트 밸브와(Fort Balvoir)’에 나타났다. 라운딩 멤버에는 한국전 기념일이라선지 한국계 백악관 참모인 유진 강이 포함됐다. 이날은 토요일이었다.

 정치전문지 폴리티코의 케이스 코플러 기자는 자신의 블로그에 “오바마 대통령이 한국전쟁 기념행사 후 ‘일상적인(usual)’ 토요일 골프를 나이 어린 참모들과 쳤다”며 “올해만 22번째, 취임 이래 133번째 라운드”라고 기록했다.

 ‘일상적’이라는 표현이 등장할 만큼 오바마 대통령의 골프 사랑은 유별나다. 군 통수권자(commander-in-chief)에 빗대 별명이 ‘골프 사령관(Golfer-in-Chief)’일 정도다. 지난달 9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캘리포니아의 휴양지인 랜초 미라지에서 세기의 만남을 가진 뒤 자투리 시간을 이용해 9홀을 돌아 화제가 된 일도 있다. 당시 기온이 43도를 웃돌아 설마 폭염 속에서 골프를 칠까 했지만 어김이 없었다. 7월 4일 독립기념일에도 행사 뒤 시카고 친구들과 군 골프장으로 향했다.

 미국에서도 대통령의 골프는 종종 시빗거리다. 연방정부 재정적자로 비밀경호실 예산을 아끼기 위해 일반인들의 백악관 투어를 줄이자 야당인 공화당에서 “대통령 골프를 위한 경호 예산을 차라리 줄여라”고 공격하기도 했다. 하지만 야당을 제외하곤 대통령의 휴일 골프를 비난하는 목소리는 작다. 워싱턴포스트 등 언론들은 “국정 운영을 위해 야당 의원들과 골프를 쳐라”고 충고하는 정도다. 대신 대통령도 머리를 식혀야 하는 것 아니냐는 반론이 더 크다.

 3·1절 골프가 시비가 돼 총리가 사퇴하고, 수해 골프·산불 골프로 하루아침에 옷을 벗는 상관들을 지켜봐 온 나라의 공무원들로선 참으로 부러운 골프 문화다. 1962년 한장상 프로에게 골프를 배운 박정희 전 대통령은 68년 대법관 전원에게 “골프를 하면서 시야를 넓혀라”며 골프채를 선물했다고 한다.

 그러나 청와대에선 휴가철 골프를 놓고 아직도 갑론을박이 한창이라고 한다. “각자 알아서 하면 된다”에서부터 “대통령이 아직 골프를 허락한 건 아니다”까지.

 ‘공 치는’ 운동인 골프가 한국에선 여전히 ‘골치’인 운동이다.

박승희 워싱턴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