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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왕이면 바람막이用 여권 인사 채용이 더 이익”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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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3호 07면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장을 지낸 박진 전 의원(3선)은 23~25일 미얀마를 찾아 양곤대에서 특강을 했다. 올 3월부터 석좌교수로 있는 한국외대가 이 대학과 교류하고 있어서다. 그는 그간 한국외대 정치외교학과·통번역대학원·로스쿨에서 특강을 해 왔다. 학교 학술회의 사회를 맡아 주한 유럽연합(EU) 대사를 접견했고, 교수와 학생들이 외국 인사나 단체와 연결되는 것을 도왔다. 언론에 기고문을 내면서 ‘한국외대 석좌교수’로 표기해 학교 홍보에도 신경을 썼다. 그는 학교에서 월 300여만원과 연구실을 지원받는다.

‘정치인 교수’ 쓰는 대학들의 손익계산서

박 전 의원은 “학교 측 제안으로 석좌교수가 된 뒤 생생한 경험담을 전하고 학생들과 만나려 노력해 왔다”며 “국회에 있을 때보다 더 생산적으로 일한다”고 자평했다. 내부 평가도 괜찮은 편이다. 이 학교 3학년 문모(22)씨는 “청강을 해 봤는데 외국인 학생들도 강의를 듣고, 영어 질의응답이 이어지더라”고 했다. 학교 관계자는 “박 교수가 유엔평화대 공동 학위를 위해 올여름 코스타리카로 나가는 학생 10여 명을 수업 외적으로 돕는 등 평가가 좋다”고 말했다.

#김종인 전 새누리당 국민행복추진위원장은 올 3월 가천대 경영대 석좌교수가 됐다. 그의 석좌교수 생활은 건국대(2003년)·한국외대(2011년)에 이어 세 번째다. 그는 이전에 17대 국회의원으로 당선됐을 때, 박근혜 대통령 캠프에 합류했을 때 석좌교수직을 그만뒀다. 올해엔 학생 500여 명이 듣는 교양수업에서 특강을 한 차례 했을 뿐 다른 강의를 하지 않았다. 학교 관계자는 “활동이 별로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대학발전계획을 짜는 것도 자문한다”며 “김 전 위원장은 창조경제 개념을 만들었고 실물 경제의 대가 아니냐”고 말했다. 이 학교는 진수희 전 보건복지부 장관, 하금열 전 대통령실장도 올 3월 석좌교수로 임명했으나 정규 강좌를 연 건 진 전 장관(‘현대사회와 복지’)뿐이었다. 가천대는 올 2학기엔 고흥길 전 특임장관을 행정학과 석좌교수로 영입했다.

정치인의 대학 진출이 이어지고 있다. 석좌·특임·초빙·주임 등의 이름이 붙는 ‘비전임 교원’으로서다. 올 들어 임용되거나 임용될 예정인 정치인만 12명에 이른다. <표 참조> 이 중 2명(박선숙·김민석 전 의원)을 빼면 대부분 여권 인사다. 민교협 상임의장을 지낸 이도흠 한양대 교수는 “교육부에서 지원금을 따내거나 사학 비리를 온정적으로 처리하도록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정치인들을 대학들이 선호한다”며 “일종의 보험에 드는 셈”이라고 말했다. 정치인들도 과거엔 정치 공백기에 외국행을 택하거나 칩거했지만 최근엔 경력을 관리할 수 있는 교수직을 선호한다.

“보험용” vs “미자격자 전관예우”
정치인 출신 교수가 받는 대우에 대해선 대다수 대학이 쉬쉬한다. 본지 확인 결과 정규 강의를 하기로 한 박선숙 전 의원 등만 월 300만원대의 연구격려금을 받기로 했을 뿐 박희태 전 국회의장 등은 보수를 받지 않는다. 나경원 전 의원도 올 2학기에 강의를 할 때 소정의 강의료를 받기로 한 것으로 나타났다. 대신 연구실은 제공받는다. ‘명예직’ 성격이 강한 셈이다.

그러나 이를 부정적으로 보는 교수와 학생들도 많다. “자격이 안 되는 이들에 대한 전관예우”란 이유에서다. 하지만 대다수 대학은 학내에서 반대운동을 벌여도 정치인 교수 임용을 포기하지 않는다. 이에 본지는 대학 구성원들을 접촉해 사례마다 ‘손익계산서’를 따져 봤다.

한국외대는 정치인 교수들에 대한 만족도가 높은 편이었다. 국제지역대학원은 박진 전 의원 이전에도 이 대학 출신인 문국현 전 창조한국당 대표를 초빙교원으로 썼다. 대학원 관계자는 “환경운동을 해 온 문 전 대표가 유엔개발계획(UNDP)센터에 학생들이 참여할 기회를 줬고, 국제 학술행사를 열 때 이름만 들어가도 홍보가 잘되더라. 행사 예산을 따는 데도 도움이 됐던 게 사실이다”라고 말했다.

단국대도 한때 ‘386 대표주자’로 불리다 정치자금 수수 혐의로 벌금형을 받은 김민석 전 의원에게 올 1학기에 교양과목을 맡긴 데 이어 2학기에도 ‘시사콘서트’ 강의를 배정하기로 했다. 김 전 의원은 행정법무대학원 코리아리더십스쿨 주임교수란 간판으로 최근 2012년 대선을 평가한 ‘대선의 법칙과 미래’ 보고서를 내놓아 화제가 됐다. 학교 관계자는 “김 전 의원은 법학 박사 학위가 있어 자격도 되고 학교 행사에 적극 참석해 원우들이 좋아한다”고 전했다. 대학들은 정치인 교수의 장점으로 ^채용과 해고 과정이 간편하고 ^학교에 있다가 정·관계에 재진입하면 ‘연줄’이 생긴다는 점을 든다.

그러나 정치인을 교수로 임용했다가 쓴맛을 본 대학들도 있다. 건국대는 올 3월 박희태 전 국회의장을 법학전문대학원 석좌교수로 임용했다가 학생 반발과 부정적인 여론을 감수해야 했다. ‘전당대회 돈봉투 사건’에 연루됐던 박 전 의장이 특별사면된 지 얼마 안 됐다는 이유였다. 학교 관계자는 “박 전 의장이 대학원 동문인 데다 부인도 교수를 지냈고, 적극적으로 동문회에서 활동해 와 무보수 명예직 석좌교수로 임명했는데 학생들은 등록금으로 석좌교수를 운영하는 것 아니냐고 오해하더라”며 “논란이 있는 정치인의 경우 언제 어떤 식으로 석좌교수로 임명해야 할지 고민을 던져 준 분”이라고 평했다.

한국외대·한양대 희비 엇갈려
한양대도 오세훈 전 서울시장을 올 3월 특임교수로 임명했으나 교수ㆍ학생들이 “실패한 행정가를 교수로 임용하는 건 적절치 않다”며 임용 철회 요구 서명운동을 벌였다. 그러나 오 전 시장의 올 1학기 ‘고급 도시행정 세미나’ 수업은 “다른 강의보다 듣는 학생이 많았고 평도 좋았다”고 전해진다. 한양대는 김영삼 전 대통령의 아들 김현철 전 여의도연구소 부소장을 대학원 특임교수로 임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학교 관계자는 “아직 임용이 확정되진 않았는데 김 전 부소장 측이 ‘글로벌 국정관리 세미나’ 강좌를 맡기로 했다는 보도자료를 냈다”며 “최종 결정은 8월에 나오는데 정치 성향에 따라 김 전 부소장에 대한 평가가 엇갈리는 만큼 대학 측도 조심스러울 필요가 있다는 게 내부 분위기”라고 전했다.

정치인 교수 중엔 임용에 앞서 “로비 등엔 관여하지 않겠다”고 선을 긋는 이도 있다. 올 3월 부산대 석좌교수가 된 김형오 전 국회의장의 측근은 “김 전 의장은 대학 행사나 예산 유치에 도움을 받으려는 목적으로 임명하는 거라면 사양하겠다는 걸 전제로 석좌교수 제의에 응했다”고 전했다. 여러 대학에서 석좌교수 제안을 받았으나 부산대를 선택한 건 국립대인 데다 자신이 활동해 온 지역의 후학들을 위해서란 생각에서였다는 설명이다. 김 전 의장은 교양강좌를 했을 뿐 학교 행사 유치 등에 관여하지 않는다고 학교 관계자도 전했다.

그러나 대학들로선 정치인 교수를 대정부 로비의 통로로 활용하려는 유혹이 커질 거라는 전망이 많다. 최근 국회에서 국회의원과 대학교수의 겸직을 금지하는 법안이 상임위 법안심사소위를 통과하는 등 대학을 대변해 줄 수 있는 교수들의 국회 진출이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이도흠 교수는 “대학이 정치인을 정부와의 연결고리로 활용하려는 건 대학이 정부에 의존하고 권력에 취약하기 때문”이라며 “근본적으로는 대학의 자율성이 보장돼야 하고, 정부가 예산 지원 등을 고리로 대학을 부적절하게 통제하는 문화가 사라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대학을 ‘거쳐가는 곳’으로만 생각하는 정치인 교수도 있는 만큼 엄격한 임용 기준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박거용 한국대학교육연구소 소장은 “정치인이 강의나 연구를 제대로 하지 않고 이름만 빌려 주는 관행은 벗어나야 한다. 학교마다 교수·학생·직원들로 구성된 평의원회가 있는데 그런 곳에서 엄밀한 기준을 세우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실제로 서울대 총학생회는 최근 “나경원 전 의원의 전문성이 학과 수업과 얼마나 연관성이 있는지 확인하는 건 학생들의 당연한 권리”라며 교수 임용서류에 대한 정보공개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교육부 관계자는 “비전임 교원은 대학이 자체적으로 관리하고 있는 만큼 부적절한 인사가 임용돼도 교육부가 나서기는 어렵다”며 “내부 논의 절차가 강화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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