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믿음] 인연이 뭐길래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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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3호 27면

“인연이란 게 도대체 뭘까요? 전생에 무슨 죄를 그리 많이 지어서 이토록 모진 인연을 만난 걸까요? 평생 속만 썩이더니 늙어서까지 제 속을 뒤집네요.”

아는 분한테서 한숨 섞인 전화가 걸려왔다. 전화를 받자마자 다짜고짜 신세타령이다. 무슨 일이냐고 물었더니 이혼한 전남편이 도와달라며 계속 전화를 한다는 것이다. 듣자 하니 전 남편의 사정도 참 딱하다. 하지만 지난 세월 동안 그가 했던 행동이 쉽게 용서할 수 없는 것이었기에 도움의 손길 또한 뿌리칠 수밖에 없는 상황임은 분명했다.

인간이 일생을 살면서 가장 슬프고 힘든 일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아마도 자식을 잃는 슬픔일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게 누구에게나 다 힘들고 슬픈 일이겠지만 하루아침에 멀쩡한 자식을 잃는 어미의 슬픔이야말로 형용할 수 없는 것이리라. 내게 하소연한 그분은 어느 날 멀쩡하게 “학교 다녀오겠습니다”라고 인사하고 등교한 아이가 돌연 심장마비로 죽었다. 도저히 믿기지가 않아 그럴 리 없다며 울부짖었지만 어미가 찾아갔을 때 아들은 이미 싸늘한 주검이 돼 있었다. 당시 사업을 하는 남편은 외국에 나가 있었기 때문에 하늘이 무너지는 그 슬픔을 오직 혼자 감당해야만 했다고 한다. 얼마나 힘든 시간들이었겠는가. 상상만으로도 마음이 아프다.

그런 상황인데도 남편은 아내를 위로해 주기는커녕 밖으로만 떠돌고 집에는 들어오지도 않았다. 자연스레 두 사람은 떨어져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슬퍼하는 아내를 보기도 쉽진 않았으리라. 그런데 몇 년 뒤 남편에게 또 다른 가정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아내는 용서가 안 된다고 했다. 자식이 죽었을 때도 나타나지 않고 집에도 들어오지 않던 사람이 딴살림을 차리느라 그랬다는 걸 생각하면 치가 떨린다는 것이다. 원망하는 마음이 가득할 만도 했다.

게다가 남편은 아내 몰래 집문서를 빼가고 땅을 몰래 파는 등 파렴치한 행동을 서슴지 않았다. 결국 아내는 방 한 칸 얻어 나갔고, 어려운 살림을 다시 일으키기까지 고통스러운 삶을 보냈다. 그런데 그렇게 자신을 고통 속에 밀어 넣었던 사람이 이제 와서 돈을 구해 달라 하니, 누가 그를 도와주고 싶겠는가. 그런데도 이분은 괴로워하고 있다.

사람의 인연이라는 게 딱 잘라 버린다고 해서 잘라지는 것은 분명 아니다. 그래도 자신을 괴롭히는 인간관계에 언제까지나 매어 살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살아가다 보면 더러는 모질고 단호해야 할 때도 있는 법. 이런 경우가 그렇다. 정 때문에 무너지는 모습이 안타까워서 하는 소리다. 눈물로 뒤덮인 그 길을 또다시 걸을 텐가.

인연 따라 마음속의 올이 엉켜 버렸다고 느낀다면 먼저 마음 줄을 올바로 세워야 한다. 자기중심이 올곧게 서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여타의 인연에 이리저리 흔들리지 말고, 자기관리를 잘해야 나도 살고 남도 정신 차리고 산다. 부처님 말씀에 “물 대는 사람은 물을 끌어올리고, 활 만드는 사람은 화살을 곧게 하며, 목수는 재목을 다듬지만 덕 있고 지혜로운 사람은 자기 자신을 다룬다”고 했다. 자신도 제대로 추스르지 못하면서 누굴 돕겠는가. 우선은 그 모진 인연으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할 것이다.



원영 조계종에서 연구·교육을 담당하는 교수아사리. 불교 계율을 현대 사회와 접목시켜 삶에 변화를 꾀하게 하는 일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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