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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위 쫓는 복날 음식 … 전국 보양식 지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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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복날이 뭐길래 우리 국민들은 그토록 보양식에 연연할까?

 “삼복지간(三伏之間)엔 입술에 붙은 밥알도 무겁다”는 속담이 그 이유를 잘 설명한다. 더위로 스태미나가 떨어져서다. 복날 보양식의 식재료로 닭고기·개고기 등 육류가 주로 사용된 것도 같은 이유다. 대체로 고단백 식품들이다. 찜·탕·구이 등 가열 조리된 ‘이열치열(以熱治熱) 음식’이란 공통점이 있다.

닭고기·개고기 등 열성음식 대부분

 우리 조상들은 더위를 피하기보다는 정면으로 맞선 셈이다. 그 전통이 오늘 우리에게도 전해지고 있다. 강동경희대병원 한방내과 고석재 교수는 “여름엔 양기와 체열이 몸 표면을 통해 많이 빠져나가 몸 안에선 양기가 허(虛)해지고 체열이 떨어진다”며 “닭고기·개고기·인삼 등 열성(熱性) 음식을 먹으면 몸 안이 따뜻해져 보양 효과를 얻게 된다”고 설명했다.

 취재를 위해 지난 9∼10일 전국 16개 시·도청의 식품 관련 부서에 ‘향토음식 가운데 복날 보양식 두세 가지를 선정해 줄 것’을 의뢰했다. 삼계탕·보신탕 등 우리가 많이 알고 있는 대표적인 보양식은 가능하면 제외시켜 달라고 주문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삼복 보양식 지도’가 그려졌다.

 삼계탕·초계탕·임자수탕·오골계탕·찜닭 등 닭고기를 주재료로 만든 음식이 복날 보양식으로 전국에서 많이 거론됐다. 삼계탕과 해신탕(문어 삼계탕)이 열탕이라면, 초계탕과 임자수탕은 냉탕이다. 경희대 한방병원 사상체질과 이의주 교수는 “삼계탕은 체질상 소화기가 차고 약한 사람에게 이로운 음식이다. 하지만 평소 몸에 열이 많은 사람이 삼계탕을 먹으면 대추·인삼이 심장과 췌장의 열을 높여 변비·설사로 고생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경기·충북 등의 향토 보양식인 용봉탕(龍鳳湯)에도 닭고기가 들어간다. 조선시대 수라상에도 올랐던 용봉탕은 물의 용을 상징하는 잉어와 하늘의 봉황을 뜻하는 오골계를 푹 고아 낸 음식이다. 지역마다 재료가 조금씩 다르다. 충북 진천에선 잉어·오골계 대신 자라·토종닭을 사용한다.

 중국에선 기원전 1000년 무렵부터 잉어 양식을 했다는 기록이 전한다. 등용문(登龍門)은 커다란 잉어들이 황하 상류의 삼문협(三門峽) 폭포를 뛰어넘으려고 치열하게 경쟁하다가 폭포를 건넌 단 한 마리의 잉어가 신통력을 얻어 용이 됐다는 전설에서 나온 말이다. 이후 입신출세의 관문을 등용문이라 했다. ‘66이 변해 99개의 비늘이 된다’는 속담도 생겼다. 66은 잉어 비늘의 숫자(6×6=36)다. 99개의 비늘이란 9×9=81, 곧 81개의 비늘을 가진 용을 가리킨다. 잉어가 주재료인 용봉탕이 복날 보양식이 된 것은 이런 잉어의 생명력을 높이 사서다. 허준은 『동의보감』에서 잉어를 민물고기의 왕이라고 했다. 불사조인 봉황(鳳凰)은 용·기린·거북과 함께 상서로운 사령(四靈)의 하나다. 수컷이 봉(鳳), 암컷이 황(凰)인데, 흔히 민가에선 닭을 봉(鳳)이라 부른다. 용봉탕에는 잉어와 수탉이 가진 신기(神氣)를 먹고 장수하고자 하는 염원이 담겨 있다.

 복날에 보신탕을 찾는 이유는 뭘까. 삼복의 복(伏)자가 사람(人)과 개(犬)의 합성어 모양이어서 복날 개장국을 먹는 풍습이 생겼다고 믿는 사람이 있는데 이는 사실 무근이다. 충청대 식품영양과 안용근 교수는 “개고기는 흔히 먹는 육류 중 혈관 건강에 이로운 불포화 지방 비율이 최고”라며 “단백질 함량은 다른 육류와 별 차이가 없지만 소화·흡수가 잘 돼 여름에 지칠 때 먹으면 보양 효과가 있다”고 설명했다.

 개고기를 못 먹는 이를 위한 육개장은 서울의 대표 복날 음식이다. 보신탕의 원래 이름이 개장국이며, 육개장은 ‘쇠고기(肉)로 끓인 개장국’이란 뜻이다. 호서대 식품영양학과 정혜경 교수는 “쇠고기와 나물을 넣고 끓이는 요즘 육개장과 달리 과거의 육개장엔 귀한 전복·해삼이 들어갔다”며 “양반들이나 먹는 복날 음식이었을 것”으로 짐작했다.

어죽은 노인·어린이에게도 부담 없어

 지역에서 나는 생선을 재료로 한 복날 음식도 여럿 있다. 서울 민어 매운탕, 강원 다슬기해장국, 충북 가물치회, 전남 병어무침, 제주 벤자리국 등이 대표적이다. 김지순 제주 향토음식 명인은 “제주도의 여름 보양식은 오징어물회·자리물회·문어죽·깅이죽(게죽)·벤자리국·북바리국 등이며 자리물회·다금바리·벤자리·북바리 등 이름에 ‘리’자가 들어간 것이 여름에 맛이 있다”고 했다.

 어죽(魚粥)은 단백질·지방 등 영양가가 높고 식물성과 동물성 식품을 골고루 섭취할 수 있는 여름 보양식이다. 반(半)유동식이어서 환자·노인·어린이에게도 부담이 없다. 예부터 충청·평안도에서 복날 음식으로 즐겨 먹었다. 제주의 옥돔죽·고등어죽·게죽·전복죽, 강원의 담치죽(섭조개), 함경의 섭죽(섭조개죽), 여수의 홍합죽 등이 유명하다.

 『임원경제지』엔 죽십리(粥十利)라 하여 아침에 죽을 먹으면 이로운 열 가지를 다음과 같이 소개했다. “혈색을 좋게 하고 기운을 돋우며 수명을 늘리고 심신을 안락하게 하며 말을 잘하게 하고 통증을 없애며 음식을 잘 내리게 하고 말소리가 맑아지며 배고픔을 달래주고 갈증을 없앤다.”

 바다가 없는 충북에선 과거 복날에 잉어·붕어·가물치 등 민물고기 회를 즐겼다고 한다. 영동대 외식조리학과 지명순 교수는 “막걸리를 가물치에 붓고 주무른 뒤 6∼8시간 방치하면 발효가 활발하게 일어난다”며 “가물치회에 막걸리 향이 배어 비린내가 사라지고 살도 오돌오돌해졌을 때 초고추장에 찍어 먹으면 맛이 기막히다”고 전했다.

 평양 등 평안도의 삼복 음식은 칠향 닭찜과 초계탕이 꼽힌다. 또 북한에서 ‘곰’이란 명칭이 붙은 음식은 대개 보양식이다. 푹 삶은 곰들은 뼈까지 흐물흐물해져 버리는 것이 거의 없다. 닭곰은 닭 뱃속에 인삼·황기·밤·찹쌀을 채우고 이를 단지에 넣은 뒤 솥에 물을 붓고 중탕으로 끓인 음식이다. 북한전통음식문화연구원 이애란 대표는 “북한에서 삼복 때 단고기(개고기)·닭곰·초계탕을 먹은 기억이 있다”며 “북한 사람들은 개장국·닭곰·토끼곰에 열광했다”고 회상했다.

박태균 식품의약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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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물치회 : 주재료인 가물치는 장어와 함께 스테미나의 대명사로 통하는 민물고기. 모유가 나오지 않아 고생하는 산모나 입덧 때문에 영양이 부족한 임신부에게 이로움.

▶게죽 : 돌절구로 방게를 빻아 물로 헹궈낸 뒤 그 헹군 물로 쑨 죽. 돌 틈에서 사는 방게가 주재료인 깅이죽(어죽의 일종)엔 웰빙 성분인 키토산이 풍부하다.

▶낙삼탕 : 낙지·새우·전복 등 해물과 인삼·대추·찹쌀 등을 넣고 삼계탕처럼 끓인 음식. 주재료인 낙지는 스태미나식품으로 유명하다 .

▶다슬기 해장국 : 다슬기는 올갱이·고동·고디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림. 계곡의 바위틈이나 물살이 세고 수심이 깊은 강에서 많이 잡힘.

▶닭곰 : 닭고기 배 속에 인삼·황기·밤·찹쌀을 넣은 뒤 단지나 큰 대접에 담아 솥에 물을 붓고 중탕으로 끓이는 음식. 닭 뼈까지 푹 고아냄. 물에 직접 넣어 삶는 삼계탕과는 달리 중탕으로 끓이는 것이 다르다.

▶닭죽 : 기름을 걷은 닭 육수에 불린 쌀과 삶아서 가늘게 찢은 닭살을 넣고 쌀알이 푹 퍼질 때까지 끓인 죽. 찹쌀로 끓이기도 한다, 제주도에선 참기름을 넣기도 한다.

▶마늘삼계탕 : 부재료인 마늘을 한방에선 ‘일해백리’(一害百利)의 식품으로 간주함. 냄새 하나 빼고 100가지 이로움이 있는 채소라는 뜻임.

▶문어죽 : 제주도에선 돌문어를 문게라고 한다. 돌문어를 짓이겨 끓인 문게죽은 원기 보강과 식욕 증진을 돕는 음식이다 .

▶민어 찌개 : 고추장과 고춧가루를 푼 물에 민어를 넣어 끓인 찌개. 부재료로 쇠고기나 바지락살을 넣는다. 서울·경기도에선 암치지짐이라고 한다.

▶민어회 : 민어를 한방에선 ‘개위(開胃·식욕 증진)와 하방광수(배뇨)를 돕는 생선’으로 친다. 혈압을 조절하는 칼륨 과 뼈·치아 건강을 돕는 칼슘 이 풍부하다.

▶병어무침 : 비늘 없는 흰살 생선인 병어는 비린내가 적고 가시가 연해서 무침·회·조림 등 다양한 요리에 사용된다.

▶벤자리국 : 조기 크기 생선인 벤자리에 미역·마늘을 넣어 만든 음식. 벤자리보다 크고 비싼 북바리를 넣은 국도 제주의 여름 별미다.

▶삼숙이탕 : 삼세기(삼숙이)는 머리가 크고 생선살은 별로 없으나 된장을 풀고 끓이면 시원하면서도 구수한 맛이 좋음. 강원도 속초의 향토 음식.

▶염소불고기 : 얇게 썬 염소고기를 양념에 재웠다가 석쇠에 구운 음식. 부산·경북에서 많이 먹는다. 『동의보감』엔 “염소고기는 허약한 사람의 영양 보충과 보신에 좋다”고 기술돼 있다.

▶오골계탕 : 엄나무·천궁·당귀 등을 물에 넣고 향이 우러나도록 끓이다가 살짝 데친 오골계·대추·밤을 넣고 푹 끓인 음식. 오골계는 뼈와 피부가 검은 약용 닭으로 『동의보감』 『본초강목』엔 “피를 맑게 하고 바람(풍)을 막아 준다”고 기술돼 있다.

▶오리찰흙구이 : 오리고기에 흑미찹쌀·밤·인삼·감초 등을 넣고 3시간 동안 화덕에서 구워낸 음식. 주재료인 오리고기는 닭고기보다 부드럽다.

▶의성마늘찜닭 : 의성은 마늘의 주산지. 마늘은 에너지와 활력을 높여 주는 마술 같은 식품이다, 고대 이집트의 피라미드 비문에 ‘스태미나식품’으로 기록돼 있다.

▶임자수탕 : 임자는 참깨를 뜻한다, 차게 식힌 닭 육수에 참깨를 갈아 넣고 잘게 찢은 닭고기와 채소를 넣어 먹는 요리.

▶지리산 닭찜 : 지리산은 토종닭 요리로 유명한 지역. 닭찜은 닭고기를 양념해 푹 삶은 찜이다.

▶칠향닭찜 : 표고버섯·밤·대추·은행·계피·생강·도라지 등 7가지 향을 넣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 인삼이 들어가지 않고 국물이 거의 없다는 것이 삼계탕과 다른 점. 뼈를 발라낸 닭고기를 사용한다.

▶풍기삼계탕 : 풍기는 인삼의 주산지. 풍기 인삼과 삼계탕이 만난 음식이다.

▶해신탕 : 토종닭·전복·인삼·문어·소라·낙지 등을 넣어 만든 탕 요리. 재료 중 하나인 문어는 고단백·저지방 식품으로 단백질 함량이 흰살 생선에 버금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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