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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인간의 오래고 가장 원초적인 사고방식으로 보면 무덤이란 결코 주검이 묻히는 시혈이 아니다. 그곳은 죽은 이로선 재생의 태요, 그 후손으로선 그들의 운기가 비롯될 배였던 것이다. 그 공과는 차치하고 풍수설이 은성했음이나 무덤곁을 상록수로 둘렀음이나 모두 그 때문이다.
서반구의 북동민족들이 무덤속에 피칠한 패각과 녹각을 부장한 것도 거기에 연유한다. 이 부장품들은 생명과 증식의 매체인 주물이었던 것이다.(녹용의 신효뒤엔 어쩌면 이같은 녹각숭앙이 숨어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땅속에 짚신등속의 신발을 넣어두는것은 비단 우리나라만이 아니다. 독일사람들의<토텐·슈>, 곧 죽음의 신도 바로 그것이다. 사자가 신고 저승으로 가란 뜻은 아니다. 성황당 금색에 매달린 짚신과 함께 그것은 이른바<생명력상징>으로 불릴 주술이다. 사자의 부활을 다짐하는 것이 그 본질적 기능이다. 고려태조 왕건의 조모인 용녀가 죽은 뒤 용녀의 현신으로 숭앙된 신격도 다름아닌 짚신이다.
굳이 까다롭게 따질 것도 없다. 흙이란 워낙 지모신의 품인 것이다. 매모신의 품에 안김이 무덤에 드는 일인 것이다. 그것은 젖먹이가 어미 품에 들 듯 안식하는 것이다.
하지만 요즘에 와서 그 무덤들이 도시 말이 아닌 모양이다. 사자들의 시민「아파트」인 공동묘지에 국한된 얘기이긴 하지만…. 헐려서 집터가 되는 거야 속담에 음지가 양지된다고 했으니 문제가 될 턱없다.
문제는 어느 날 우연히 새로 헐리는 공동묘지 곁을 지나면서 내 머릿속에서 빚어졌다. 이장해 가는 무록분묘용의 관들이 기이할리만큼 작은 것이다.
고작해야 바둑판보다 좀 큰 정도였을까. 새 송판이 눈따갑도록 어설퍼 보이기도 했다.
저기 어떻게 사신이 용납이나 될까. 무덤이라고 모두 아기들의 것만은 아닐 텐데 .
이런 식으로 문제는 비롯되었다. 화장을 하여 골재만 담는다면 그야 문제가 풀리겠지만 근처에 불길이며 연기가 피지않음으로 보아 그런것같지는 않았다.
더욱 주검 가운덴 온전히 부식하지 못한 것도 있을게 아닌가.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스스로 까무라칠만큼 아찔하였다. 불길하고 처참한 영상이 스쳤기 때문이다. 미처 썩지 못한 장대한 시신과 바둑만 크기의 관-.
나의 상상은 시신을 분단하여 완전범죄를 꾀한 탐정소설 때문이라고 사뭇 고개를 저었다. 작도가 내머리를 후려치는 것 같았다.
그렇다고 차마 헐리고 있는 무덤가에 가볼 생각은 나지 않았다.
살아있는 자들의 매장법이 돼먹질 않았다고 저승의 장에게 읍소하는 사령의 노래가「폴리네시아」의 민요에 있다.
죽음은 삶의 반이다. 그처럼 죽은 이들은 살아있는 우리들의 반신이다.
서럽게 살다 무규고혼이 된 우리들의 반신. 그 감은 눈자위에 차마 어찌 눈물맺히게야 하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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