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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고건의 공인 50년 <112> 서울 월드컵 경기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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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2002년 5월 31일 한·일 월드컵 대회가 서울에서 개막했다. 경기장을 관중석에서, TV에서 지켜본 5억의 세계인들은 두 가지에 놀랐을 것이다. 우승 후보로 꼽혔던 세계 최강 프랑스팀을 월드컵에 처음 출전한 세네갈이 꺾은 사실과 그 무대가 된 서울월드컵경기장의 아름다움에 말이다.

 서울월드컵경기장은 우리의 건축 기술이 만들어낸 작품이다. 방패연 모양의 반투명 지붕이 황포 돛대처럼 솟았고 그 아래 팔각 소반을 본뜬 스탠드가 자리했다. 그날 밤 나는 6만 관중의 한 명으로 함성 속에 빛나는 경기장을 지켜봤다.

 월드컵경기장의 탄생에 대한 나의 소회는 남달랐다. 5년 전 내가 국무총리였던 1997년. 정부는 어려운 경제 상황을 감안해 월드컵 개최지를 특별·광역시 7곳으로 한정했다. 대회 개막 도시인 서울에만 축구 전용 경기장을 짓기로 했다. 다른 도시는 기존 경기장 시설을 보완해 활용키로 방침을 정했다.

 강덕기 서울시장 직무대리를 세종로 정부중앙청사 총리 집무실에서 만나 이런 정부의 원칙을 전했다.

2000년 5월 17일 서울 마포구 월드컵경기장 건설 현장을 보고 있는 당시 고건 서울시장(왼쪽)과 진철훈 월드컵주경기장건설단장. 경기장은 1100일간의 공사 끝에 2001년 11월 10일 개장했다. [사진 고건 전 총리]

 강 직무대리는 곤혹스러운 표정으로 답했다.

 “서울시의 재정 형편상 경기장 신축이 힘들 것 같습니다. 정부 지원 없이는 어렵습니다.”

 강 직무대리가 돌아간 뒤 이영탁 총리 행정조정실장을 불렀다.

 “관계부처 대책회의를 열어 재정특별대책을 수립해줬으면 합니다.”

 그렇게 중앙정부 600억원, 서울시 600억원, 국민체육진흥공단 300억원, 2002년 한·일 월드컵 한국조직위원회(KOWOC) 200억원, 대한축구협회 250억원의 분담 안이 만들어졌다. 1997년 10월 10일 서울시 ‘월드컵 주경기장 부지 선정위원회’는 건립 장소를 서울 마포구 상암지구로 정했다. 1998년 2월 김대중정부가 들어섰고 월드컵 개최 도시는 특별·광역 7개 시에 3개가 추가돼 10개로 확정됐다.

 1998년 7월 1일 나는 민선 시장으로 서울시에 돌아와 월드컵 경기장 건설을 지휘하게 됐다. 공사를 시작할 때만 해도 많은 사람들이 걱정했다. ‘예정된 공기(工期)에 맞출 수 있겠느냐, 부실 시공이 되지 않겠느냐’는 우려였다. 일본에 비해 착공 시기가 한참이나 늦었고 건설비도 낮게 책정됐다.

 당시 서울시 월드컵주경기장건설단장을 맡았던 진철훈 전 한국시설안전공단 이사장의 설명이다.

 “예상 공기도 짧았고 예산도 빠듯했습니다. 일정을 감안해 설계와 시공을 일괄 추진하는 턴키 방식을 선택했습니다. 눈에 띄는 대형 공사는 시공능력 1위부터 순서대로 대기업이 컨소시엄을 구성하면 중소기업은 양보해야 하는 관행이 있던 시절이었습니다. 우리는 기업 규모를 따지기 보다는 내실을 중요시 했습니다. 설계 내용을 중심으로 심사를 했고 삼성엔지니어링 등 시공능력 20위 밖의 중견·중소기업 5개사가 모인 컨소시엄이 시공사로 선정됐지요. 그때 모 대기업 건설사 사장이 수주 실패를 책임지고 교체될 정도로 파격적인 일이었습니다.”

 총 건설비는 1733억원으로 낙찰됐다. 당초 책정한 예산보다 237억원 낮은 금액이었다. 남은 돈으로 세계 최고 높이인 202m의 월드컵 분수대와 주차장을 건설했다.

 나는 공사 기간에 50번 넘게 현장을 찾았다. 현장 곳곳을 다니다 보니 걱정이 하나 생겼다. 입찰 때 지붕막 재질은 중·하급으로 정해졌다. 한강의 황포 돛단배와 방패연을 상징하는 지붕막은 경기장의 얼굴이나 마찬가지였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에게 직접 전화를 했다. “월드컵 경기장의 생명은 지붕막입니다. 최고품으로 바꿔주십시오. 밑지더라도 작품을 만들어 주십시오.” 이 회장은 나의 부탁을 들어줬다.

 월드컵 이후 경기장의 활용 방안에 대해서도 고민했다. 경기장을 관리하려면 많은 돈이 든다. 예산을 잡아먹는 시설로 두기보다는 마포구민을 위한 커뮤니티 시설과 문화 공간으로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마케팅 회사에 용역연구를 맡겼다. 경기장 스탠드 아래 5만㎡의 빈 공간을 대형 쇼핑센터·전문 식당가·스포츠센터·복합상영관 등으로 활용하기로 방향을 정하고 공사를 했다.

 우리는 단 한 건의 안전사고도 없이 정밀 시공했다. 예정된 공사 기한보다 40여 일 앞당겨 준공할 수 있었다. 경기장 스탠드 아래 만든 시설도 제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지난 2011년 경기장의 연간 유지관리 비용 85억원을 훨씬 넘는 170억원의 수입을 올렸다.

 서울월드컵경기장은 한때 쓰레기로 뒤덮였던 상암동에 피어난 꽃과 같다. 경기장과 그 주변을 둘러싼 월드컵 공원, 디지털미디어시티(DMC)는 외환위기를 극복해낸 우리의 자랑스러운 자화상이다.

정리=조현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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