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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끄타티 감독의 '플레이타임' 35년만에 재개봉

중앙일보

입력

DVD의 보편화는 수많은 옛날 영화들을 다시 시장으로 불러들였고 리마스터링된 작품들이 극장에서 재개봉하는 사례가 많아졌다. 이번에 재개봉한 자끄 타티(Jacques Tati)의 '플레이타임(Playtime)'도 같은 경우이다. 1967년에 완성한 작품이니까 35년만에 다시 재개봉한 셈이다.

감독 자끄 타티는 럭비선수 출신 답게 건장한 체구로 데뷰 초기에는 스포츠를 소재로한 스탠딩 코미디를 전문으로 하다가 1934년 '파리의 모든것'로 영화에 발을 들여 놓았다. 찰리 채플린을 모델로 한 윌로씨 (M. Hulot)를 자신의 페르소나로 내세워 직접 연기까지 했다.

해변에서 시작된 윌로씨의 여행('윌로씨의 휴가')은 도시로 이어져 현대성의 정점에서 가족사회 위기를 보였고('나의 삼촌', 1958년 칸느영화제 심사위원 특별상 수상), 프랑스 뿐만 아니라 미국 비평가들에게 크나큰 호평을 받았다. 이 두 영화의 성공이 자끄 타티로서는 감독으로서 어느 정도 자유를 제공받는 계기가 되어, 이후 '플레이타임'이나 '트래픽'을 만들 수 있었다.

'나의 삼촌'의 구시대는 '플레이타임'에서는 새시대를 바탕으로 가까운 미래로 전환된다. 자갈길이나 시끄러운 이웃, 옛날식 건물은 자로 잰듯한 정육각체의 전면 유리 건물로 바뀌었고, 이웃은 물론이고 회사의 옆방에서 조차 누가 일하는지 모르는 단절된 세상으로 변했다. 모든 것이 기계에 의해 움직이고 일정한 규칙에 따라 진행되는 타티식의 미래 세계가 구축된 것이다.

'플레이타임'의 이야기 구조는 미국인 단체 관광객들이 공항에 도착해 파리를 구경하고 다음날 떠나는 24시간을 중심으로 한다. 윌로씨는 다른 영화와 마찬가지로 이 영화에서도 특별히 하는 것이 없다. 관광객들과 계속해서 우연히 맞부닥치고, 이유 모를 약속만 기다리고, 실수로 들어간 박람회장에서 헤매거나, 옛동료를 갑자기 만나고, 로얄 가든이라는 식당겸 댄스홀에까지 흘러 가게 된다.

영화 후반부의 배경인 로얄 가든은 부실 공사의 흔적이 역력하다. 전반부에 보였던 규격화와는 극명한 대비를 이루며 사소한 문제들을 만들어 간다. 제한된 공간에서 타티가 보여주는 배우들의 완급 조절이나 화면속에 비치는 무대 배치 능력은 보는 사람의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이 영화에서 대사는 효과음에 불과하다. 불어나 영어, 영어식 불어, 심지어 컴퓨터 게임 "심즈(The Sims)"의 캐릭터들이 지껄이는 것과 같은 알아 들을 수 없는 말들의 나열이다. "이야기하는 것은 없지만 이 영화의 모든 것이 볼거리다"라는 평이 정확하게 들어맞다고 밖에 할 수 없다.

초기작들에 비해 시각효과들이 많이 바뀌었지만, 정신없은 거리 배경이나 잘못된 장소를 비치는 듯한 느낌으로 외부에서 바라보는 건물내부 시컨스, 어느 부분이 구심점이 되는지 알 수 없는 듯한 산만한 구조의 이야기 진행은 여전하다. 특히 '플레이타임'을 위해 지어진 두 개의 전면 유리 건물 세트는 이 영화의 압권이다. 이러한 거대한 세트를 만들어 내는데에는 그 당시로서 감당하기 힘든 자본이 들었다. 그래서 몇년동안 영화 완성을 지체하다 자신의 전재산을 들여 겨우 마칠 수 있었다는 후문이다.

이번에 재개봉된 '플레이타임'은 타티가 생전에 재편집한 디렉터즈컷으로 31분 정도의 분량이 추가됐다. 타티는 1977년에 세자르상 평생공로상을 수상했고, 1982년에 세상을 떠났다.

박정열 명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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