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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이론에로 복귀하는 독일철학|제9차 독일철학회의에 다녀와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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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다음글은 지난달 12일∼l6일 독일「뒤셀도르프」에서 열린 제9차 독일철학회의에 참석한조가경 교수(서울대문리대)의 보고문이다. 조교수는 이 회의에서 동양인으로는 처음으로 논문(학문이론에 있어서의 직관과 추상과의 관계)을 발표, 국제적인 철학자들의 관심을 모았다.
회의가 4일째 접어들어 중요한 발표가 거의 끝날 무렵 전의장단의 한사람은 동료들에게 새삼 다음과 같은 신기한 발견을 했다고 말했다. 『여태껏 10여 편의논문발표가 있었고 뒤따라 토론에서 수십 명이 발언했으나 단 한번도「하이데거」의 이름이 입밖에 나온 일이 없다.』그것은 사실이었다. 언어에 관한 논문만 해도 여러 분과에서 9편 이상이 나왔으나「하이데거]의 주지된 언어관이 우연하게도 언급 된 일조차 없었다.

<「하이데거」퇴색>
이와같은 현상은 독일의 현철학계의 움직임을 단적으로 드러내주는 징조이다. 「하이데거」와 실존철학은 과거 30년 이상이나 독일철학계의 언권을 독점해 왔었다. 그것이 학계에준 것도 많았으나 빼앗아 간 것은 더 많다는 것이 오늘의 중론이다.
이번 제9차 철학회는 66년도에 있었던 8차 대회(하이델베르크)에서 거론된『학술과 과학이론』에의 복귀를 다짐하는 강한 구호 밑에서 이루어 졌다. 특히 젊은 학자 속에서는 낡은역사주의와 형이상학의 전통을 기피하고 영미학계에서 진지하게 논의되고있는 과학이론·사회과학 및 자연과학의 방법론·논리학 그리고 언어의 문제들에 대해서 독일이 뒤떨어지고있는 현상을 신랄하게 비판하는 소리가 높았었다.

<구조주의도 소개>
「뷔트겐슈타인」「퍼스」「카르납」「촘스키」등의 이름이 마치 미국철학회 회장에서 처럼 자주 오르내리게 되고「스칸디나비아」제국의 과학이론가들과「프랑스」의 구조주의론자들도 널리 소개되고 있었다.
이번 독일 철학회는 종합대학으로 승격된지 6년밖에 안 되는「뒤셀도르프」대학에서 개최되었다. 원래 회장이 소속하는 대학도시에서 회의가 열리는 것이 관례이며 현회장「란트그레베」교수의「쾰른」대학이 모체가 되어야 할 것이나 독일 철학회 사무총장이자「뒤셀도르프」대학의 총장인「디머」교수의 자청으로 이 도시에 그 중심을 옮겼다.
모두 9개분과, 약20편의 논문이 발표되고 그밖에 젊은 강사, 조교 등의 발표와 토론을 위한 6개의 분과가 열렸었다. 흥미있는 것은 고등학교에서의 철학 교육을 위한「세미나」가부설되어 여기에 교사들이 다수 참가했고 또 그들은 대학교수들의「세미나」에도 함께 출석하여 자못 젊은이들의 과학철학·윤리학 교육을 위한 열의 강도를 짐작케 하였다.

<외국 발표자 5명>
외국에서 참가한 발표자는 영구「옥스퍼드」의「헤야」교수(과학과 실천과학)「스웨덴」 「웁살라」대학의「마르크·보가우」(역사의 있어서의 인과설명), 「파리」대학의「오방크」(언어·구조·사회), 「스웨덴」「괴테보르크」의「라드니츠스키」(과학적 지식의 생산에 있어서의 논리언어의 의미)그리고 필자(학문이론에 있어서의 직관과 추상의 관계)등 5명이었다. 회장「란트그레베」박사는 현상학의 시조인「후설」의 수제자로서『철학과 제과학의 책임】이라는 개회 강연을 했으며 대회책임자로서 70의 노구를 이끌고 일일이 대소행사를 지휘하는데 그 태도는 온후하고 겸허 그대로의 인품 이었다.
그의 주제강연은 왕년에「테오리아」(이론)였던 제반과학이「프락시스」(실천)로 변질한 오늘날, 철학이야말로 그 선험적 반성의 기능을 간직하여 인생의 의미와 방향제시의 책임을 자부해야한다는 요지인 바, 거시적 고전적인 철학을 대표하는 그의 세대가 퇴진해가고 있는 현단계에서 이번 학회의 골자인 과학주의와는 좀 생리가 맞지 않는 보수적인 기조연설이었다. 그러나 젊은층에서의 미시적 과학이론과「란트그레베」류의 전통적 철학 변호사상의 중간에서 독일의 고유한 사변 철학, 변증법을 살리면서 영미계의 실증주의와의 산 연관을 모색하는 움직임이 눈길을 끌었고「프랑크 푸르트」의 준재「하베르마스」교수(로렌첸 강연의 평)와「에르랑겐」의「로렌첸」교수(과학주의의 문제)의 강연이 가장 문제의식을 잘 집약했다고 보겠다.

<인간적 요소 확인>
특히 주체의 자기반성의 계기를 배제하는 실증주의에 대하여 바로 이 인간적 주체적 요소를 모든 논리와 윤리의 차원의 기저에서 재확인하고 일체의 학문이론을『인간에 의하여, 인간을 위하여, 인간에 관하여』이루어진 것으로 심화해서 파악하려는「변증법논자」의 입장은 앞으로도 그 전개의 묘점을 짐작케 하는 주목할만한 대목이었다.
필자는 독일철학자들의 산 활동에 접하여 직접적인 계발도 얻고 문제의식의 추이에 대해서 반성한 바가 많았다. 동양인으로는 처음으로 독일 철학회에 발표할 기회를 얻었다는 이유도 있었겠지만 필자의 논문에 대한 반응은 단순히 외국인에 대한 예우로서 정중했다는 것이상으로 한편 자신을 갖게 하고 고무적이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학문의 길이 아직도 멀기만 함을 어느 때보다도 더 통감했고 앞으로 할일이 태산같음을 느낀다. <서울문리대교수·철박>조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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