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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학교 깊이보기] 재학생도 특허 따는 학교, 비결은 현장 교육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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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고의 이공계 대학을 꼽으라면 많은 사람이 MIT를 떠올린다. MIT가 미국 사립대학을 대표하는 공대라면 버지니아 공대(Virginia Polytechnic Institute and state University)는 주립대학 가운데 1순위로 꼽힌다. 버지니아 공대에는 유난히 특정 고등학교 출신 학생이 많다. 바로 버지니아 페어팩스 카운티에 있는 토머스 제퍼슨 과학기술고등학교(Thomas Jefferson High School for Science and Technology·TJHSST, 이하 토머스 제퍼슨)다.

미 LA에 있는 교육업체 보스턴 에듀케이션의 수 변 아이비클럽 수석 칼리지 카운슬러는 “과학기술 분야에 중점을 둔 과학 특목고”라며 “재학생 중 이미 특허를 딴 학생이 있을 정도로 연구에 대한 열정이 대단한 학교”라고 소개했다.

미국에 공립 고등학교는 2만8000여 개, 사립 고등학교는 2만9000여 개가 있다. 1985년 설립한 이후 버지니아 주 교육청은 물론 주 정부의 재정지원을 받고 있는 토머스 제퍼슨은 2008~2012년 5년 연속으로 US뉴스앤드월드리포트가 뽑은 최고의 공립 고등학교 1위에 뽑혔다. 2013년엔 4위였다. 지난해 SAT I의 평균 점수(각 800점 만점)는 수학 742점, 리딩 705점, 쓰기 706점이었다. 미 전역의 SAT I 평균 점수(수학 505점, 독해 491점, 쓰기 481점)와 비교하면 얼마나 우수한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고(故)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과 버락 오바마 대통령 등 정·재계 유명 인사가 자주 방문할 만큼 미국 내에서 촉망받는 학교이기도 하다.

 토머스 제퍼슨이 공립학교임에도 이렇게 뛰어난 성과를 보이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과학·수학 등에 특화한 일종의 영재학교인 매그닛 스쿨(Magnet School)이기 때문이다. 거주지에 따라 배정받는 공립학교와 달리 매그닛 스쿨은 학생을 선발한다. 커리큘럼도 일반 학교와는 다르다. 다만 이 학교에 지원하려면 부모나 보호자가 버지니아주 페어팩스(Fairfax)나 알링턴(Arlington)·라우던(Loudoun)·프린스 윌리엄(Prince William)·폴스 처치(Falls Church) 5개 카운티에 거주해야 한다.

 9~12학년까지 총 1847명이 재학 중이다. 재학생 중에는 아시안, 그리고 남학생 비율이 높은 편이다. 전체 58%인 1071명이 남학생이다. 또 아시안은 66%, 백인 30%, 히스패닉 3%, 흑인이 1%다. 이 중 한국 학생은 전체의 10% 수준인 180명 정도다.

 이 학교 입학사정관 타니샤 홀랜드(Tanisha S. Holland)는 “많은 지원자 중 일부만 추리는 게 쉽지 않을 만큼 지원자 수준이 매우 높다”며 “이처럼 치열한 경쟁을 뚫고 합격한 만큼 학생들이 반드시 원하는 길을 갈 수 있도록 학교는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처럼 뛰어난 학생을 선발하기 때문에 이 학교에 입학허가를 받았다는 사실만으로 주변에선 영재로 인정받는다. 학부모가 보내려고 기를 쓰는 이유다. 하지만 이게 다가 아니다. 많은 학부모가 이 학교만의 특별한 시스템을 선호한다.

 수업은 매일 오전 8시30분 시작해 오후 3시50분에 끝난다. 하루 7교시지만 때론 2교시를 묶어 수업하기도 한다. 또 매주 3일은 클럽활동이나 봉사활동 등 학생 개개인의 관심사에 따라 시간을 활용할 수 있는 8교시 수업을 의무적으로 한다. 또 12학년은 졸업 의무 과정으로 테크놀로지 실험연구 프로젝트에 참여해야 한다. 1년 동안 캠퍼스 안팎에서 각 분야 산업체 전문가와 함께 일하며 배울 수 있는 멘토링 프로그램이다.

토머스 제퍼슨 과학기술고는 매그닛 스쿨 중에서도 특히 수학과 과학, 기술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영재 과학학교다. 천문학과 자동차, 로봇, 생물 공학, 화학 분석, 커뮤니케이션, 컴퓨터 시스템 등 대학 수준의 수업을 제공한다. [사진 토머스 제퍼슨 홈페이지]

 입학사정관 홀랜드는 “워싱턴 DC에 있는 각 정부 부처는 물론 글로벌 기업과 특별 교육 기관 등에서 연구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있다”며 “미리 자신의 특기와 적성을 심도 있게 경험함으로써 보다 일찍 자신의 연구 분야를 결정할 수 있도록 돕는다”고 했다. 멘토링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기업으로는 AT&T를 비롯해 IBM·소니 등이 있다.

 이런 프로그램 덕분인지 이 학교 재학생은 2007년과 2009년, 2010년 미국 내에서 가장 권위 있는 과학 대회로 꼽히는 인텔 과학 탤런트 서치(Intel Science Talent Search Semi) 결승전(finalists)에 오르기도 했다.

 멘토링 프로그램 외에도 생물과 영어·테크놀로지를 융합한 IBET(Integrated Biology, English and Technology) 프로그램도 유명하다. 9학년을 25~30명씩 그룹을 지은 후 일주일에 9시간 수업한다.

 이 학교 졸업생 학부모인 캐서린 박(47)씨는 “수준 높은 과학을 배우기 위해서는 수학 수준이 매우 높아야 한다”며 “이 학교 수학은 일반 고교와 달리 대학 수준”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대다수 재학생이 다변수 미적분학(Multivariable Calculus)이나 선형 대수학(Linear Algebra) 등 수준 높은 수학 수업을 받고 있다. 대학 2학년 수준의 미분방정식(Differential Equations)과 대학 3학년 수준의 복소 변수(Complex Variables) 같은 과목도 선택할 수 있다.

 토머스 제퍼슨은 대학처럼 학점 이수제다. 졸업 전 총 26년을 받아야 졸업이 가능하다. ‘년’이란 반드시 들어야 하는 재학연도수다. 예컨대 영어 4년이라면 영어를 9~12학년 4년 내내 들어야 한다는 의미다. 영어 외에 수학과 과학(Biology, Chemistry, Physics, Geosystems), 사회가 4년이고 외국어는 3년, 체육 2년, 컴퓨터 과학 1년 식이다. 과학고로는 이례적으로 사회를 4년 내내 듣는다. 이는 수학·과학뿐 아니라 다른 과목에서도 최고 수준의 공부를 시키겠다는 학교 측 의지가 반영된 결과다.

 대학과목선이수제(AP·Advanced Placement) 과목은 총 23과목으로, 일반 학교에서 하는 1단계 기초 수업은 제공하지 않는다. 곧바로 AP 2단계 수업을 한다.

 토머스 제퍼슨은 9학년부터 학생을 받는다. 들어가려면 8학년을 막 시작한 9월 말부터 서둘러 지원해야 한다. 원서비는 90달러(약 10만원). 여름과 겨울로 나누어 지원할 수 있다. 매년 조금씩 날짜가 바뀌지만 대략 여름 라운드 지원 가능 날짜는 1월 말에서 2월 초. 이에 앞서 지원서는 그 전해 6월 1일까지 해야 한다. 시험은 6월 첫째 주에 치른다. 합격자 발표는 6월 말이다. 겨울 라운드는 9월에 지원서를 받아 10월까지 제출하며 12월에 시험을 본다. 일단 1월에 예비 합격자를 발표한 후 2월까지 관련 서류를 받는다. 이를 참조해 최종 합격은 4월에 발표한다.

 수 변 카운슬러는 “입학 절차가 복잡한 편”이라며 “8학년이면 대수(Algebra) I 이상의 실력을 갖춰야 한다”고 설명했다.

 겨울 라운드라면 1차 심사 과정으로 12월에 수학과 언어 시험을 본다. 또 같은 날 에세이 시험도 본다. 수 변 카운슬러는 “내신 평균이 3.3에서 3.6 사이라면 수학에서 70점 이상을 받아야 안정권”이라며 “내신 3.6 이상이라면 수학 65점도 합격 가능하지만 대개 80점대 이상을 받는 학생이 지원한다”고 말했다.

 시험은 입학 심사에서 20% 비중을 차지한다. 에세이 비중은 이보다 높은 25%다. 이 밖에 지원서 20%, 내신성적과 2명의 교사 추천서를 합해 20%, 7, 8학년 내신 성적과 수학 성적은 따로 다시 한번 계산해 심사하며 이는 15%의 비중을 차지한다.

 2013학년도에는 총 3121명이 지원해 480명이 합격했다. 경쟁률은 6.5대 1로, 아이비리그 대학과 비슷한 수준이다. 이 학교 졸업생 학부모 김주은(48)씨는 “과학고인 만큼 수학 점수에 예민하다”며 “초·중학교 재학 당시 미국 수학경시대회인 AMC(American Mathematics Competitions), 중학생 대상 수학경시대회인 매스 카운트(Math Counts) 같은 전국 단위 대회 성적이 입학에 도움을 준다”고 했다.

 10학년 이상으로 지원하는 학생은 PSAT(SAT 모의고사)와 미 대학입학능력시험인 SAT 성적도 함께 첨부해야 한다. 성적표 외에 추천서 3개도 제출해야 한다. 매년 10명에서 18명 정도가 10학년에 합격한다.

백상헌 컬럼비아대 3학년

졸업생 2인이 말하는 학교

“과학 공부만 하지 않아요”

-기억나는 특별한 교과 과정은.

“9학년에 배우는 IBET를 꼽고 싶다. 25~30명씩 그룹을 나눠 생물과 영어·테크놀로지를 배운다. 작은 그룹으로 나눠 같은 코스의 수업을 듣기 때문에 우정이 돈독해진다. 신입생이 학교 적응하는 데 도움이 되기도 한다.”

-평균 몇 개의 AP 과목을 듣나.

 “다들 7~8과목은 듣는다. 10과목 이상 하는 학생도 적지 않다.”

-학교 분위기는 어떤가.

 “솔직히 스트레스가 많은 학교다. 학생 간 경쟁 때문이라기보다는 반드시 이수해야 하는 과목이나 숙제가 워낙 많다.”

-재학 중 무슨 활동을 했나.

 “과학 잡지와 모의 유엔 활동을 했다. 스포츠는 조정을 했다. 토머스 제퍼슨 조정팀은 미국 전체에서도 상위인 강팀이다. 공부량이 많지만 예체능 분야에 대한 관리도 소홀하지 않다. 과학만 공부한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골고루 모든 과목을 잘해야 한다.”

네이더 알 나지 Nader Al Naji 프린스턴대 3학년

“입학생 대부분 영재학교 출신”

-토머스 제퍼슨에 지원한 이유는.

 “원래 과학에 관심이 많아 별다른 고민을 하지 않았다. 과학만큼 운동을 좋아했기 때문에 과학과 스포츠 모두에 강한 학교를 선택했다. 이 학교 조정팀은 미국 전국 대회 챔피언을 수차례 했고 축구와 테니스 팀도 전국 대회에서 늘 좋은 성적을 낸다.”

-이 학교에 들어가려는 후배에게 해줄 조언은.

 “학생 대부분이 영재학교(gifted and talented) 출신이다. 나는 일반 중학교 출신이라 솔직히 처음엔 힘들었다. 중학교 때 미리 공부를 많이 해둬야 한다.”

-이 학교를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최상의 과학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곳.”

-아시안이 많다. 이런 게 학교 분위기엔 어떤 영향을 끼칠까.

 “학교 분위기를 좋게 만든다. 한국 학생도 꽤 되는데 다들 착하고 성실했다. 또 공부 잘하고 긍정적인 친구들이라 인종에 대한 편견이나 불편함 따위는 전혀 없었다.”

◆ 매그닛스쿨
수학·과학·예술·기술 등 특정 분야의 특화한 교육을 제공하는 공립 영재학교.

김소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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