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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의 추억, 따뜻할 수는 없을까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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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박지영
성신여대 교수
문화예술경영학과

정말 뜻밖이었다. 지난 10일 가수 비가 제대한 이후 내 마음은 꼬여 있었다. 최근 불거진 연예병사 문제로 국방부 조사가 한창인데, 관련 장본인이 제대 날이 다가왔다고 아무렇지 않게 군문을 나선다는 게 내 상식으론 납득이 안 됐다. 그날 이후 국방부가 어떤 결론을 내릴까 예의주시했다. 내심 솜방망이 처벌로 어물쩍 넘어가겠구나 싶었다. 그런데 어이쿠, 지난 18일 국방부의 발표는 내 예상을 비웃었다. 연예병사 제도 자체를 폐지하는 초강수를 둘 줄은 몰랐다.

 나는 군대에 간 적도 없다. 나이 마흔이니 앞으로 군대에 갈 0.0001%의 확률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군 문제에 촉수를 곤두세운 것은 군대가 남의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누구나 하나 이상은 ‘군대의 추억’이 있다. 군에 간 아들의 엄마, 군에 간 남자친구의 여자친구, 군에 간 손자의 할아버지가 그러하다. 나에게도 있다. 여덟 살 어린 늦둥이 남동생에 관한 군대의 추억이다.

 남동생은 대학 2학년 때 휴학을 하고 군에 입대했다. 항상 어리게만 봤던 동생이 군에 간다니 누나로서 뭐라도 도움을 주고 싶었다. 군에서 소위 ‘잘나가는’ 친척 오빠에게 전화를 했다. 군생활이 편한 후방으로 좀 보내 달라고 부탁했다. 난 그 잘나가는 친척 오빠가 이런 부탁쯤은 들어줄 줄 알았다. 군 면제를 청탁한 것도 아니고, 돈을 써서 로비를 한 것도 아니지 않은가. 그런데 오빠의 대답이 걸작이었다. “대한민국 남자라면 전방에서 남자답게 고생도 좀 해야지! 후방에 편한 부대가 웬 말이냐?”

 친척 오빠가 고생 좀 하라고 ‘빽’을 썼는지, 아니면 운명이 그렇게 정해져 있었는지 동생은 경기도 포천의 8사단으로 자대배치를 받았다. 숫자 8의 모양을 닮아 불리는 ‘오뚝이 부대’다. 맨 처음 이 소식을 듣고는 실없게도 오뚜기 라면과 오뚜기 참치가 떠올랐다. 그런데 웃을 일이 아니었다. 오뚝이 부대는 쓰러져도 백 번이고 천 번이고 다시 일어난다는 오뚝이 정신으로 똘똘 뭉친, 전방에서도 ‘빡센’ 부대 중 하나였다. 이게 다가 아니었다. 동생이 맡은 주특기는 60㎜ 박격포였다. 행군이나 비상 전투 태세 시 대부분의 포들은 차에 싣고 이동하는데 이 25㎏짜리 박격포는 등에 메고 걸어서 이동한다. 고생할 동생을 생각하니 마음이 짠했다.

 동생은 군 생활 동안 어깨가 안 좋아져서 10년이 지난 지금도 매달 한 번씩 정형외과에 가서 치료를 받는다. 치과치료도 제때에 못해 왼쪽 어금니 쪽이 자주 쑤신다. 하지만 나는 감사하다. 동생이 그 어렵다는 오뚝이 부대에서 무탈하게 지내다 제대를 했고, 또 철없던 아이가 군 생활 동안 많이 어른스러워졌기 때문이다.

 요즘 군대에 대한 인식이 확 달라졌음을 얼마 전 실감했다. 우리 과 3학년 학생들과 진로 상담을 하다가 좀 특이한 아이를 알게 됐다. 예고를 나와 대학에서 문화기획자를 꿈꾸며 착실히 공부하던 소영이가 돌연 학군단(ROTC)에 들어갔다. 어렸을 때부터 군인이 멋져 보였던 게 1차 동기고, 군대에서 문화 관련 행사를 기획하고 더 나은 콘텐트를 개발하고 싶다는 게 2차 동기였다. 요즘 같은 취업대란 시절에 소영이는 벌써부터 자신의 미래를 설계해 놓고 뚝심 있게 그 길을 걷고 있다. 모두가 가기 싫어하는 군대에서 자신의 꿈을 찾는 이 ‘역발상’에 무릎을 탁 쳤다. 더구나 앳된 여학생이 아닌가!

 연예병사들이 사라지면 이제 군의 사기 진작은 누가 책임질 것인가? 그런 걱정은 안 해도 될 것 같다. 소영이처럼 군대가 좋아 군대 안에서 자신의 꿈을 펼칠 인재들이 더 많아질 게다. ‘슈스케’나 ‘K팝스타’에서 일반 대중을 상대로 스타가 나왔듯 군대 내에서도 반짝반짝 빛나는 끼의 청춘들이 전우들을 위해 무대에서 연극을 하고 노래를 하고 사회를 볼 것이다. 군대가 더 이상 가기 싫은 곳이 아니라 한 번은 도전해봄 직한 곳이라는 걸 보여주길 바란다. 그리하여 십수 년 후 군대에 갈 나의 두 아들들에게 가슴속에서 우러나는 이런 말을 전해주고 싶다. “군대? 꼭 가봐야지. 너도 알게 될 거야. 그 가치를.”

박지영 성신여대 교수 문화예술경영학과

※필자는 한양대 신문방송학과 졸업, 중앙일보 기자, 런던 소더비 미술대학원 석사, 성신여대 문화예술경영학과 교수, 한국아트인덱스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