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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적 의료산업화 필요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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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이 철
연세대 의무부총장 겸 의료원장

암·심장·뇌혈관·희귀난치성질환 등 4대 중증 질환에 대한 건강보험 보장이 올해 중에 대폭 확대된다. 정부는 올해부터 2017년까지 4대 중증질환 보장 확대에 9조원이 들 것으로 전망하면서 그 돈은 건강보험 누적적립금 4조6000여억원에 앞으로 더 아낀 돈으로 충당할 것이라고 했다. 국민이 낸 건강보험료 중에서 쓰고 남은 돈으로 비용을 조달하므로 새 정책 실시에 따른 추가 부담이 없다니 고마울 따름이다.

 하지만 과연 정부의 예측대로 될까. 4대 중증질환 보장 확대로 추가로 들어갈 보험재정이 올해 3000억원, 내년 9300억원으로 급증할 것으로 예상된다. 아울러 연말쯤 선택진료비·상급병실료·간병비에 대한 건강보험 보장성 확대가 추가 논의될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이 ‘당장 내 주머니에서 돈 나가지 않는다고 하니까’ 안심하고 있지만 건강보험 재정 부담을 가중시킬 요인이 줄지어 있는 것이 현실이다. 정부는 현재 63% 선인 건강보험 보장성을 80%로 확대할 것이라고 말해왔다. 4대 중증질환 보장 확대만으로도 수조원의 추가 부담이 예상되는데 과연 건강보험 적립금과 재정운용 효율화, 건강보험료 소폭 인상 등으로 비용 증가를 감당할 수 있을까.

 또 다른 변수가 있다. 인구 고령화에 의한 가파른 의료비 상승세다.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2005년 8.3%에서 2012년 11%로 2.7%포인트 늘었다. 그런데 같은 기간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 건강보험 진료비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24.4%에서 34.4%로 무려 10%포인트나 늘었다. 이는 점점 더 심해질 것이다.

 반면 청년 취업자 감소, 경기 침체의 장기화 등으로 재정 수입 증가 전망은 밝지 않다. 건강보험 징수율이 이미 99% 수준이라 숨은 재원을 발굴할 여지도 별로 없다. 거북이걸음 같은 건강보험 수입 증가율이 토끼의 뜀뛰기 같은 지출 증가율을 따라갈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보험 재정 적자를 메워줄 세금이라도 많이 걷히면 좋겠지만 그마저도 불투명하다. 기적 같은 묘책이 없다면 정부의 의료 정책에 부수되는 ‘청구서’가 조만간 국민에게 날아올 것이다.

 두 가지를 제안한다. 첫째 건강보험 요율의 현실화를 더 이상 회피하지 말자는 것이다. 올해 건강보험 요율은 5.89%다. 매년 1.5~2.5% 선에서 인상돼 왔다. 지난해 건강보험 수가 인상률(2.2%)은 2011년 소비자물가지수(4.7%)나 보건의료부문 인건비 상승률(4.1%)에 훨씬 못 미쳤다.

 둘째, 의료산업 활성화다. 의료를 복지 측면으로만 볼 게 아니라, 산업 측면에서 새롭게 접근하자는 것이다. 국내 병원은 대부분의 수익이 건강보험 공단의 급여, 본인부담금 등 진료비로 돼 있다. 일부 비급여도 있으나, 이 역시 진료 수익이다. 이를 바꾸는 것이 의료산업화다. 병원이 진료 외, 또는 진료와 연계된 분야인 연구개발·특허·바이오산업·U헬스케어 등에서 고부가가치를 창출하고 수익도 내게 하자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병원 수익에서 차지하는 진료 수익의 비중은 줄어들게 된다. 미국 MD앤더슨 암센터 수익 중 연구비 수익의 비중이 16.5%, 존스홉킨스병원은 10.6%다. 고부가가치 활동에 따라 의료계에 들어오는 수익을 R&D 투자, 노인-저소득 환자들에 대한 지원 등에 활용하면 건강보험 재정 안정화에도 기여할 것이다.

 혁신은 생각을 다르게 하는 데서 나온다. 의료를 재정 전망이 불안정한 건강보험제도 안에 묶어놓을 게 아니라 기본적 보장성은 지키되 과감하게 개방해 경쟁력을 갖춘 산업으로 육성해야 한다. 이는 현 정부가 추구하는 창조경제의 생생한 모델이 될 것이다.

이철 연세대 의무부총장 겸 의료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