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7)법관의 실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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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법관이 부족된다는 말은 어제 오늘에 시작된 이야기가아니다. 해마다 상당수의 법관이 변호사 개업을 위해서 정들었던 보금자리를 떠나고 있다.
이것이 법관부족의 큰 원인이라고 를 한다. 『재판관』이라는 신성한 자리보다 돈벌이 잘되는 변호사 자리를 고르는 경향때문에 항상 법관이 부족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런 사람들이 사직후 바로개업을 할수없도록 변호사법을 뜯어 고치려고 까지 하였다가 뜻대로 안되자이번에는사법시험제도를 고쳐서 부족되는 인원만큼을 성적순위대로 뽑도록 하기로 한다는 말도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은 방법으로 과연 법관의 부족이라는 난제가 해결될것인가. 이직을 막거나 시험합격자의 인원을 늘리는 것과 같은 미봉책만으로는 문제의 실마리가 쉽사리 풀릴것 같지않다.
날이 갈수록 벌어져 가는 동기동창과의경제적 우열의 격차, 사생활을 희생하지 않으면 감내할수 없을 정도의 격무, 이런것들이 해마다 정든 고장을 떠나는 고독한나그네들이 내세우는 이유인 것이다.
그러나 문제의 원인은 그보다도 훨씬 더 깊은곳에있는것이아닐까. 예산의수배에 달하는 세수입을올려주건만 돈주머니를 쥔 사람들이 사업관청이 아니라는 이유로 거부하는바람에 그 흔해빠진 몇대의통근「버스」조차 마련하지못하고 낡아빠찐「지프」에 오직 몇사람의 부장판사들만이 어울려서 겨우 출근만 하는 이 실정, 삼복 더위에도 냉방장치하나 없는 법정에서 뜨거운 법복을 걸진채 하루종일당사자와 불의와 그리고 또한 더위와 싸워야 하는 고된일과. 이것이 오늘날 사법부의 실정이다.
이런 실정과 행정부를 비겨보면 엄청난 차이가있다. 사법부가 정립된 국가의 삼권의 하나이며 그를 구성하고있는 법관 또한 다른 양부의 요원못지않은 요원이라는 양식이 위정자들의 마음한구석에서나마 싹트고 이와같은 마음으로 사법부를 대해 줄때 법관부족이라는 사법부의 연래의 고질은쾌유의 길을 걸을 것이다.【김준수<서울민사지법 부장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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