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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키아는 개방형 혁신에 실패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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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0면

남민우
대통령 직속 청년위원회 위원장
벤처기업협회장, 다산네트웍스 대표

모든 기업은 변화하는 환경에서 생존하기 위해 혁신을 통해 진화를 거듭해야 한다. 하지만 혁신의 에너지는 기업이 성장할수록 그에 반비례하여 줄어들게 된다. 기업이 성장하고 대형화될수록 잘 갖춰진 시스템 안에서 직원들의 기업가 정신은 희미해지기 때문이다.

 경영자들의 고민도 여기에서 비롯된다. 새로운 시장이 형성될 때 기존의 시장 흐름에 익숙해진 사람들은 체질적으로 혁신에 강할 수 없다. 사람은 누구나 현재의 상태가 최선이라고 믿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현재의 모습은 지금까지의 시장 상황에 가장 잘 적응해 온 결과로도 볼 수 있지만 지속 성장을 위해서는 현실 안주가 가장 큰 적이 된다. 진화론적 관점에서 봐도 보수는 생존본능에 의한 본성이고, 변화나 진보는 이성적 고찰의 결과다. 본성과 이성이 부닥칠 때 대부분 본성이 이성을 누르게 된다. 즉, 시장의 변화를 읽어낸 내부의 선지자가 아무리 혁신을 외친다고 한들 조직 내 대부분의 사람은 본능적으로 저항하게 되어 있다.

 필름 시장을 석권했다가 디지털 카메라의 등장으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간 코닥이나, 스마트폰이라는 휴대전화 시장의 새로운 흐름에 적절히 대응하는 데 실패해 곤경에 처한 노키아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해당 기업들은 당대 최고의 인재들이 모여 있던 집단이었고, 가장 많은 정보와 연구원들을 보유하고 있는 1등 기업이었다. 그들도 시장의 흐름이 변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현실 안주자들에게 발목이 잡혀 혁신의 결단을 내리지 못했거나, 혹은 신제품 개발을 통한 내부 혁신을 시도했으나 그들보다 더 잘하는 외부의 이노베이터들에게 패배한 결과 도태된 것이다. 특히 애플이 아이폰과 앱스토어를 통해 수많은 외부의 애플리케이션 개발자들을 끌어안고 혁신에 성공하는 동안 폐쇄적인 생태계에 안주하다 패권을 내준 노키아는 열린 기업 생태계에서의 창조적 협력과 공생을 통한 개방형 혁신, 즉 오픈 이노베이션의 중요성을 잘 보여준다.

 이러한 이유로 구글을 비롯한 많은 글로벌 기업들이 벤처 투자 등의 형태로 외부의 기술이나 아이디어, 지식을 받아들여 혁신을 추구하고 있다. 특히 정보기술(IT) 산업의 경우 빠른 기술 확보가 중요해지면서 외부 자원의 활용이 더욱 중요한 경영 전략이 되고 있다. 외부로부터의 혁신은 주로 인수합병(M&A) 등의 형태로 많이 나타나는데, GE나 시스코 등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글로벌 대기업들이 이러한 전략을 통해 지속 성장과 시장 지배력을 키워나가고 있다. 혁신 과정에서 외부의 자원을 받아들임으로써 비용은 줄이고 성공 가능성을 높이며 부가가치 창출을 극대화하는 개방형 혁신의 전략이다.

 외부에서 혁신의 에너지를 들여오는 대신 내부 혁신을 추구하되 기존의 룰을 파괴하는 방식으로도 기업의 혁신은 가능하다. 이러한 파괴적 혁신의 한 형태는 사내벤처다. 정규 팀에서 소화하기 어렵거나 신속한 의사결정 또는 창의적 아이디어를 필요로 하는 신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사내벤처를 육성하는 경우가 많다. 삼성SDS에서 분사한 NHN이나 데이콤에서 분사한 인터파크 등이 대표적인 사내벤처 성공사례로 꼽힌다. 일반적으로 벤처기업들의 성공 확률은 매우 낮은 데 비해, 사내벤처로 독립한 기업들은 모기업으로부터 다양한 지원을 받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성공 가능성이 높다. 기업 입장에서도 신사업 활성화를 위한 여건 조성뿐만 아니라 우수인력 유출 방지, 유휴 능력의 활용 및 직원들의 사기진작 등 기업 내부에 안고 있는 여러 문제점들을 해소하는 데 도움이 된다. 다만, 사내벤처가 온실 속의 화초가 되지 않으려면 모기업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면서 기업가 정신을 강화할 수 있는 시스템을 잘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

 최근 필자의 회사에서도 혁신을 위한 다양한 노력이 강구되고 있다. M&A와 같은 외부의 혁신 에너지 유입을 활성화하는 한편 창의적인 벤처 DNA를 조직 전반에 확산시키기 위해 사내벤처를 장려해 1호 사내벤처의 설립을 앞두고 있다. 시장을 변화시키는 혁신은 기업가 정신에서 비롯된다. 사내벤처 성공 스토리를 통해 우리 직원들에게도 기업가 정신이 새롭게 불 지펴지기를 바라며, 이를 계기로 더 많은 창조적 파괴가 일어나기를 기대한다.

남민우 대통령 직속 청년위원회 위원장 벤처기업협회장, 다산네트웍스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