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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행 역량 믿어도 되나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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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0면

이상렬
경제부문 기자

물가안정은 한국은행의 금과옥조다. 한은법 제1조1항이 ‘물가안정 도모’다. 그런데 한은이 물가 전망을 틀리게 한다면? 틀린 물가 전망을 갖고 물가를 안정시킬 수는 없다. 엉뚱한 데 화살을 날리면서 과녁에 명중하길 바라는 것이나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한은은 11일 경제전망에서 올해 소비자물가상승률 전망치를 4월의 2.3%에서 1.7%로 대폭 낮췄다. 한은의 해명은 “농산물 및 국제원자재 가격 하락 등으로 물가 상승 압력이 축소된 때문”이다. 소비자물가가 8개월 연속 1%대 상승에 머물고 있는 것을 감안하면 한은의 수정은 늦었지만 바른 판단일 수 있다.

 그러나 짚고 넘어갈 것이 있다. 한은의 자세다. 전망은 틀릴 수 있다. 하지만 전망이 틀릴 수 있다면 다른 의견도 경청할 줄 알아야 한다. 4월로 돌아가보자. 한은은 당시 “금리를 조금이라도 내려서 경제에 온기가 돌게 해달라”는 시중의 호소를 일축하고 금리를 동결했다. 그때 내세운 논리가 인플레이션 우려였다. 김중수 한은 총재는 “금리 결정 때 중앙은행이 첫 번째로 보는 것이 인플레다. 하반기엔 거의 3%까지 갈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시장에선 귀를 의심했다. 당시에도 소비자물가상승은 5개월째 1%대였고, 10개월 연속으로 한은의 물가안정 목표(2.5~3.5%) 하한선에 미달하고 있었다. “세계경제 부진으로 물가는 당분간 걱정거리가 아니다”는 지적이 많았지만, 한은은 귀 기울이지 않았다. 되레 기저효과(基底效果)를 주장했다. 지난해 하반기 물가가 낮은 만큼 올 하반기엔 올라갈 것이라는 논리였다. 당시의 장담이 머쓱했던 것일까. 김 총재는 이번엔 “(경제전망) 모형 자체가 완벽하지 못했다는 측면이 있겠지만, 대외환경이 우리 예상보다 많이 차이가 났다”고 물러섰다. 한은은 공식적으로 “물가 모형에 개선할 점이 없는지 살펴보겠다”고 말했다.

 한은은 누가 뭐래도 최고의 조사 기관이다. 서민이든 대기업이든 한은 전망을 믿고 살림살이 계획을 세운다. 그런데 한 해의 절반이 지난 지금 와서 모형 타령을 하다니. 과연 한국은행의 역량을 믿어도 되는가.

이상렬 경제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