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이산가족 상봉은 정치적 흥정 대상 아니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0면

북한이 이산가족 상봉을 위한 남북 당국 실무회담을 제안했다 하루 만에 거둬들였다. 개성공단 정상화를 위한 실무회담과 별도로 북한은 금강산 관광 재개와 이산가족 상봉을 위한 실무회담을 갖자고 10일 남측에 제의했다. 정부가 “지금은 개성공단 정상화를 위한 회담에 집중할 때”라며 이산가족 상봉 실무회담만 받아들이자 다음 날 북한이 똑같은 이유를 들어 스스로 제안한 두 회담 모두 보류한다는 입장을 밝힌 것이다.

 이산가족 상봉 실무회담을 제안한 북한의 진정성을 의심케 하는 실망스러운 처사다. 달러 박스인 금강산 관광 사업 재개를 위한 미끼로 이산가족 상봉 카드를 활용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안 나올 수 없다. 이산가족 상봉은 순수한 인도주의적 문제다. 그 어떤 정치, 경제적 사안과도 연계시킬 문제가 아니다. 이산가족 상봉이 마치 무슨 시혜(施惠)라도 되는 양 실무회담을 제안했다 말았다 하는 것은 혈육의 정에 굶주린 이산가족을 우롱하고 농락하는 비도덕적 행위다.

 통일부와 대한적십자사가 운영하는 이산가족정보통합시스템에 등록된 이산가족 상봉 신청자만 약 12만9000명이다. 이 중 5만6000명은 이미 사망했다. 생존해 있는 7만3000명도 대부분 초고령이다. 거의 절반에 달하는 49.8%가 80대 이상이다. 이산가족 상봉 행사는 벌써 3년째 중단 상태다. 연로한 이산가족들이 지금 느끼고 있을 실망감과 허탈감을 생각한다면 북한은 어떤 조건과 이유도 붙이지 말고 이산가족 상봉을 위한 실무회담에 당장 나와야 한다. 더 이상 미룰 시간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