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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작] '오렌지 카운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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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그때 나는 어렸다. 어린 시절 어른들 몰래 숨어 봤던 영화 중에 '졸업'(1967년)이 있다. 더스틴 호프먼이 주연했는데 그는 학교를 졸업한 뒤 방황하는 청년으로 분했다. 수영장에서 혼자 잠수를 하고, 결혼식장에서 사랑하는 이와 도주하는 것은 영화사의 명장면이다.

'오렌지 카운티'는 이를테면, 거꾸로 뒤집은 '졸업'이다. 대학에 입학하려는 한 남학생이 있다. 우연히 명문대 교수의 책을 읽은 그는 감동한다. "나도 위대한 작가가 되리라!"고 결심하지만 예상 외로 입학시험에서 떨어진다.

남은 방법은? 학교 관계자를 하나씩 만나 설득하는 것. '졸업'이 사회적으로 부적응 상태인 청춘을 통해 기성 세대에 대한 환멸을 담았다면 '오렌지 카운티'는 가벼운 청춘 코미디로 페이스를 조절한다. 스탠퍼드 대학에 지원한 숀은 담당 교수에게 '오렌지 카운티'라는 글을 동봉한다. 실제 생활을 그대로 투영한 소설이다.

술에 전 엄마, 약에 취한 형, 그리고 동물에 병적으로 집착하는 여자친구에 이르기까지 모두 사실이다. 숀은 입학을 허가받지 못하자 스탠퍼드로 직접 달려간다.

진지함의 미덕이 이 영화에는 부족하다. 뭔가 진중한 분위기가 될 것 같으면 영화는 왁자지껄한 대사를 쏟아낸다. 그럼에도 밉게 보이지 않는 이유는 영화가 성장 이야기를 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숀은 문제 가정에서 살아가고 있다. "우리 이혼하는 게 어떨까?""어머, 신나라!" 이런 대화가 자연스럽게 오가는 집안이다. 작가 지망생인 숀의 주변엔 다행인지 불행인지 정상적인 사람이라곤 보이지 않는다. 학교 입학을 돕기 위해 가정을 방문한 관계자 앞에서 어머니는 술냄새를 풍기며 넋두리를 늘어놓는다.

"이 아이 아빠는 스무살짜리 여자한테 반해 나랑 이혼했다우." 노출증 환자인 형은 속옷만 달랑 입고 거실에서 어슬렁거린다. '오렌지 카운티'는 할리우드의 차세대 기대주들의 영화다. 배우 톰 행크스의 아들 콜린이 주연했고 감독인 제이크 캐스던은 '프렌치 키스'를 만든 로렌스 캐스던의 아들이다.

케빈 클라인.체비 체이스.벤 스틸러 등의 스타가 우정 출연하고 있다. MTV에서 제작한 영화답게 싱싱한 유머감각이 넘친다. 원제 Orange County. 2002년작. 15세 이상 관람가.

김의찬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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