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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대통령 "해 진 뒤 북에 있지 말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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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개성공단 정상화를 위한 2차 실무회담 대표단과는 별도로 59개 입주업체를 비롯한 개성공단관리위원회·KT·한국전력 등 유관기관 관계자 등 96명도 10일 개성공단을 방문했다. 이들을 태운 차량들이 이날 오전 공단으로 가기 위해 경기도 파주시 남북출입사무소를 통과하고 있다. 이들은 이날 오후 전원 귀환했다. [신화=뉴시스]

3개월 만에 남측에 공개된 개성공단은 황폐한 유령 도시를 방불케 했다. 123개 개성공단 입주기업 관계자들이 방북한 10일. 출입사무소의 시계탑은 시간이 맞지 않았고 공단 내 신호등은 꺼져 있었다. 보도블록엔 10~20㎝ 길이의 잡초가 무성했다. CU 편의점·주유소·사무실은 모두 단전 상태였다.

 500억원을 들여 우리 측이 지은 종합지원센터도 마찬가지였다. 냉방 장치가 고장 나 있었고, 구내식당 내 냉장고에는 ‘사용금지’ 딱지와 ‘봉인’ 표지가 붙어 있었다. 북측 관리인 2명이 봉인을 뜯자 냉장고 안에는 마요네즈 등 몇 가지 소스류밖에 없었다. 철수 직전 식자재 부족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이런 종합지원센터에서 남북은 공단 재가동 방안을 놓고 이날 오전 10시30분부터 당국 간 실무회담을 했다. 하지만 최종 합의문을 도출하지 못한 채 오후 5시44분쯤 협상이 종결됐다. 밤샘 협상이 될 것이란 예상을 뒤집고 7시간여 만에 조기 종료된 셈이다. “해 떨어진 다음에 북한에 머물러 있지 않도록 하라”는 박근혜 대통령의 협상 지침이 내려왔기 때문이라고 정부 관계자는 설명했다. 협상팀의 안전을 위해 심야 협상은 하지 말라는 지시였다. 대신 양측은 이날 마무리 짓지 못한 협상을 15일 같은 장소에서 진행키로 했다.

 이날 회의에서 남측은 북측의 일방적인 공단가동 중단 조치에 따른 재발방지책 등을 강조한 반면 북측은 책임을 남측에 떠넘기며 조속한 공단가동을 주장해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 오전에 30분간 열린 전체회의에서 우리 측 수석대표인 서호 통일부 남북협력지구지원단장은 “누가 봐도 더 이상 일방적으로 통행과 통신을 차단하고 근로자를 철수시키는 일은 없겠구나 하고 인정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하라”고 촉구했다. “가동 중단조치로 입주기업이 본 피해에 대해 북측의 책임 있는 입장 표명이 있어야 한다”고도 했다.

 이에 북측 단장인 박철수 중앙특구개발지도총국 부총국장은 “개성공단을 정상 가동하는 데 저촉되는 일체의 행위를 중지해야 할 것”이라고 맞섰다. 북한이 공단 가동을 중단하면서 명분으로 내세웠던 한·미 합동군사연습 실시 등에 불만을 표시한 셈이다. 그러면서도 “개성공단의 설비 점검·정비를 조속히 끝내고 재가동에 들어가도록 할 것”이라고 했다.

 양측은 오후 들어 세 차례 수석대표 단독접촉을 이어가다 결국 오후 5시40분에야 4분간의 전체종결회의를 열고 15일 회담 재개를 합의했다. 회담 관계자는 “단판으로 밤샘 회담을 하기보다 몇 차례가 되더라도 신중히 회담을 진행하라는 청와대의 의중이 반영된 것”이라고 밝히며 여러 차례 추가 회담이 열릴 수 있음을 시사했다.

 이 관계자는 “북한이 개성공단 중단과 관련해 최고 존엄에 대한 비난 등의 문제를 제기해 우리 측도 우리 체제의 최고 존엄이 있다는 것을 강조했다”며 “북한이 의제와 무관한 6·15공동선언 이행과 ‘우리 민족끼리’ 등의 주장도 펼쳤다”고 전했다.

 협상이 결렬된 뒤 북한은 판문점 연락관 채널을 통해 금강산 관광 재개 및 이산가족 상봉 행사를 위한 별도의 실무회담 개최를 각각 17일과 19일 금강산과 개성에서 열자고 제안했다. 이에 정부는 이산가족 상봉을 위한 실무접촉 제안은 수용하되 장소를 판문점 평화의집에서 하자고 수정 제의했다. 다만 금강산 관광 실무회담에 대해선 개성공단 문제에 집중하는 것이 맞다는 입장을 통보했다.

 회담 대표단과 별개로 전기·전자업종 59개사 관계자와 개성공단관리위·한전·KT 관계자 등 모두 96명도 방문했다. 입주기업들은 12일부터 개성공단에 남겨둔 완제품과 원·부자재를 가지고 나오기로 했다.

개성=공동취재단, 이영종·김영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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