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경제 핵심 원격진료 … 의협 "취약지 허용도 반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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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강원도 횡성군 안흥면 소사보건진료소에는 20㎞ 떨어진 횡성보건소와 원격으로 연결할 수 있는 화상진료시스템이 마련돼 있다. 이 덕분에 당뇨·고혈압이 있는 마을 노인들은 그간 하루 반나절을 들여 보건소를 오가던 수고를 덜었다. 횡성보건소 의사의 지시에 따라 간호사인 소사보건진료소장이 전자청진기를 환자에게 대면 온라인을 통해 환자 상태가 의사에게 전달된다. 진료가 끝나면 원격으로 처방전을 발행한다. 하지만 보건소 의사가 안흥면의 집에 있는 환자를 원격진료할 수는 없다. 보건소 의사를 만나려면 보건진료소로 나와야 한다. 진료소장이 옆에서 지켜야 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현행 의료법 조항 때문이다. 의료법은 의료인과 의료인끼리만 원격의료를 할 수 있게 규정한다. 의사-환자 간 원격진료는 금지한다. 횡성군의 경우 보건소-환자 사이에 보건진료소장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이런 규제는 의료관광에도 걸림돌이 되고 있다. 강남세브란스병원은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사할린·사하공화국 세 곳과 원격의료 서비스를 한다. 2011년 중순 시작해 지금까지 약 550명이 이용했다. 한국관광공사 블라디보스토크 지사에 원격진료실을 설치해 놓고 현지 의사가 참여한다. 현지 의사의 도움으로 러시아 환자가 화상으로 한국 의사의 상담을 받는다. 이것도 의료인 대 의료인 간 원격의료다. 한국관광공사 지사로 반드시 나와야 하기 때문이다.

 강남세브란스병원 안철우 국제진료소장은 “해외환자가 혈당·콜레스테롤 측정기로 수치를 재서 휴대전화로 한국 의사한테 전송할 수 있는 기술이 개발돼 있지만 이것을 하려면 의사-환자 간 원격진료가 허용돼야 한다”고 말했다.

 미래창조과학부는 지난 4월 이 같은 규제를 풀어 원격의료를 창조경제의 대표 프로젝트로 육성할 것이라고 밝혔다. 첨단 정보통신기술(ICT)을 의료와 접목해 의료 취약계층을 돕고 관련 산업을 발전시키려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의사-환자 간 원격진료를 부분적으로 허용하려던 계획이 난관에 부닥쳤다. 의사협회와 시민단체 등의 반대 때문이다. 대한의사협회는 9일 기자회견을 열고 “원격진료를 제한적으로 허용하는 것에 반대한다”고 밝혔다. 온라인으로 환자의 체온이나 맥박 수치를 받는 것만으로는 환자의 질병 상태를 정확하게 진단할 수 없다는 점을 내세웠다. 원격진료가 허용되면 대형병원으로 환자가 쏠리는 현상이 심해질 것이라는 점도 반대하는 이유다. 보건의료단체연합 관계자는 “도서산간 지역 주민 의료는 안전성이 확인되지 않은 원격진료보다 공공의료기관 확충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형병원 입장은 다르다. 김석화 서울대병원 성형외과 교수는 “정부가 추진하는 원격진료는 전 국민을 대상으로 모든 치료를 원격으로 하자는 게 아니다”며 “세계적으로 많은 기업이 원격진료 시장에 적극 참여하고 있는데 우리는 20년 동안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보건복지부 건강정보태스크포스(TF)팀 손영래 과장은 “정보기술을 활용해 만성질환을 관리하는 시범사업을 올해 강원도 전역으로 확대한 후 결과를 지켜볼 계획”이라고 말했다. 복지부는 1989년부터 원격의료 시범사업을 진행해 왔다. 그러다 2010년과 지난해 의료취약 지역 거주자(446만 명 추정)에 한해 의사-환자 간 원격의료를 허용하려 했지만 국회의 반대로 무산됐다.

김혜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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