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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할양의 교훈|정계석과 토문강|홍종인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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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중공정권이 북한괴뢰정권에 대하여 백두산 일대의 약2백50평방km의 우리 영토를 배어내라고했다는 보도는 우리국민을 크게 놀라게 하고 있다. 6·25전쟁때에 중공이 북괴를 도와 출병했을때에 그러한 밀약이 있었던 듯이도전하고 있으나 그이유는 무엇이건 간에 한나라의 역사적 배경이 뚜렷한 영토를 베어내라는 일이란 오늘 이시대에는 도저히 있을수 없는 것이다.
비록 이북땅이 우리의 행정력이 미치지는 못한다하더라도 종국에는 하나의 우리나라로 통일되지 않아서 아니될것을 생각할때 우리는 우리의 영토권이 절대 존중되어야할 것을 주창치 않을수 없는 것이다.
제2차 대전이 끝나면서 독일이 동·서로 분할될때 소련군 점령하의 동독일의 동편쪽의 광범한 지역을「오델· 나이제」강의 선에서 잘라서「폴란드」에 떼어붙인 일이있다. 그러나 독일사람들은 이를 절대 인정하려고 하지않는다.
소련으로서는 독일과의 완충지역을 더 널리 가지려는 생각에서 한것인 모양이나 이는 결국 두나라의 국민감정상 원한을 돋우고 그때문에 중대한 분쟁을 일으키게 될 뿐인것이다.
백두산일대의 영토를 중공이 베어내라는 외신보도에 관련하여 우리는 만주땅과 우리땅과의 국경선문제와 백두산의 위치에 대해서 우리들이 새로운 검토와 이해를 가져야 할것이라고 본다.

<강희제의 성세노름>
근세에와서 논쟁되기 시작한 백두산 주변의 국경선문제를 소위 정계비에서부터 출발한다면 두가지 어려운 문제가 생긴다. 그하나는 백두산의 위치문제이고 다른하나는 두만강이 국경선이 될 수없다는것이다. 문제의 정계비는 백두산 천지를 둘러싼 분화구 외벽 남쪽밑(고도2,200m)에 세워졌었다. 정계비에 기록된 대로 말하면 정계비 오른쪽(서편)으로 홀러내리는 개울줄이 압록강의 원류요, 왼쪽(동편)으로 흘러내리는 개울줄이 토문강의 원류인것이다.
두개의 강의 원류는 모두 백두산분화구 외벽에서 흘러내리는 것인데 비가 내리지 않으면
물이 흐르는것도 볼 수 없다. 천지에서 직접 폭포가되어 떨어지는 물은 천지북쪽의 달문에 애서 홀러내리는것 하나뿐이고, 그것이 송화강의 원류로 되어있는것이다. 이러한 지리적 관계를 놓고 정계비에 기록된대로 국경선을 가린다면 백두산은 어느나라에 속하느냐를 말하기 어렵게된다.
지금으로부터 2백50여년전 숙종(숙종38년)때에 정계비를 세우게된 연유를 캐보면, 그당시의 중국 청조의 강희제(청조·강희제)가 그선조의 발상지가 만주인때문에 만주대륙일대의 여러종족이다. 그러하듯이 강희제는 장백산(백두사의 중국명칭)이 청족발상의 거룩한 산이고 그산맥이 중국본토 산동 땅에까지 뻗었다고하여 청족의 중국대륙통일이 우연치않음을 과시코자했던것이다.
강희제는 멀리 길림까지 와서 장백산에 대하여 제의를 갖추고 그지방관으로 하여금 장백산 현지를 답사케하고 청국과 강희의 권위로써 장백산이 만주땅임을 주창코자 했던 것이다. 이런 점으로 말한다면 우리민족에게는 청족보다 더오랜 역사적 배경을 가진 것이다. 백두산은 단군건국설화로부터 비롯하는 우리민족 발상의 성지로 되어있는 것이다.
문제의 다른 하나는 정계비에 보이는 토문강은 두만강이 아니라는 점이다. 정계비 왼쪽이되는 토문강의 원류인 개울줄 오른쪽 두덩에는 정계석의 돌무더기가 띄엄띄엄 놓여있고 그개울줄은 동남쪽으로 흐르다가 북쪽으로 뻗어나가 만주땅 간도의 안도현으로 흘러내려갔다.

<그렇다면 간도는>
그와는 달리 두만강의 원류는 정계비가 섰던 자리에서 직선거리로 약8km 남쪽으로 떨어진 지점의 무두봉(무두봉·1,929.5m)동쪽 골짜기에서 시작해서 동쪽으로 흘러 신무성으로해서 신무성 수가 되고 무산군심장면농사동 근처에서부터 두만강 상류의 이름을 가지게 되는것이다.
이러한 지리관계로 말하면 벡두산남쪽기슭에서 동북으로 뻗은 토문강을 국경선으로 한다면 간도일판이 한국쪽에 속하는 땅이되어야 한다는 주창이 나온다. 그런때문에 1883년 간도문제때문에 다시 벡두산 국경선문제가 생겼을때 청국측대표도 우리대표와 현지를 답사하다가 당황했었다는것이다. 그후 일본의 한국침략으로 간도문제도 토문강 논쟁도 뒤엎어 놓게되었던것이다.
그런데 그후 정계비는 없어져버렸다. 일본이 만주를 침략하고 괴뢰정권을 세울 그때쯤 일본군인들이 만주벌판을 제땅같이 넘보며 여기가 무슨 국경이냐고 정계비를 뽑아 치웠던것이 거의 분명한 사실이라고 일본사람의 기록에 나타나 있다.
그러나 정계석의 돌무더기만은 그대로 남아있어서 토문강의 원류를 가리키고 있었다. 정계석의 돌무더기는 고산자의 대동여지도에도 명백히 표시되어있다. 필자는 근30년전 내손으로 찍었던 현지의 정계석 사진 한장을 여기에 소개하며 고산자 김정호님이 백여년전 그 어려운 길의 백두산(2,743·5m)을 실지 답사했던 그 공로를 한번더 예찬코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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