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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팝 유럽서 왜 떴나 … 폭력·섹스·마약 없는 '청정 음악'이니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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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홍석경 교수

K팝은 어떻게 유럽 주류사회 청소년들을 사로잡았을까.

 유튜브라는 새로운 디지털 플랫폼, 서구 걸·보이 밴드의 부재, 가창·비주얼·퍼포먼스 3박자 능력을 갖춘 한국 아이돌의 강점 등이 그 이유로 꼽힌다. 여기에 폭력, 섹스, 마약이 없는 청정 팝, 양질의 도덕적인 혼종형 엔터테인먼트라는 이미지가 주효한 것으로 판단된다. 홍석경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가 『세계화와 디지털 문화 시대의 한류』(한울)에서 내린 진단이다.

 홍 교수는 2000년부터 프랑스 보르도대 교수로 재직하면서 현지 한류 붐을 체험·관찰했다. 그는 올 초 서울대로 자리를 옮겼다. K팝과 ‘한드(한국드라마)’열풍 등 유럽발 한류를, 디지털·다문화·혼종성 등의 키워드로 분석했다. K팝에 대한 이론적·학술적 접근이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정치적으로 문제 없고 도덕적으로도 깨끗한, 그래서 부모들이 반대할 이유가 없는 음악. 유럽의 K팝 이미지다. 사진은 샤이니의 공연 모습. [중앙포토]

 홍 교수는 “현재 유럽에서 K팝은 ‘여자애 같은 얼굴의 어린 남자들과 인형 같은 어린 여자들이 로봇처럼 춤추는 상냥한 음악’으로 통하고 있다”며 “성과 마약, 폭력이 없는 ‘소독된’ 엔터테인먼트라는 이미지로 보수적인 중산층, 주로 노동자층이 많은 다문화 청소년층, 심지어 30~40대 부모들까지 사로잡았다”고 분석했다.

 술, 마약, 자유로운 성관계가 연상되는 서구의 그룹들과 달리 건전한 아이돌의 이미지, 거기에 일체의 불온함, 정치적 저항이 없는 ‘안전한’ 음악이라는 인식이 서구 보수적인 중산층을 파고든 요인이라는 것이다.

 또 백인음악과 강한 혼종성을 보이는 K팝은 다문화 청소년들에게 백인에 대한 열등감 없이도 즐길 수 있는 웰메이드 오락으로 받아들여졌다.

 홍 교수는 “아무리 패션과 스타일이 튄다고 해도 빅뱅과 2NE1에게는 마돈나, 레이디 가가에서 보이는 정치적 불온성이 없다”며 “K팝의 체제순응성은 인기비결이지만 동시에 한계”라고 지적했다.

 그는 “싸이의 성공이 가지는 진정한 의미는 지나치게 말끔하고 소속된 K팝의 이미지를 개선한 것”이라며 “자신의 성공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면서 능숙한 영어로 세계의 매체에 대응한 싸이는, 갑작스러운 성공에 묻혀서 준비된 대답을 반복한 자유롭지 못한 K팝 아이돌과 다른 이미지를 유통시켰다”고 말했다. 잘 생기거나 깎은 듯한 춤을 추는 것도 아니고, 정치적으로 삐딱하며 B급 정서로 무장한 싸이의 성공이 기존 K팝의 스펙트럼을 넓혔다는 분석이다.

 홍 교수는 또 “싸이는 이미, 서구에서 최고의 록스타, 팝스타 위치에 도달하고 예술가로 대접받기 위해 필요한 체제 비순응성, 정치의식을 지닌 사람으로 각인됐다”고 설명했다. 

양성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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