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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무장지대, 그곳은 아물지 않은 마음의 흉터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인간의 마음을 가로지르는 국경은 할퀴어졌네.
고요한 심판의 펜을 쥔 낯선 이들에 의해.
그리고 그 국경들이 피를 흘릴 때
우리는 두려움을 갖고 바라보네.
지도를 가르는 선의 색이 붉게 물드는 것을.
-마리아 만스 ‘가자 지구’ 중

지난 26일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인근 캠프 보니파스 쪽으로 진입하는 차 앞으로 ‘위협적인 존재’가 나타났다. 닌자 스타일의 검은색 베일을 쓰고 군복 바지를 입은 한국인. 손에는 ‘무서워 보이는 큰 무기’가 들려 있다. 이 지역의 험한 분위기에 딱 맞는 사람이다. 모토가 ‘최전방에서’인 캠프 보니파스의 이름은 1976년 판문점 도끼만행 사건 때 북한군에 의해 살해된 미군 대위 아서 보니파스에서 따왔다. 오늘날 JSA는 한국에서 미군이 북한군과 얼굴을 마주 보고 대치하는 유일한 장소다.

북한군은 ‘실재(實在)’한다. 불안감을 필요이상으로 고조시키는 국내외 언론사 부장들이나 네오콘(신보수주의)의 오피니언 리더들, 할리우드에서 악당 얘기로 먹고 사는 영화 제작자들이 만들어낸 가짜가 아니다. 판문점은 ‘아시아의 스파르타’ 격인 북한군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유일한 곳이다.

JSA는 외국 언론사들엔 지구상 가장 상징적인 장소이자 한반도에서 가장 유명한 장소다. 서울의 광화문 사거리나 평양의 김일성 광장, 설악산·백두산보다 JSA의 인지도가 더 높을 것이다. 외신기자들이 몰려와 ‘한반도 긴장 갈수록 격화’라는 식의 기사를 쏟아내는 곳이기도 하다. 미국 대통령부터 유럽 왕족까지 전 세계 VIP들이 냉전의 국경이자 최강 무력이 밀집 배치된 곳 중 하나로 악명 높은 비무장지대(DMZ)를 보기 위해 찾는 곳이기도 하다.

하지만 찬찬히 뜯어보면 그런 식의 얘기는 말도 안 된다. JSA가 ‘진짜’ DMZ를 상징하는 곳이 절대 아니기 때문이다. 그곳은 일촉즉발의 화약고라기보다 남북 간 대화가 이뤄지는 곳이다. 물론 몇 년 전부터 중요한 대화가 이뤄진 적은 없지만 말이다.

지난 26일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군사정전위원회 회의실 밖에 서 있는 북한 군인들. 이들은 디지털 카메라를 들고 남측 관광객 모습을 촬영했다. [사진=최정동 기자]

JSA는 진짜 DMZ가 아니다

DMZ의 다른 지역과 달리 JSA는 말 그대로 비무장 지역이다. 마지막 총성은 84년 소련인의 망명 시도 때 울렸다. 판문점 곳곳에 보안 카메라의 감시망이 깔려 있지만 중화기는 눈에 띄지 않는다. 캠프 보니파스의 주차장엔 장갑차가 아닌 민간 차량과 관광 버스가 가득하다.

유엔사령부와 북한군은 모두 허리에 권총을 차고 있는데 (디지털 카메라와 함께) 이는 자동 소총을 든 21세기 군인의 전형적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오죽하면 겉모습이 JSA에서 가장 위협적이었다고 글머리에 썼던 ‘무서운 한국인’이 군인도 저격수도 아닌 민간인 정원사였을까. 머리에 쓴 베일은 차양이었고 손에 든 ‘무기 같은 것’은 잡초 제거기였다.

북한 쪽은 긴장이 더 팽팽하지 않을까 싶다면, 다시 생각하시길. 2006년 북한을 방문해 판문점의 북측 지역을 둘러본 적이 있다. 그곳의 북한 군인들은 다리지도 않은 낡은 군복을 입고 어슬렁거렸다. 평양의 군 퍼레이드에서 정확히 자로 잰 듯 행진하는 군인들이 아니었다. 레이밴 선글라스를 쓰고 양손을 허리에 댄 부동자세로 경계를 서는 한국군보다 북한 군인들이 덜 위협적으로 보였다.

진짜 DMZ는 한반도의 허리를 155마일(248㎞) 가로지르고 관광객이나 세계 VIP들의 방문이나 민간 차량, 관광버스로 혼잡하지도 않다. 이 지역은 쉽게 접근할 수 없다. 예전에 군 경계초소(OP)를 방문했었는데 당시 내가 본 모습은 JSA와 전혀 달랐다. 철책선을 따라 곳곳에 지뢰 경고판이 있었고 대부분 차량은 군용이었다. 위장한 군인들은 무장을 했다. OP는 중화기와 방어 시설로 가득 찬 요새다.

DMZ 너머 북측에도 눈에 띄는 것은 거의 없다. 전쟁 영화들이 잘못 그려내는 부분이다. 할리우드 영화에서 전방은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고 긴급히 움직이며 소리를 지르는 군인들로 가득하다. 하지만 이는 영화일 뿐이다. 실제 최전선은-벌어지고 있는 전투가 없다면-조용하고 움직임이 없다. 현대식 무기는 정확도와 치사율이 높아 군인들은 되도록 눈에 띄지 않게 움직인다.

전방에 미군은 없고 한국군만 배치돼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한국은 미국의 힘으로 유지되는 평화, 즉 팍스 아메리카나(Pax Americana)에 속해 있다. 그런데 왜 2만7500명에 달하는 미군은 이 최전선 벙커에서 한국군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지 않을까.

주한 미군은 한강 이남 재배치를 준비하면서 주력 부대인 제2보병사단의 여단을 3개에서 1개로 줄였다. 미국은 군사력을 여전히 냉전 지역으로 남아있는 한반도에서 다른 분쟁 지역으로 이동시켜 왔다. 105개나 됐던 캠프도 48개로 줄여 한때 경기도 북부를 촘촘히 덮었던 미군 부대는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있다.

26일 둘러본 경기도 파주시 캠프 하우즈나 캠프 개리 오웬, 캠프 에드워드 자리는 이제 공터가 됐다. 녹슬어가는 탱크도, 버려진 막사도 없었다. 미군을 상대하던 술집이나 부대 내 도로 위론 웃자란 잡초들만 무성했다.

미군이 주둔했다는 증거가 주변에 유일하게 남아 있는 곳은 경기도 일산 근처 캠프 하우즈 터다. 펜스로 둘러싸여 있는 부대 양 옆으론 버려진 술집과 클럽이 늘어 서 있다. 미군 부대 인근엔 기지촌이 있었고 한국·필리핀 출신 호스티스들, 차가운 맥주와 컨트리 음악, 그리고 ‘짧은 사랑’이 있었다. 그 허름한 술집들이 사라졌다고 통곡할 이들은 없겠지만 외국인인 나로선 생동감 넘쳤던 곳이 폐허로 변한 모습을 보고 있자니 슬픈 느낌이 일어난다.

26일 오후 동두천시 캠프 케이시 인근 양복점과 술집에서 만난 한국인 사장들은 침울한 표정이었다. 미군이 2년 뒤 떠날 텐데 별다른 계획을 세울 수도 없어 그냥 지켜보고 있을 뿐이라고 입을 모은다. 한편 반환된 미군 기지 공터들은 파주시청과 국방부 간 부지 비용을 둘러싼 이견에 갇혀 방치돼 있었다.

하지만 미군 철수는 합리적인 결정 같아 보인다. 한국은 반도 국가이며 미군은 상륙 작전의 달인이다. 한국은 산악지대가 많지만 미국은 또 공중전에 능하다. 북한군이 공격할 경우 미군으로서는 DMZ에서 싸우는 것은 좋은 반격 전략이 아니다. 하지만 이런 의문도 생긴다.

미군이 사라지고, 끔찍한 생각이지만 북한이 ‘제2의 6·25’를 일으킨다면 한국군은 DMZ를 지켜낼 수 있을까. 중국 만리장성에서부터 프랑스 마지노선까지, 역사엔 난공불락으로 여겨졌지만 기습 공격에 무너진 방어선이 많다. 하지만 한국군은 미군이 집결하는 동안 전선을 방어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군 장비는 뛰어나고 훈련도 잘돼 있다. 거의 모든 주한미군 장교들은 한국군을 “함께 싸운 군대 중 최고”라고 치켜세운다. 외교적 언사이긴 하겠지만 진심도 섞인 말일 터다.

영국인의 피로 젖은 임진강

JSA 내 미군 캠프 보니파스 기지를 알리는 팻말 앞의 앤드루 새먼 기자(위 사진). 부대 철수 뒤 공터처럼 된 경기도 파주의 옛 캠프 개리 오웬 자리(아래).

농부들은 안다. 피는 훌륭한 비료가 된다는 걸. 그리고 임진강 주변의 땅은 특히나 비옥하다. 이곳은 삼국시대서부터 공방이 펼쳐졌던 전략적 요충지다. 북한군과 중공군뿐 아니라 몽골·일본 등 한반도를 침략한 모든 외국 군대는 임진강을 건넜다.

그래서 지금도 온통 군 관련 시설이나 장비로 가득하다. 도로 옆 콘크리트 벙커 속엔 155㎜포가 DMZ 너머 북측을 향해 포신을 세우고 있다. 위장망 속에 숨은 다연장로켓도 그렇다. 다리처럼 보이는 도로의 콘크리트 차단물은 ‘적의 진격을’ 저지하기 위해 폭발장치가 달려 있다.

임진강 유역 적성 주변은 영국인들이 성지로 여기는 곳이기도 하다. 6·25에 참전한 영국군은 1951년 4월 22~25일 이곳에서 장렬하게 싸웠다. 당시 30만 병력을 투입하며 인해전술을 펼친 중공군에 임진강은 중요한 돌파 지점이었다. 부하들이 모두 전사했다는 소식을 듣고 야전 전화를 움켜쥔 채 눈물을 흘리는 대령, 수류탄이 떨어지자 배급통을 내던지며 방어했던 병사들….

당시 전투 장면을 보여주는 사진들은 처참하고도 감동적이다. 최후의 저항을 펼친 부대는 글로스터 대대였다. 기진맥진한 대대원들은 마지막 전투를 앞두고 주위를 둘러봤을 것이다. 전투에 참가한 이 대대의 병력은 총 4000명이었는데 이 가운데 1044명이 사망?실종됐다. 임진강 주변의 야트막한 산들은 1만2800㎞ 떨어진 그들의 고향 영국땅과 가슴 아플 정도로 닮았다. 글로스터 대대가 방어해낸 이 땅을 오늘날은 한국군이 철통같이 지키고 있다.

하지만 DMZ를 잊을 수 없게 만드는 핵심 요소는 풍경이다. 경기도 북부의 이 지역은 마음이 쓰릴 정도로 아름다우며 DMZ는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아 깨끗하다. 경기도 적성이나 강원도 철원 너머 고요한 계곡과 푸른 언덕을 바라보자면 누구든 목이 멜 것이다. 그러나 임진강에 가까운 파주군 적성면의 감악산을 오르는 등산객들은 6·25에서 희생된 장병들의 유령이 자신의 뒤를 따라온다는 것을 결코 눈치채지 못할 것이다. 비극과 아름다움이 공존하는 곳이 DMZ인 셈이다.

내가 아는 영국군 참전용사 두 명은 자신들이 죽으면 유해를 임진강에 뿌려달라고 했다. 전쟁은 인간이 만들어낸 최악의 비극이며 그 후유증과 기억은 지워지지 않는다. 그 기억은 한반도의 허리에 DMZ라는 이름으로 폭 4㎞의 상처를 남겼다. 하지만 가장 깊은 상처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 마음속 상처이기 때문이다.

진정한 DMZ는 판문점도 전방 초소도 아니다. 진정한 DMZ는 지도에 보이지 않는다. 극복할 수 없는 불신으로 인해 벌어졌고 여전히 끝낼 수도 없는 전쟁으로 인해 한국인의 마음에 남은 흉터가 바로 DMZ다.

앤드루 새먼

서울에 살며 워싱턴타임스 등에 기고하는 영국인 기자다. 6·25와 관련해 『마지막 한 발(To the Last Round)』과 『그을린 땅, 검은 눈(Scorched Earth, Black Snow)』을 썼다.

판문점·동두천·파주=앤드루 새먼, 정리=전수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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