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여야 막장 드라마, 이젠 신물이 난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0면

막장 드라마를 보기 위해 TV를 켤 필요가 없는 요즘이다. 검찰의 국가정보원 댓글 사건 수사 발표와 곧이은 국정원의 2007년 남북 정상회담 대화록 공개 이후 여의도에서 벌어지고 있는 비현실적일 정도로 극단적인 상황극 때문이다.

사실 민심은 중간 지점에 가깝다. 중앙일보가 그제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대화록 공개를 두고 “잘한 일”(42.6%)이란 견해와 “잘못한 일”(40.8%)이란 의견이 팽팽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당시 발언이 “부적절했다”(39.1%)고 느낀 이들이 “적절했다”(26.6%)고 본 사람들보다 많았지만 그렇다고 “노 전 대통령이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포기했다”고 판단하지도 않았다(24.6%). 오히려 “그렇게 단정하기 어렵다”는 목소리가 컸다(63.3%). 민심은 어느 일방의 손을 들어주지 않고 있다는 의미다.

 여의도는 그러나 짐짓 딴청이다. “내 말이 백 퍼센트 옳다”며 상대방을 향해 극언을 쏟아내고 있다. 막말도 이런 막말이 따로 없다. 새누리당은 노 전 대통령을 향해 “반역의 대통령”이라고 했다. 민주당을 두곤 “나라를 팔아먹을 사람들”이라고 했다. 민주당은 국정원 해체법을 발의했다. “박정희 시대의 중정(중앙정보부) 정치가 부활했다”고 성냈다. 황당한 해프닝도 수시로 있었다.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가 어제 오전 갑자기 기자회견을 하겠다고 자청했다. 의당 긴급하거나 중대한 발표가 있겠거니 여긴 이들은 결국엔 당황했다. 새누리당이 며칠째 되풀이하고 있는 “NLL 수호 의지를 담은 여야 공동선언을 하자”는 제안을 황 대표가 또 해서다. 대표실에선 그러나 되레 “우리가 언제 (알맹이 있는) 내용이 있다고 했느냐”고 했다고 한다. 어이없는 일이다.

 김무성 새누리당 의원이 26일 비공개 회의에서 “지난해 대선 때 그 대화록을 다 입수해서 읽어봤다”고 발언한 것으로 일부 언론에 보도된 이후 새누리당 내에서 벌어진 발설자 색출 소동도 한 편의 소극(笑劇)이었다. 발설자로 지목된 김재원 의원이 김 의원에게 ‘형님, 맹세코 저는 아닙니다’란 문자를 보내는가 하면, 본회의장에서 90도까지 허리를 굽혀 인사하는 모습까지 공개됐다. 조폭 영화에서나 등장할 만한 행태였다. 당내에선 구원(舊怨) 때문이라는 등의 권력 암투설까지 돈다니 한심하다.

 민주당 소속 국회 법사위원들이 권영세 주중 대사의 녹음파일을 공개한 이후 여야 간 벌이는 공방은 또 어떤가. 새누리당이 도청한 것이라고 주장하자 민주당이 “당시 동석했던 기자 한 명이 녹음한 파일을 제보한 것”이라고 했다. 새누리당은 곧 “ 월간지 기자가 휴대전화로 녹음한 걸 민주당이 절취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뻔한 사실을 두고 서로 삿대질하는 형국이다.

여야는 지난해부터 새 정치를 다짐하고 또 다짐했었다. 언제까지 막갈 건가. 민심을 등진 싸움은 결국 공멸로 향할 뿐이다. 여야 모두 이성을 되찾아야 한다. 막장 드라마, 이젠 신물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