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인간「닉슨」백악관 안주인의 회상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다음글은「닉슨」미국대통령부인「페트·닉슨」여사와 서독주간지「디·차이트」기자와의 회견기이다. 과거를 회상하는「퍼스트·레이디」의 말을 통해 인간「닉슨」의 일면을 엿볼수있다.
-「닉슨」씨를 처음 만난 계기는?
『동인극장의 무대위에서 처음 만났어요. 나는 그때「로스앤젤레스」부근의 작은 도시 「휘티어」에 교사로 부임했고「디크」(닉슨의 애칭)는 거기서 변호사를 하고있었어요.』 -두분이 연극 동호인이었나요?
『친구의 권유로 출연하게된거예요. 뒤에 안일이지만「디크」는「휘티어」에 새로 여교사가 부임해왔다는 소식을 듣고 그날밤 나를 선보러 왔대요. 그자리서 우리는 처음으로 소개되고, 「디크」도 역을 맡았어요. 그날밤 그는 내게 구혼을 했어요.난 처음 그가 정신나간 사람인가 했어요. 그러나 알고보니「디크」는 내 동료에게서 내게 관해 상세한이야기를 들었다지않아요.』
-그당시의 남편을 묘사한다면?
『음성이 독특하고 열정적인 남자라고할까. 월급50「달러」의 풋나기 변호사인데도 낙천적 활동적이고 명예욕이 강하고 인생은 장미빛이라는 생각을가진 사람이었어요.』
-「휘티어」에 오기 전에 부인은 월했나요?
『「네바다」주「엘리」서 출생했어요. 아버지는 공상적인「에이레」사람으로 금광을 찾아 서부로가다가「엘리」서 광부노릇을 했어요. 그러다가「로스앤젤레스」서 30킬로떨어진 「아데셔」로 가서 농장을 갖고 감자·도마도·고추·배추·땅콩등을 경작했어요. 전가족이 열심히 일했지요. 어머니는 독일인이었는데 내나이 12세때 암으로 세상떠났기때문에 내가 사실상 주부노릇을 했어요. 5년뒤아버지도…. 나는 독서·극장구경같은건 생각도 못하고 오로지 먹고사는 일만으로도 벅찼어요.
다행히「뉴요크」서 병원에 취직, 2년동안 저축을하여「캘리포니아」로 옮겨가 대학을 독학으로 다닐수 있었어요. 졸업후첫 취직이「휘티어」의 교사직인데 월급이 1백90「달러」였어요.』
-남편이 정치가가 되도록 격려했나요?
『아녜요. 나는 정치가의 아내가 될「타입」이 아니라고 생각했거든요.』
-정치가가 되는걸 막으려고 해봤어요?
『그러진 않았지만「디크」가 정치에서 손을 뗄까하고 망설일때는 나는 그의 은퇴를 종용했어요.』
-정치를 싫어합니까?『「디크」가 공공생활에 기여하는 것은 자랑스러워요. 그러나 즐거운 생활일순 없어요. 58년「베네수엘라」방문때 그곳 공항에 내려보니 반미「데모」대가 아우성을 치고있었읍니다.
그줌 한소녀는 나를향해 욕설을 퍼붓고 있지않겠어요. 나는 경호원들 틈을 헤치고 그 소녀의 손을 꽉잡고 몇초동안 그녀를 쳐다봤더니 소녀는 욕설을 멈추고 눈물을 흘리면서 돌아섰어요. 그러나 60년 대통령선거때는 정말 기진맥진했어요.
우리 두딸은 학교에서 몇몇 친구들로부터 매우 적대적인 조롱을 받았어요. 그때 12세였던「줄리」는 울면서 집으로 돌아올때가 많았어요.』
-정치가 부인의 역할은 무엇이라 생각합니까?
『역시 여자는 주부여야죠. 나도 선거운동때 서투른대로 몇마디 연설도해봤지만… 전화받는일이 나의 정치활동이랄까….』
-「닉슨」씨는 여가를 어떻게 보냅니까?
『텔리비젼에서 야구구경하는것 빼고는 역사책이나 전기물을 읽는거예요.』
-「닉슨」씨가 우울할 때는?
『집에선 그런일 없어요. 밖에서 일어난 언짢은 일을 집에서 이야기않는게 불문율입니다. 그래서「디크」가 집에 들어오면 온집안이 활기를띠고 개들도 신이나서 짖어댑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