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취재일기

미군 피의자 떠난 뒤 기소키로 한 한국 검찰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9면

최모란
사회부문 기자

지난해 7월 5일 오후 8시쯤 경기도 평택 미군기지(K-55) 주변 로데오거리. 주변을 순찰하던 미군 헌병대원 7명에 의해 악기상점을 운영하는 A씨(35)의 손목에 수갑이 채워졌다. 주차 차량을 빼달라는 미군의 요구를 거부한 게 그 빌미였다. 미군들은 항의하는 A씨의 동생 B씨(32)와 행인 C씨(52)에게도 수갑을 채우고 부대로 끌고 가려 했다. 행인들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이 “수갑을 풀어주라”고 요구했지만 이들은 묵살했다.

 지난해 전국을 들끓게 한 ‘평택 민간인 수갑사건’의 발단이다. 당시 주한미군 사령관은 사건 발생 사흘 만에 헌병들의 행위가 부적절했음을 인정하고 사과 성명을 냈다. 한 달 뒤 경찰은 헌병 7명에게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불법체포) 혐의를 적용,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하지만 그걸로 끝이었다. 검찰이 “명확한 사실관계 규명”을 이유로 ‘장기 수사 체제’에 돌입한 것이다. 사건을 송치받은 검찰이 결론을 내리기까지는 11개월 가까운 시간이 걸렸다. 검찰은 미군 헌병 7명을 공동체포 혐의로 기소하기로 방침을 정하고 미군에게 통보했다고 21일 밝혔다. 경찰 단계에서와 같은 결과다. 검찰은 “그동안 현장검증 2회, CCTV 검증 2회 등 18회에 걸친 조사 결과 미군 헌병이 아무런 권한 없이 민간인을 체포한 것으로 판단했다”고 밝혔다.

 문제는 기소할 대상자가 한국에 없다는 것이다. 수사 대상자인 미군 헌병 7명이 복무 기간이 끝났다거나 다른 부대로 전출 갔다는 등의 이유로 지난 3월 이전에 모두 미국으로 출국한 상태다. 지금 기소를 해봤자 당사자들이 제 발로 한국에 들어와 재판을 받을 가능성은 전무에 가깝다. 아니니 다를까, 미군은 검찰의 기소방침이 알려지자 “공무 중에 발생한 사건에 대해서는 한국 측에 재판 관할권이 없다”는 입장을 내놨다. 결국 당사자들에 대한 처벌은 온데간데없이 이 사건은 한국 정부와 미군 당국 간의 서류상 공방전을 몇 차례 거듭하다 흐지부지될 가능성이 농후해진 것이다.

재판조차 열리지 않을 것이 뻔한 기소를 검찰이 하게 된 셈이니 ‘늑장 수사’ ‘봐주기 수사’라는 비난을 피하기 어렵다. 박경춘 수원지검 평택지청장은 “국가 간의 문제인 만큼 수사 내용을 면밀히 검토하느라 늦어졌다”고 밝혔다. 하지만 신중함만 중시한 나머지 적절한 처벌의 기회를 놓쳐 버렸다면 무슨 의미가 있는지 되묻고 싶다. ‘엄정하게’ 미군 범죄를 기소하겠다는 검찰의 입장 발표에도 뒷맛이 씁쓸한 이유다.

최모란 사회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