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그린 캠퍼스' MOU 행사 … 총장 참석 요구에 대학들 속앓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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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25일 예정된 서울시와 대학 간 그린캠퍼스 공동 추진 양해각서(MOU) 교환식에 총장이 참석할 수 있느냐.”

 최근 서울시는 시내 대학 33곳에 이런 연락을 보냈다. 서울시는 박원순 시장의 공약인 ‘원전 하나 줄이기’ 실현을 위해 대학을 주요 파트너로 꼽았다. 이유는 대학과 대학병원의 에너지 및 전력 소비량이 압도적으로 많기 때문이다. 서울시에 따르면 시내 에너지 다소비 건물 중 병원(대학병원 포함)과 대학은 전년 대비 8.5%, 8.3%씩 증가해 총에너지 소비량 순위에서 각각 1, 2위를 차지했다. 전력 소비량 역시 호텔과 대기업은 각 1.1%, 0.7%씩 감소한 반면 대학과 병원은 1%, 4.9%씩 늘면서 총전력소비량 1, 2위를 다퉜다.

 서울시는 42개 대학과 토론회 및 실무진·기획처장 협의를 거친 결과 33개 대학이 참여의사를 밝혔다. 25일 서울 광화문 프레스센터에선 서울그린캠퍼스협의회 창립총회가 열린다. 오후에는 MOU 체결 및 기념 심포지엄이 예정돼 있다. ‘그린캠퍼스와 대학의 역할’이라는 주제로 서울대·연세대·고려대 교수들의 발표도 진행된다.

 대학들은 서울시의 기본 취지에는 동감하면서도 총장 참석 요청에 적잖이 당혹하는 모습이다. A사립대 본부 관계자는 “총장의 주요 일정은 연간 단위로 이미 꽉 짜여 있다”며 “총장의 참석 여부를 회신해 달라고 하는데 못 간다고 하면 서울시 정책에 비협조적인 모습으로 비칠 우려가 있어 걱정”이라고 말했다. 실제 25일 행사엔 회장교로 선출된 성균관대 김준영 총장 외에는 부총장·대외협력처장·관리정보처장 등 대리인이 참석할 예정인 것으로 전해졌다.

 그린캠퍼스 MOU에는 “2017년까지 에너지 소비량을 10%(2012년 대비, 건물 면적당) 줄이는 데 적극 노력한다”는 선언적 내용 외에 구체적인 내용은 없는 상황이다. 공동 실천선언문은 ▶온실가스 감축 실천계획을 세우고 단계적 시행 ▶그린캠퍼스 실천기구 설치 및 운영 ▶에너지 절감 실천 우선적 시행 등의 내용이 담겼다.

시는 건물에너지효율화사업(BRP)의 일환으로 대학에 전체 사업비의 80% 이내로 최대 20억원까지 지원할 계획이다. 융자 이율도 연 2.5%에서 2%로 낮춰 주기로 했다. BRP는 건물 조명을 고효율 LED 등으로 교체하는 등 에너지 이용 효율을 높이는 사업이다.

 대학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MOU를 체결하면 거기에 따른 책임과 의무가 생길 것”이라는 걱정 섞인 얘기도 나온다. 그럼에도 대학들이 이번 행사를 무시할 수 없는 이유가 있다. 서울시 도시계획위원회가 대학 내 건물 신축·증축에 대한 인허가권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B사립대 홍보 담당자는 “연중 내내 기숙사·강의실 등 신축·확장공사가 이뤄지는 대학 입장에선 도시위에서 통과되지 않으면 곤란할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서울시 관계자는 “미국 등 선진국에서도 대학들이 모여 그린캠퍼스 협의회를 시행하고 있다”며 “경기도·부산·충북 등에서도 협의회가 구성된 만큼 서울시도 앞장서겠다는 취지일 뿐 강제력은 없었다”고 설명했다.

민경원·이승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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