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춘중앙문예 선후감|시·시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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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시>
마지막까지 남은 10여편의 작품들의 평균 수준은 확실히 작년보다 높았으나 그것들 가운데서 특출한 작품은 없었다는 것이 심사위원 일동의 느낌이다.
그 10여편 가운데서 약 반수 이상이 합평회에서 제외되었다. 그리하여 최후까지 겨루게 된 작품은 석지현의「점화」, 이정우의 「설정제호·Ⅱ」, 임상하의「가을 실내악」, 장동일의「겨울비행장」, 이덕자의「조부송」등이다.「조부송」의 재치는 높이 살 수 있었으나 재치가 승한 나머지「트리비얼리즘」(초말취미)에 흐른 것이 흠이었다.「겨울비행장」은 전개가 미끄럽고 제재도 신선했지만 공소한 느낌을 면할 수 없었다.「가을실내악」은 날카롭고 치밀한 세부를 보였으나 그 자체가 하나의 시적 유행이 된 지금 새로운 것이 될 수 없다는 견해가 있었다.
그리하여 심사위원들 사이의 꽤 뜨거운 논의의 대상이 된 것이「점화」와「설정제호·Ⅱ」의 2편이다. 구성이나 언어의 시적 처리에 있어서는 후자가 더욱 깜찍하였음은 인정되었지만 그 제목이나 끝 행의 「아홉개」라는 수사가 엿보인 치기와 어떤 특정시인의 영향을 너무 짙게 보인 점과, 그리고 당선작으로서의 무게의 부족으로 결국 애석하게 탈락되고 말았다.
그리하여 자칫하면「무난」하고 평범하다고 밖에 보이지 않을 석지현의「점화」가 당선작으로 뽑혔다.
「설정제호·Ⅱ」」에 비해 「아마추어」기미는 더했지만 그러나 이 작품이 보인 시적 역량은「설정제호·Ⅱ」」의 그것을 능가하는 것으로 생각되었다. 거기에는 만만치 않은 관조와 사유와 신구의 조화가 있었고 오히려 평범할지라도 작자자신의 음성이 낭랑하게 울리고있었다. 이러한 점에서 설사 미숙한 데가 완전히 가시진 않았다 하더라도 그 신인으로서의 주체성이 심사위원들의 마음을 끌었던 것이다.

<시조>
응모한 시작품들과는 달리 마지막까지 남은 시조작품들 가운데서는 이시영의「수」가 단연 출중하였다.
그밖의 작품들 가운데서는 이희자의「산맥」, 김혁의「영농일지초」, 그리고 이정강의「순간」등이 좋은 역량을 보이면서 마지막까지 심사의「테이블」위에 남았던 것들이다.
그러나 당선작「수」는 우리의 전통예술의 형식에 담은 그 발랄한 시재와 전통적이면서도 현대적인 의식 내지 감수성으로 심사위원들의 상탄을 자아내기에 족하였다.
짜개진 석류 빛을/바늘귀에 꿰어 달아/손톱 밑은 갖 죄를/색색이 실로 풀면/이승의/못 다한 한이/학이 되어 앉았네
이「수」연작의 첫 부분이 보이는 전통과 현대와의 정묘한 결합 앞에 심사위원들은 잠시 감흥을 억누르지 못하였다. 그러나 끝 부분의 나 또한/수실로 뜨여/참회하는 옥토끼라 이 끝 행의「이미지」는 아까운 탈선이었다고 모두 애석해했다.

<서정주 박남수 김종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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