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전적 월드컵 애국주의 뒷맛 씁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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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지 나만 느끼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 이순간에도 갈등이 끊이지 않는 세계를 생각한다면 누구라도 월드컵에 나타나는 민족주의에 대해 조금은 거북한 느낌을 받지 않을까?

이탈리아는 파울과 같이 정당해 보이는 방법으로 이탈리아팀을 조기에 축출하려는 국제적인 음모가 꾸며지고 있었다고 주장한다. 이탈리아 클럽 페루자의 구단주는 골든골을 터트린 한국의 안정환을 방출할 것이라고 공표했다. 이유는 그가 직접 밝힌 바처럼 "안정환이 이탈리아 축구를 망쳤다"는 것이다.

한국인들은 부끄럼 없이 8강에 오른 그들의 성취와 16강전에서 터키에 패배한 공동 개최국 일본의 실패를 보도하는 미디어를 흐뭇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경기 결과가 나온 뒤 코리아 해럴드紙의 2면을 장식한 머릿기사는 "한국은 역사를 만들고 일본은 역사로 남았다"였다. "바다를 넘어선 협력"이라는 공치사가 월드컵 공동 개최보다 우선시되었다.

잉글랜드 역시 애국적 선동에 한 몫을 톡톡히 해냈다. 공정하게 말해서 만일 아르헨티나가 경기를 이겼더라면 승리 후 영국 언론에서 보도된 "우리가 아르헨티나를 완전히 깨부쉈다"와 같은 보도는 역으로 거친 감정을 담은 남 아메리카의 스페인어로 보도 됐을 것이다.

멕시코도 미국과 경기 이상의 과열된 충돌을 경험했다. 언론의 다양한 분석과 또 멕시코 팬들에게서도 분명 제기됐을 미국전 패배에 대한 조심스러운 언급은 멕시코인들에게 참기 힘든 일이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 패배는 멕시코인들과 축구를 홀대하는 미국에게 당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나의 의견이 아니라 멕시코인들의 생각을 그대로 옮긴 것이다.

앞서 언급한 것들은 단지 일부의 예에 불과하다. 만약 내가 독일어, 터키어, 폴란드어, 그리고 이번 경기에서 들을 수 있었던 수 많은 다른 언어들을 이해할 수 있었다면 입안을 떨떠름하게 만드는 광신적 애국주의의 예를 찾기 위해 그렇게 이것저것 살피지 않았어도 됐을 것이다.

나는 우리 모두가 갈등 없이 잘 지낼 수 있다고 생각할 만큼 순진하지는 않다. 현재로서는 이는 어려운 이상일 뿐이다. 그러나 모두가 말하고 행동했듯이 월드컵은 또 다른 정치적 충돌을 만들 기회가 아니라 축구 축제로 예비된 것이다.

예의바른 승자와 세련된 패자가 나온다면 어떨까?

Terry Baddoo (CNNSI) / 박치현 (JOI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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