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쓰레기밭서 일군 15만 그루, 대통령도 격찬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6면

전국 최초로 쓰레기매립장에 세워진 대구수목원. 매립장 위에 7~8m 두께로 흙을 덮은 뒤 나무와 꽃을 심었다. 지난 8일 대구수목원을 찾은 시민들이 산책하고 있다. [프리랜서 공정식]

싱그러운 나뭇잎 사이로 봄꽃들이 마지막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야생화원에는 벌개미취·붓꽃·클로버·민들레 등이 지천이다. 박 터널에는 조롱박·호박·여주 넝쿨이 한창 뻗어가고 있다. 옆에 있던 꿩이 인기척에 놀라 푸드덕 날아간다.

 11일 오후 5시 대구시 달서구 대곡동 대구수목원 모습이다. 비가 내린 탓에 24만7000㎡의 광활한 수목원에는 적막감이 흘렀다. 이곳은 어린이집·유치원 원아들에겐 소풍과 현장학습 장소로, 인근 주민에겐 산책 공간으로 사랑받고 있다. 지난해 170만 명이 찾았을 정도다.

 대구수목원이 요즘 또 다른 이유로 주목받고 있다. 지난 5일 박근혜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제18회 환경의 날 기념식이 열리면서다. 기념식이 지방에서 개최된 것은 2011년 계룡산국립공원에 이어 두 번째다. 이곳은 쓰레기매립장 위에 만든 수목원 1호다. 1998년 착공돼 2002년 5월 문을 열었다. 수목원 자리는 86년부터 90년 초까지 쓰레기매립장으로 사용됐다. 지하에는 16m 높이로 쓰레기가 쌓여 있다. 시는 매립장 폐쇄 후 활용 방안을 고민하다 수목원을 만들기로 했다. 쓰레기 더미 위에 7~8m 높이로 흙을 덮고 나무와 꽃을 심은 것이다. 흙은 인근 지하철 공사장 등에서 마련했다. 기념식 장소는 공모를 통해 선정됐다. 전국 8개 광역 지자체가 신청했고 마지막에 순천 정원박람회장과 대구수목원이 경합했다. 결국 생태계 복원 측면에서 높은 점수를 얻은 대구수목원이 낙점됐다. 박 대통령은 치사에서 “20년 전 이곳은 방치된 쓰레기매립장이었지만 생명의 숲으로 바뀌었다. 이 수목원이야말로 상전벽해란 말이 맞는 곳 아닌가 한다”고 치켜세웠다. 김부섭 대구시 환경녹지국장은 “시민이 자부심을 가질 만한 대구의 보배”라고 강조했다.

 해외에서도 관심이 높다. 중국·베트남과 남미 도미니카공화국 등의 정부·지자체 관계자가 수목원을 벤치마킹했다. 도미니카공화국의 관리는 “우리도 쓰레기매립장에 위에 수목원을 만들려고 한다”며 “대구수목원 공무원을 초청할 테니 도와 달라”고 요청했다.

 수목원은 공원 역할도 하지만 기능면에선 차이가 있다. 수목원은 식물자원의 체계적 수집·관리와 전시가, 공원은 도시지역의 자연 경관 보호와 시민의 휴식공간 제공이 목적이다. 수목원의 중요한 업무는 식물의 수집·보전·증식 관련 교육이다. 파종온실과 양묘장이 있는 이유다. 공원과 달리 울타리가 있고 개방 시간도 제한된다. 수목원 관리사무소 뒤 4개의 파종온실에는 싹을 틔워 기른 높이 10㎝가량의 소나무와 삼지구엽초·꿀풀 등이 자라고 있었다. 중구 동산동 청라언덕에 심어진 대구 최초의 사과나무 3세 목(木)도 이곳에서 기른 것이다.

 수목원에는 활엽수·침엽수 등 나무 15만 그루를 포함해 약초·야생초·선인장 등 모두 1800종 45만 본이 있다. 갖가지 식물이 있다 보니 사진 촬영 장소로도 각광받고 있다. 봄철에는 꽃을, 가을에는 열매를 찾아 날아오는 새를 찍으려는 아마추어 사진가의 발길이 이어진다. 사진 애호가인 박용성 전 대한체육회 회장이 10여 차례 찾기도 했다. 김희천 수목원관리사무소장은 “고사리·고비 등을 볼 수 있는 양치식물원과 한국 정원도 만들 계획”이라고 밝혔다.

홍권삼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