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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야, 한·일 지성의 만화경 우리 손으로 펼쳐보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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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동갑내기 친구 노마 히데키(왼쪽)와 이상남은 올해 예순 살이 됐지만 사진 촬영 내내 장난꾸러기들처럼 유쾌하게 놀고 떠들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사람 사이의 인연은 알 수 없다. 노마 히데키(60·일본 국제교양대 객원교수)가 1978년 일본 도쿄 센추럴 뮤지엄에 걸린 이상남(60)씨의 작품 앞에 섰을 때 그림이 가슴에 딱 꽂혔고, 노마는 이씨에게 한글로 편지를 썼다. 35년 전 벼락같이 시작된 이들 우정은 국경을 뛰어넘은 한 권의 책으로 탄생한다. 일본 쿠온 출판사(대표 김승복)가 오는 8월 펴낼 『한국의 ‘지(知)’를 읽다』는 친구의 나라와 언어를 사랑하게 된 일본인 학자가 서로의 앎을 바탕으로 펼쳐내려는 두 나라의 삶이다.

 이상남(이하 이)=우리가 처음 만난 게 25살 때, 너도 미술가였지. 겁도 없이 ‘7인의 작가, 한국과 일본’전을 기획해 서울 한국화랑과 도쿄 마키화랑을 오가며 엄혹했던 1970년대 후반을 그림으로 후려쳤어.

 노마 히데키(이하 노마)=그 동안 자주 만나지는 못했지만 서로 뭘 하는지는 아니까 재회의 기쁨이 더 커. 『한국의 지를 읽다』의 디자인을 하다가 우연히 너의 작품 특집이 실린 잡지를 발견해 표지를 삼는 식이지.

 이=‘한국의 지’란 주제로 매일 만나 일 꾸미는 게 어찌나 신나던지 열정적으로 빠져버렸어. 내가 아는 문화인들을 총 동원했지.

 노마=한국의 지적 세계를 서구에선 너무 몰라. 한국 대중문화의 껍데기만 소비하고 있어서 안타까워. 그걸 깨고 싶은 거야.

 이=한국의 지를 어떤 책을 읽으며 알게 됐는지 털어놓는 사람들 선택이 흥미로워.

 노마=사상가 가라타니 고진이 이어령의 『축소지향의 일본인』, 양심적 석학인 와다 하루키가 이영희의 『분단민족의 고뇌』, 러시아 문학자 가메야마 이쿠오가 한강의 『채식주의자』, 소설가 호시노 도모유키가 황석영의 『오래된 정원』을 골랐어.

 이=한국 쪽에선 건축가 승효상이 이문구의 『관촌수필』, 문학평론가 김병익이 박경리 대하소설 『토지』, 영화감독 이명세가 최인호의 『가족』, 소설가 김연수가 『이상(李箱) 전집』을 꼽았지.

 노마=500쪽에 달하는 이 작업은 아마 사상 처음으로 한·일 지식인 120명이 함께 하는 프로젝트일꺼야. 불편한 정치적 현실을 뛰어넘고 싶은 많은 이들이 동감하리라 믿어.

 이=넌 미술을 할 때도 진지하고 집요했지. 도쿄 집에 가보면 사방천지가 책이라 지진 났을 때 위험할 정도잖아, 깔릴까봐. 아직도 동화 속에 살고 있는 듯 꿈을 일구어가는 그 지적 여정에 벗으로 함께 할 수 있어 기뻐.

글=정재숙 문화전문기자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노마 히데키(野間秀樹)=1953년 도쿄 생. 미술가로 활동하다 한국어 공부. 2010년 쓴 『한글의 탄생-‘문자’라는 기적』으로 2012년 주시경 학술상 수상.

◆이상남=1953년 서울 생. 홍익대 서양화과 졸업 뒤 81년 뉴욕에 정착, 철학을 품은 작품세계로 국제 화단의 평가받아. 지난 5월 도쿄 주일 한국대사관에 대형 벽화 설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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