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부 의욕 꺾는 법 빨리 고쳐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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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12일 국회에선 원혜영 민주당 의원의 주선으로 ‘기부 현실’을 폭로하는 합동기자회견이 열렸다. 배양숙 삼성생명 FC(재무상담사) 명예상무, ‘함께걷는아이들’의 유원선 사무국장 등이 나서 기부금에 ‘세금 폭탄’을 매기는 조세특례제한법(조특법)을 개정해 달라고 호소했다. 배씨는 회견에서 “CEO(최고경영자)의 재무상담을 해 드리고 수수료를 받는 사람”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뒤 “1년 동안 버는 돈의 30%는 기부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지난해엔 아름다운재단을 통해 전국에 있는 ‘그룹홈’에 기부를 해왔다고 한다. 그룹홈은 독지가나 민간·종교 단체 등이 나서서 5∼10명의 청소년을 모아 일반 가정처럼 함께 지내는 곳을 말한다. 아름다운재단 전현경 실장은 “그룹홈은 잘 알려져 있진 않지만 가출·탈북 청소년, 성폭력 피해 청소년들을 돌보는 곳”이라고 말했다.

 배씨는 지난해 그룹홈에 1억원 상당의 샴푸·세면도구 4000세트를 보냈다고 한다. 배씨는 “그룹홈에는 강제로 성에 노출된 청소년들도 있다”며 “이들이 트라우마 때문에 한 시간씩 씻는다는 얘기를 듣고 나도 부모로서 마음이 너무 아파 샴푸·비누를 보낸 것”이라고 설명했다. 배씨는 “그룹홈에 제대로 지원이 가지 않으면 청소년들이 회복 불능의 상황에 처하는 경우가 있다”며 “그럼에도 그룹홈에는 거의 손길이 닿지 않고 있고, 살펴보면 이런 사각지대가 사회 곳곳에 의외로 많다”고 지적했다. 그런 배씨의 기부 의지에 찬물을 끼얹은 게 개정된 조특법이다. 배씨는 “법률이 바뀌어 2억원을 기부하면 40%에 가까운 8000만원을 세금으로 내야 한다”며 “기부를 하고 싶은 나도 해야 할지 말지 고민스럽다”고 토로했다.

 빈곤층 청소년 300여 명에게 무상 음악교육을 제공해온 유 국장은 “소외된 아이들이 악기를 접하고 무대에 올라 연주회를 열 수 있었던 것은 고액 기부자들이 있었기 때문”이라며 “하지만 매년 수억원을 기부했던 기부자들도 세법이 개정된 올해는 기부를 유보하고 있다”고 전했다.

 원 의원은 “기부 문화의 싹이 잘못된 법으로 억눌려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채병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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