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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퍼스 앱 국내 첫선 … 직원 30명 거느린 27세 CEO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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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6호 11면

올해 27세인 박수왕 대표는 일 때문에 아직 대학생(성균관대 4학년 휴학) 신분이다. 대학을 졸업한 후에는 경영을 더 공부하고 싶다고 했다. 최정동 기자

2008년 1월 중순 어느 날 휴가를 나온 공군 병장 박수왕은 친구들과 함께 새벽 5시에 서울 강남에 있는 GE코리아를 찾아갔다. 당시 GE코리아를 이끌던 이채욱(현 CJ대한통운 부회장) 사장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이 사장이 평소 오전 5시30분쯤 출근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이전 휴가 때도 아침 일찍부터 기다렸으나 경비원의 제지로 실패한 뒤였다. 이 사장이 차에서 내리자 그는 친구들이 경비원을 제지하는 틈을 타 이 사장에게 다가갔다. 고개 숙여 인사하고 신분을 밝힌 후 그는 이 사장에게 “군대 시절 이야기를 해 달라. 꼭 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잠시 놀란 이 사장은 박 병장의 설명을 듣고는 흔쾌히 승낙했다. 당시 박 병장은 친구와 함께 입대를 앞둔 이를 위한 군 생활 지침서를 준비 중이었다. 군복무 중 사법시험에 합격한 사병, 군대 월급으로 복학 등록금을 마련한 병사 이야기 등을 모았다.

파워 차세대 <30> 대학생 전문기업 ‘소셜네트워크’ 박수왕 대표

박 병장 자신은 군복무 중 경영컨설턴트, 유통관리사를 비롯해 5개의 자격증을 땄다. 책을 내려고 20곳 넘는 출판사를 찾아갔으나 번번이 퇴짜를 맞았다. 그러던 중 다산북스에서 ‘이채욱 사장 같은 유명 인사 5~6명의 군 생활 이야기를 담을 수 있으면 책을 내주겠다’고 제안했다. 그는 ‘일단 부딪쳐 보자’는 마음으로 이채욱 사장을 찾아갔고, 군생활 이야기를 들었을 뿐만 아니라 윤홍근 BBQ 회장을 비롯한 저명 인사도 소개받았다. 그렇게 해서 나온 책이 군 생활 인터뷰 모음집 『나는 세상의 모든 것을 군대에서 배웠다- 군대 2년을 알차게 보낸 사람들의 비밀』이다.

대학생 간식 나눠주기 행사에 참여한 배우 주원, 가수 유이, 김준영 성대 총장 (왼쪽부터).

05학번 … 사업하느라 바빠 계속 휴학
공군 병장 박수왕(27)은 지금 ㈜소셜네트워크 대표다. 대학생을 위한 애플리케이션 원 캠퍼스(One Campus)를 통해 학교 관련 정보를 실시간으로 제공한다. 대학생용 잡지 ‘캠퍼스 텐(CAMPUS 10)’도 내고 있다. 서울 시내 클럽을 빌려 정기적으로 대학생을 위한 파티를 열며 시험기간 중엔 주요 대학을 찾아가 간식을 제공하는 ‘캠퍼스 어택(campus attack)’이란 행사도 한다.

‘원 캠퍼스’는 전국 200여 개 대학교 주변의 상점, 도서관 잔여 좌석, 수강 시간표 등을 실시간으로 제공한다. 누적 다운로드 횟수는 90만 수준으로 대학생 관련 앱의 선두주자로 꼽힌다. 캠퍼스 텐은 패션·취업·창업 등 대학생의 관심사를 다룬다. 오프라인 종이 잡지에 그치지 않는다. 스마트폰에서 츄파(CHUPAR)라는 앱을 내려받은 후 잡지를 인식시키면 휴대전화 화면에 관련 정보가 뜨는 ‘증강현실’이란 첨단 기술을 적용했다.

지난달 말 찾은 서울 강남구 신사동 소셜네트워크 사무실에는 ‘act small, think big(행동은 작게, 생각은 크게)’ ‘innovation(혁신)’ 같은 글들이 곳곳에 붙어 있었다. 당시 박 대표는 해외출장에서 돌아온 직후였다. 지금의 사업 모델을 해외로 가져나가기 위해 홍콩 지사 설립을 검토 중이라고 했다. ‘대학생 전문기업’을 이끄는 박 대표 자신은 아직 대학생이다. 성균관대 경제학과 4학년 휴학 중이다. 2005년 입학했으나 일 때문에 아직 졸업을 못했다.

그는 자신을 “학생 시절 말썽꾸러기였다”고 말하지만 중·고등학교 시절 반장·회장을 여러 번 했다. 서울고 학생회장 시절에는 전국 고교 학생회장 모임인 ‘대한민국 고등학교 총학생회’ 회장을 했다. 2004년 교육인적자원부 장관상을 받았다. 그는 청년 창업가로, 군 생활지침서의 저자로 강연도 한다. 지난해 열린 ‘제1회 정주영 창업 경진대회’에서는 연사로 대학생에게 창업에 관한 조언도 했다.

박 대표는 직장생활을 한 적이 없다. 처음부터 자기 사업을 했다.

그는 2010년 7월 소셜네트워크를 세웠다. 자본금은 『나는 세상의 모든 것을 군대에서 배웠다』의 인세로 마련했다. 이 책은 진중문고로 선정되면서 국방부에서 대량 구입했고 서점에서도 꽤 관심을 모았다. 초기 자본금은 5000만원이었으나 대학생을 겨냥한 사업의 독특함을 인정받아 외부 투자를 받으면서 자본금이 10억5000만원으로 늘어났다. 매출과 직원도 빠르게 늘었다. 병역특례 기업으로도 지정됐다. 30여 명 직원 가운데 13명이 연구개발 인력이다.

중2 때 운동화 떼다 인터넷으로 팔아
박 대표의 사업적 경력은 꽤 오래됐다. 첫 장사 경험은 중학교 2학년 때였다. 친구와 함께 동대문시장에 가서 운동화를 도매로 떼다가 인터넷을 통해 팔았다. “오토바이를 사고 싶었는데 부모님이 사주시지 않았어요. 그래서 직접 돈을 벌어보자고 마음먹었죠. 결국 오토바이를 사지는 못했지만 돈은 좀 벌었어요.”

학원에 김치를 공급하는 일도 했다. 고등학교 3학년 말~대학교 1학년 때다. 그는 2004년 7월 수시로 대학 입학이 결정되고 여유 있는 시간을 보내던 중 알고 지내던 학원의 원장을 만났다. 원장은 ‘김치 공급에 문제가 많아 고민’이라고 했다. 값싸고 품질 좋은 김치를 공급받고 싶은데 잘 안 된다는 것이다.

그는 ‘그게 뭐 그리 어려울까’ 싶어 국내 유명 김치제조업체에 e메일을 보내 알아봤다. 당시 학원이 공급받던 가격의 절반 수준에 좋은 김치를 받을 수 있었다. 중2 때 신발을 함께 팔았던 친구와 ‘우리가 해보자’며 김치 공급 사업을 했다. 기존 업체의 견제가 있긴 했지만 나름 잘됐다. 그러나 학원에 공급하던 김치에서 이물질이 발견돼 손해배상 소송을 당했다. 5000만원을 물어줘야 했다. 박 대표와 친구의 부모님이 각각 2500만원씩 부담했다. “김치에 이물질이 들어간 걸 몰랐으니 제 잘못이죠. 근데 억울하고 이해가 안 되는 구석이 지금도 있어요. 왜 이물질이 들어갔는지 아직도 잘 모르겠습니다.” 사업의 쓴맛을 일찌감치 경험한 셈이다.

그는 부모님에게 진 빚을 갚기 위해 강남의 대형 공원에서 형광봉을 비롯해 공연용품을 파는 일을 했다. 역시 대학 1학년 때였다. 인기 가수 콘서트, 운동 경기가 있는 날에 공원 광장에서 형광봉을 팔았다. 장사는 잘됐다. 하지만 그렇게 파는 건 불법이었다. 판매권이 있어야 하는 사업이었다. 판매를 중단하라는 압력이 들어왔다. 그는 사업권을 가진 공연장 관리소를 찾아갔다. 기존 업체보다 유리한 조건을 제시하며 판매권을 따냈다. 돈을 제법 벌어 부모님께 진 빚을 갚았다. 하지만 기존 판매업자의 견제가 너무 심했다고 했다. “신변 위협을 느끼는 수준이었죠. 그거 하자고 가족까지 위험하게 할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렇게 두 번째 사업을 접고 군대에 갔다. 부모님과 형의 권유를 따랐다.

자신의 의지와 달리 들어간 군대였기에 한동안 불만이었지만 어느 날 문득 불평만 하며 시간을 보낼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격증을 따고 책 쓰기를 준비했다. “사업에 관심이 있었지만 군대에서 할 수는 없잖아요. 군복무를 하면서 뭔가 더 생산적인 일을 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책 쓰기를 생각한 것이고요. 항상 긍정적으로 살려고 해요. 내게 불리한 것이라도 긍정적인 인연으로 만들려고요.”
 
아버지 “구멍가게라도 네 사업을 해라”
그가 어려서부터 장사에 눈을 뜨고 20세에 겁 없이 사업에 나설 수 있던 배경엔 아버지의 영향이 컸다. 아버지는 박 대표가 하는 일을 밀어줬다. 사업을 하는 걸 두려워하지 않는 DNA는 집안의 내력이었다. 할아버지는 25세에 농기구 판매점을 차렸고, 아버지도 26세에 철물점을 창업했다. 지금은 전북 군산에서 꽤 규모 있는 회사를 운영한다.

어린 시절 아버지는 음식점에 가면 그에게 손님이 원하는 게 뭔지, 주인은 어떻게 하고 있는지 한번 살펴보라고 말하기도 했다. 일찌감치 사업 교육을 받은 셈이다. “아버지는 구멍가게를 해도 네 사업을 하라고 늘 말씀하셨죠.” 공원 앞에서 형광봉을 팔고, 이채욱 회장을 무작정 찾아가고, 20곳 넘는 출판사의 문을 두드리는 무모하다 싶은 정도의 도전정신은 그렇게 형성된 것 같다고 했다. “어려워 보이는 것도 일단 부딪쳐 보면 달라요. 그렇게 해보면 해결책이 보여요. 지금까지 그렇게 해왔고요.”

책 인세를 바탕으로 2010년 새로운 사업을 구상할 때 그는 ‘내가 잘 알고 할 수 있는 것’ ‘다른 사람이 하지 않는 것’ ‘대기업과 경쟁하지 않는 것’을 고민했다.

예전에 해본 김치 공급, 공연용품 판매는 성장 가능성이나 새로운 사업 모델로 발전시키기에는 한계가 있었고 현실의 벽도 만만치 않았다. 직접 콘텐트를 생산하고 향후 발전 가능성이 높은 분야를 고민했다. 그러다 미국 명문대에서 파티를 통해 네트워크를 형성한다는 걸 알게 됐다. 우리나라에서도 해볼 만하다고 생각했다. 도서관 자리 정보도 실시간으로 제공하면 유용할 것 같았다. 이런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소셜네트워크를 세웠다. 페이스북을 비롯한 소셜네트워크서비스가 한창 달아오를 때였다. 회사 이름을 소셜네트워크로 했다. 사업을 하며 가장 중시하는 게 뭐냐는 물음에 그는 지체 없이 “사람”이라며 “사업이란 게 사람들과 일하고 사람을 위해 일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 번 인연을 맺은 사람들과는 지속적으로 관계를 유지하려고 힘을 쓴다고 했다.

이채욱 CJ대한통운 부회장은 “박 대표는 일에 대해 열정적이고 새롭게 뭔가 기획하고 추진하는 능력이 뛰어나다”며“도전정신도 강하다”고 말했다.

박 대표는 소셜네트워크를 대학생들의 대표 미디어 채널이자 플랫폼으로 키워나가고 싶다고 했다. “대학생의 의식주를 모두 다뤄보고 싶어요. 의(衣)는 캠퍼스 텐에서 패션을 다루고, 식(食)으로 간식 공급 행사를 하고 있는데 학생들의 큰 고민인 주(住)를 어떻게 다룰지 고민 중”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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