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축구팀 고개를 들어라, 두 경기 남았잖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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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2014년 브라질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레바논과의 원정 6차전에서 졸전 끝에 비긴 축구대표팀의 최강희 감독(가운데)이 6일 파주 NFC에서 회복훈련 전 선수들에게 지시사항을 전달하고 있다. 최 감독은 웃으려 노력했지만 선수단 공기는 무거웠다. [파주=김진경 기자]

패한 다음 날 훈련에는 철칙이 있다. 절대로 무거워서는 안 된다. 마음속에는 독을 품되 겉으로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도리어 평소보다 더 밝고 명랑해야 한다. 그래서 선수들은 숫자 등 구령을 붙일 때도 목소리에 더 힘을 준다.

 6일 축구대표팀은 파주 트레이닝센터(NFC)에서 회복 훈련을 했다. 레바논을 상대로 패한 것이나 다름없는 1-1 무승부를 마치고 5일 귀국한 뒤 실시한 첫 훈련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파주의 공기는 무거웠다.

 부임 초부터 “대표팀은 분위기가 좋아야 한다”고 입이 닳도록 말했던 최강희 감독은 훈련에 앞서 선수들을 불러 모은 뒤 특유의 무심한 표정으로 농담을 던지기도 했다. 그러나 고개를 푹 숙이고 땅을 쳐다보는 선수들이 많았다. 본격적인 회복훈련이 시작되자 최 감독은 주전 골키퍼 정성룡(28·수원)의 어깨를 툭 치며 “넌 회복훈련 안 해도 되잖아”라며 밝게 웃었다. 정성룡은 “네?”라고 깜짝 놀라며 반응했지만 따라 웃지는 않았다.

 한 시간가량 이어진 회복훈련 내내 얼어붙은 분위기를 깨는 선수는 나타나지 않았다. “파이팅”을 외치며 동료끼리 힘을 실어주는 일상적인 훈련장의 모습과는 사뭇 달랐다. 주장 곽태휘(32·알 샤밥)는 조용하고 차분해 주변에 대한 배려는 잘하지만, 이런 공기를 바꾸는 역할을 하지는 못했다. 정신적인 기둥 역할을 하는 김남일(36·인천)이 부상 치료 때문에 훈련에 불참한 게 아쉽게 느껴졌다.

 이동국(34·전북)은 비장한 표정으로 훈련에 매진했다. 그는 레바논전에서 결정적인 찬스를 놓쳐 “은퇴해라” “후배에게 양보해라”라는 비난에 시달리고 있다. 그는 회복훈련이 끝난 뒤에도 한동안 그라운드에 남아 컨디션을 조절했다. 이동국은 “악플에 신경 쓸 나이는 지났다. 빨리 회복해 다음 경기를 준비하겠다”는 말만 남기고 빠르게 숙소로 돌아갔다.

 ‘으쌰으쌰하는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는 질문에 대해 이청용(25·볼턴)은 “뛰는 선수들도 그렇게 생각했는데, 밖에서도 잘 보셨을 것”이라며 아쉬워했다. 하지만 그는 “분위기가 아주 나쁜 것은 아니다. 아직 여독이 채 풀리지 않았다. 하루 더 쉬고 내일부터는 밝게 훈련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 감독은 “결과가 안 좋으면 선수들이 실망해 분위기가 가라앉을 수 있다. 선수들에게 희망이 있으니 잘 준비하자고 주문했다”고 말했다.

 최 감독은 회복훈련 후 선수들에게 오후 9시까지 외출을 허락했다. 최만희 파주 NFC 센터장은 “분위기를 바꾸기 위한 코칭스태프의 배려로 풀이된다”고 말했다. 한국은 11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우즈베키스탄과 최종예선 7차전을 치른다.

한편 최종예선 3연승을 달리고 있는 우즈벡은 6일 중국 광저우에서 열린 중국과의 평가전에서 2-1로 승리하며 한국전 대비 모의고사를 성공적으로 마쳤다.

 ◆이청용 불화설 적극 해명=레바논과 경기 후 한 신문에서 ‘이청용과 기성용(24·스완지시티)이 사적인 일로 다퉜고, 대표팀 내부에 파벌이 있다’는 보도를 했다. 이에 대해 이청용이 6일 훈련 뒤 작심한 듯 입을 열었다. 그는 “하고 싶은 말이 있어 정리해왔다”고 휴대전화를 꺼내 보면서 “가만히 있으면 대표팀 분위기가 안 좋아질 것 같아 나서게 됐다. 성용이와 (구)자철이와는 매우 친하다. 대표팀 내에 파벌이 있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말했다. 최 감독은 “대표팀에 의견 대립은 있지만 감정적 대립은 없다. 불화가 있다면 내가 책임지겠다”고 말했다.

파주=김민규·김정용 기자
사진=김진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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