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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에의 발판은 성실 험프리|말없는 실천가로 정평 머스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휴버트·험프리<민주·대통령후보>
끊임없는 지식욕과 활동력, 그리고 어떠한 일이 있어도 굴하지 않는 태도-이것이 그의 생애를 지배해왔다.
「사우드다코다」주의 빈한한 마을에서 가난이라는 것을 체험하며 성장한 그는 어린시절 돈 때문에 집을 팔고 이사를 가야하는 쓰라림을 맛보았다. 그러나 그의 학교성적은 우수해서 고등학교 졸업 때는 졸업생을 대표해서 답사를 읽었다. 대학재학 중 그의 아버지가 경영하던 약방이 망해 학교를 중퇴, 이래 수년 동안은 일을 해서 그의 가계를 도왔다.
불굴의 의지로 그는 수년 후「미네소타」대학에 복교했으며 재학 중 현재의 부인과 결혼, 부부가「아르바이트」로 대학을 졸업했다. 1943년「미네아폴리스」시장선거에 출마, 낙선했으나 45년 재출마하여 당선됐다.
37세에 상원의원이 됐다. 상원의원 시절에도 그의 노력하는 태도는 높이 평가되었으며 재선의원으로 상원의 제2실력자가 되었다. 53세에 부통령이 되였으며 올해 57세로 대통령후보가 되어 정치의 정상에 올랐다.
에드먼드·머스키<민주·부통령후보>
「폴란드」계 양복 재봉사의 아들인 그는 민주당의 부통령후보가 되기까지 세상에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조용한 사나이다.
「메인」주에서 자라난 그는 어린시절부터 부끄러움을 곧잘 타던 수줍은 사나이로 알려졌었는데 이러한「핸디캡」을 극복하기 위해 그는 토론회나 강연회장 같은데 부지런히 쫓아다니면서 자기의 성품을 변경시키는데 신경을 썼다.
덕분에 그는 우수한 성적으로 대학을 졸업할 수가 있었다.
장학금으로 대학에서 역사와 법률 양과의 학위를 받은 그는 생활비를 벌기 위해「호텔」의 안내원 노릇도 했다. 그는 대학시절부터의 열렬한 민주당원.
2차대전 때는 해군사관으로 복무했으며 제대 후 「메인」주 입법의원으로 3선했다.
1954년「메인」주지사가 되었으며 59년 상원의원이 되기까지 재선됐다.
이래 상원의원직을 계속 맡고있는 그는 상원에서 말없이 노력하는 형으로 정평이 있다. 올해 54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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