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1) 풍경 소리|<국립박물관 미술과장> 최순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마음과 눈은 자칫 번잡함에 현혹되기 쉬운 오늘의 생활에서 가장 아쉽고 요구되는 문제일 것이다. 아름다운 것과 아름답지 못한 것을 구별할 수 있는 눈을 갖춘다는 것은 하루아침에 이루어 질 수도 없는 것이다. 하지만 아름다움이란 원래 생활 속에 있는 것이다. 생활을 떠나서 아름다움만이 존재하지는 않는다. 더구나 아름답다는 것은 사용하는데 가장 편리하고 적합한 것이기도 해다. 평소에 무심히 보고 만지던 물건들을 전문가와 애호가들의 해설과 소개를 통해서 새로운 가치와 아름다움을 발견해보기로 한다.
소방울과 풍경소리 하면 좀 거리가 먼 것처럼 느껴질는지는 모르지만 나는 지금 소방울 풍경소리를 즐기고 있다. 서서「알프스」에 갔을 때 그곳 산골 목장에서 방목하는 소의 목에 흔히 달아주는 소방울을 한개 선물로 사온 것이다. 처옴 이것을 살 때에는 무엇에 쓸 것인가 미리 요량을 하고 산것도 아니지만 그 방울 소리가 야하지 않고 또 그 화음이 은은할 뿐더러 생김새가 소박해서 산골 냄새가 풍기는 것이 좋아서 산것이다.
이 소방울은 삼각종 형의 쇠꼬챙이에 작고 큰 무쇠 방울 세개를 꿰어 달고 그 중심 공간에 작은 나무 방울 하나를 매달았다. 그랬더니 조그마한 움직임에도 이 작은 나무 방울은 주위에 달린 방울들을 번갈아 건드리게 되어 그때마다 크고 작게 맑고 은근한 화음을 내게 마련이다.
맨 처음 나는 이것을 우리집 대문짝 안에 걸어 두기로 했다. 대문을 열 때마다 그 먼나라 산골의 은은한 방울 소리가 우리집 안뜰에 번지는 것을 즐길 수 있었다. 또 이 특이한 방울 소리를 들으면서 나는 깊숙한 서재에 앉아서도 우리집에 손님이 드나드는 낌새를 분간할 수 있어서 편리했다. 와락 여는 문소리와 살며시 여는 문소리를 이 방울은 매우 민감하게 전달해 주었으므로 나는 내 나름으로 드나드는 사람을 분간할 수 있을 듯 싶었다.
실상 서서의 산골 목장에서는 목장마다 각기 다른 소리의 소방울을 소의 목에 달아 주므로 방목을 해놓고도 목동들은 그 방울 소리만 들어도 흩어진 자기 목장 소들을 분간해서 찾아낸다고 하니, 내가 이웃집 대문마다 같은 소리를 내는 전령 숲 속에서 우리집 대문 소리와 그 사람들을 어지간히 분간해 낼 수 있다는 이야기는 하동 자랑거리가 못 되는 일이다.
한동안 이렇게 대문에 달아 두었더니 우리 집을 처음 드나드는 사람들은 침침한 중문 안에 달린 이 소방울을 궁금해하기도 하고 내 생각에도 이 방울이 어두운 구석에서 몇햇동안 문지기 구실을 했으니 이젠 좀 출세를 시킬 만도 하다싶어 금년 여름부터는 대청 뒷마루 추녀 끝에 달아놓고 풍경 소리 삼아 즐기기로 했다. 남북으로 훤하게 트인 대청이라 바람이 잘 지나고 그때마다 이 소방울은 신묘한 소리를 내면서 건들거려서 언뜻 쳐다보게 해주고는 했다.
바로 대청 뒷면으로는 북악산 송림이 가깝게 다가서 있어서 추녀끝 공간에 매달린 이 소방울의 운치도 묘했다. 말하자면 놋쇠방울에 붕어 한 마리를 꿰어 단 절간 풍경의 모습보다는 또다른 짜임새 있는 아름다움을 즐길 수 있는 것도 한 덕분이었다. 동서양을 가릴 것 없이 고요와 외로움을 달래는 산간의 정취란 상통하는 것인 듯, 서서의 소방울이 서울 한복판 기와집 추녀에 달려서 조금도 어색함이 없으니 도시 고마운 일에 아닐 수 없다. 이제 가을이 짙어져서 솔바람소리 낙엽소리가 일면 이 호젓한 마음을 안고 나는 긴긴밤에 이 소방울 소리를 즐기며 삼동을 곧잘 살아 갈 수 있을 것만 같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