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산하 안보전략연구소 박사급 절반, 한때 해고 통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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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정보원 산하 연구기관인 국가안보전략연구소가 구조조정 문제를 둘러싸고 술렁이고 있다. 3일 내부 사정에 밝은 관계자에 따르면 국정원 측은 지난달 16일 연구소 박사급 연구위원 17명에 대한 해임 방침을 통보했다. 전체 36명인 박사급 연구직책의 절반에 가까운 숫자다. 국정원이 밝힌 사유는 ‘조직 효율화’를 위한 구조조정이다. 국제경제 문제 등을 다뤄온 연구소 내 ‘국익연구실’을 폐지하고 대북업무 등에 주력하겠다는 계획에 따른 것이다. 이런 구상은 지난 3월 남재준 원장 부임 이후 가닥이 잡혔다고 한다.

 그러자 해당 박사들뿐 아니라 안팎에서 “국책연구기관이 하루아침에 절반에 가까운 인력을 감원하는 건 전례가 없다”며 반발하고 있다. 일각에서 해임 조치 이후 비슷한 대체인력을 충원할 것이란 얘기까지 나돌면서 분위기가 더 험악해졌다. 특히 17명 가운데 주로 북한·외교안보를 연구해 온 박사 3명이 포함된 사실이 알려지면서 논란이 거세졌다.

 이들은 이명박 정부 때부터 야당과의 관계 때문에 국정원으로부터 이런저런 이유로 징계를 받는 등 불편한 관계에 있었다. J박사는 야당 후원회 가입 등 외부활동이 문제가 됐고, L박사는 보안누설 혐의를 받은 적이 있다. K박사의 경우 노무현 정부 때 청와대 외교안보 라인에 근무한 경력이 있다. 하지만 기밀을 언론에 흘렸다는 의심을 받은 L박사는 억울하다는 입장이고 국정원 조사에서도 뚜렷한 범법사실이나 위반행위가 드러나지 않았다.

 한 연구소 관계자는 “국정원 측에서 박근혜정부와 ‘국정철학’이 맞지 않는다고 간주하는 인물을 대상자로 찍어 내보내려는 것이란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고 말했다. 사정이 이렇게 되자 북한학계를 중심으로 구조조정 반대 움직임이 일고 있다.

 문정인 연세대 교수는 몇몇 교수와 “연판장을 돌려서라도 공론화해 퇴출계획을 저지해야 한다”는 입장을 나눈 것으로 전해졌다. 북한연구학회장을 맡아오다 입각한 류길재 통일부 장관도 남재준 국정원장에게 재고를 요청하는 등 동료학자들에 대한 구명운동을 펼쳤다고 한다.

 국정원 측은 일단 해임이행을 보류하며 한발 물러서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명예퇴직 등의 방식으로 박사급 인력에 대한 구조조정은 추진한다는 입장이라 불씨는 꺼지지 않고 있다. 연구소의 한 박사는 “국정원 산하 기관이란 특성상 진짜 원하는 사람이 명예퇴직하기보다는 특정 대상자에 대한 퇴직조치가 앞으로 벌어질 수 있다”고 했다.

이영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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