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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조현욱의 과학 산책

유전자 조작 농산물의 위험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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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조현욱
객원 과학전문기자
코메디닷컴 편집주간

유전자를 조작한 밀은 옥수수·콩·면화와 달리 세계 어디에서도 재배 승인을 받은 일이 없다. 하지만 미국 오리건주에서 최근 이런 밀이 발견됐다. 몬산토의 강력 제초제 ‘라운드 업’에 끄떡도 하지 않는 품종이다. 이 밀의 출처는 미스터리다. 종자를 개발한 몬산토가 미국 16개 주에서 이를 시험 재배한 시기는 1998~2005년이기 때문이다. 회사는 시장 전망이 어둡다는 이유로 상업화를 포기하고 해당 프로그램을 폐기했다. 문제의 밀은 어떻게 해서 10년 가까운 시차를 뛰어넘을 수 있었을까. 하나의 시나리오는 과거의 시험 재배지에서 바람에 날려간 씨앗이 무언가 설명할 수 없는 자연현상 탓에 문제의 농장 단 한 곳에서 싹을 틔웠다는 것이다. 또 다른 시나리오는 바람에 날려간 종자가 지속적으로 인근 밀밭을 오염시켜 왔다는 것이다. 최악의 시나리오는 인간의 실수로 종자를 뒤섞어 팔아왔다는 것이다.

 이번 사건은 2006년 발생한 ‘유전자 조작 쌀’ 사건과 비슷하다. 당시 농무부는 수출용 쌀에 유전자를 조작한 특정 품종이 섞여 있는 것을 발견했다. 아직 식품 승인을 받지 않은 실험·연구용 품종이었다. 유럽연합은 즉각 미국산 쌀의 수입을 중단했고 쌀의 국제시세는 곤두박질쳤다. 2011년 바이에르 크롭사이언스는 피해보상에 최대 7억5000만 달러를 지불하기로 합의했다. 오염의 원인은 끝내 밝혀지지 않았다. FDA는 당시의 쌀이나 이번의 밀에 대해 식품용으로 문제가 없다고 발표한 바 있다. 이에 대해 시민단체들은 사람이 장기간 복용했을 때의 안전성이 검증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세계 소비자의 반응도 차가운 편이다. 유전자 조작 옥수수와 콩(대두)은 사료로 주로 사용되는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과학자들이 우려하는 것은 식품 안전성보다는 생태계 교란이다. 지난주 영국 ‘왕립협회보 B’에 실린 논문을 보자. 유전자를 조작한 대서양 연어와 브라운 송어 사이에 수퍼 잡종이 탄생했다. 캐나다 연구팀에 따르면 잡종 치어의 생장속도가 유전자 조작 연어보다 더욱 빨랐다. 이에 앞서 FDA는 환경영향 평가에서 “유전자 조작 연어가 야생에서 생존·번식할 가능성은 극도로 희박하다”고 발표한 바 있다. 연구팀은 “잡종이 출현·생존했을 뿐만 아니라 경쟁력도 더 뛰어난 것으로 확인됐다”면서 “인공 유전자가 야생개체군에 흘러 들어가 새로운 종을 탄생시킬 위험이 확인됐다”고 말했다. 해당 연어는 상업화를 위한 FDA의 승인을 기다리고 있다.

조현욱 객원 과학전문기자·코메디닷컴 편집주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