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부모 소득이 대기업 취업을 좌우한다니 …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0면

계층 간 이동 가능성이 줄어든 사회는 정체된 사회다. 부모가 부자면 자녀도 부자고, 부모가 가난하면 자녀도 가난할 수밖에 없는 사회라면 더 이상 발전을 기대하기 어렵다. 어제 한 학술대회에서 발표된 ‘부모의 소득계층과 자녀의 취업 스펙’이란 논문을 주목해야 하는 건 그래서다. 이 논문은 부모가 고소득층일수록 자녀가 대기업에 취업하는 확률이 높다고 지적했다.

 이유는 두 가지인데, 우선 대기업이 채용할 때 토익점수나 어학연수를 많이 본다는 점이다. 게다가 이는 고비용 스펙이므로 부모 소득이 높을수록 점수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고, 그 결과 대기업 취업확률이 높아진다는 의미다. 둘째는 고소득층 부모일수록 인맥과 정보력이 높기 때문에 자녀가 대기업에 취업하는 데 유리하게 작용할 뿐 아니라 대기업 역시 부모의 소득을 중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같은 연구 결과는 사실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대물림 현상이 심각해지고 있다거나 개천에서 용 나기 어려운 사회가 돼 가고 있다는 연구는 여럿 나왔다. 국민들의 통념도 비슷하다. 이런 마당에 부모의 소득이 자녀의 대기업 취업 여부를 결정한다면 대물림 현상은 심화될 게 자명하다. 전체 사회의 역동성 역시 심각하게 해칠 것이다.

 노력해도 성공할 수 없는 사회는 꿈이 없는 사회다. 더 심각해지기 전에 정부와 대기업 등 사회 지도층이 개혁에 나서야 한다. 무엇보다 대기업의 선발방식을 바꿔야 한다. 토익점수와 어학연수 등 고비용 스펙으로 뽑는 방식을 지양하고, 대신 기업에서의 업무 수행과 밀접하게 연관된 역량과 능력을 제대로 측정하는 방식으로 바꿔야 한다. 어학 능력보다 문제해결력이나 의사소통능력, 창의력 등이 기업에서 더 유용하다는 건 삼척동자도 아는 일이다. 다만 기업들이 알면서도 비용 등 여러 가지 이유로 실천하지 않았다.

 기업이 못 한다면 정부가 나서라. 그럼으로써 부모의 소득이 자녀의 대기업 입사 여부를 좌우하는 변수로 작동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부모의 소득이 계층 간 이동을 가로막는 요소로 작동하고 있는 현실을 여하히 극복하느냐에 우리의 미래가 달려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