땀에 젖은 훈장|"인생은 곧 전술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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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과거는 과거, 현재는 현재가 아닙니까. 땀흘려 번돈으로 여섯 식구가 오순도순 살아갈수있으니 마음편하고 보람을 느낍니다. 』역전의 예비역해병대령 차용윤씨(43·문경군마성면신항리)는 일손을 멈추면서 말했다.
차씨는지난63년9월해병진해기지 참모학교교장직을 떠나 예편할때까지 꼬박 22년을 군에서 보냈다.
46년에 해안경비대에들어가 소위로임관된 그는 군복을 벗을때까지 군대밖에 몰랐고, 돈을 모을줄모르는「고지식한군인」으로 알려져있었다.
그가 군복을 벗었을때에도 그에겐 어엿한 집 한간이 없었다. 그래도 그는 군대생활을 후회하지 않았다.
예편하자 처음차씨는 매부가 경영하는 대동광업소 총무과장 자리에 앉았다. 그러나 곧 회사가 경영난으로 문을닫아 결국일터를 잃을수밖에 없었다.
차씨에겐 그때부터 고생이 시작됐다.
여러차례 끼니를 굶기도 했다. 차씨는 어린자식들의 허기진 모습을 보고 생각이 달라졌다.
『과거의 영광이 무슨소용이 있느냐』고 그는 지난 6월15일 문경선철도공사장을 찾아가 인부로들어갔다. 하루 품삯 3백원. 지휘봉을 쥐던 손에 곡괭이와목도가메어졌으나 차씨는 불평없이 일했다.
이제는 그 고된 일도 감당해나갈만큼 숙련일꾼이 됐다. 처음에는 그를몰라보던 일꾼들이 이제는 차씨의 과거를알고 머리를 숙이기도하고 어떤사람은『왜 이런 일을 하고 있느냐』고 의아로운듯 묻기도 한다.
그러나 그때마다 김씨는 화를 내거나 얼굴을붉히지도않고『내가 잡고 있는 이 삽이 곧 인생의 지휘봉이 아니요』하며 천연스레 말한다. 처음에는 고되던 일도 차차 몸에 붙었고, 한달 8천여원의 수입으로 6식구가 생계를 이럭저럭 꾸려 갈수있다고한다.
부인 박정애씨(37)는 남편의 고생을 덜기위해 옷가지를들고 봇짐장사도 해봤으나 남편이한사코말리기때문에그만두었단다.
S고교를 나온 장남성무군(19)은 아버지가 고생하는것을보고 진학을포기, 일자리를 구하는 중이지만 『아버지를 빨리 도와야겠다』고 말하고있다.
차씨가 지금일하는 공사는 오는 10월이면 모두끝난다. 차씨는 겨울철에는 공사하는 곳이없어 좀 걱정이된다.
차씨는 무명수건으로 이마의 땀을 닦아내면서『인생은 곧 전술학과 같은 것이라고 생각해요. 싸움터에 돌격과 후퇴가 있는 것처럼 인생에도 가끔 행운과 불행이 엇갈려 밀려오지 않습니까. 지금은 내게 수양을 쌓으라는때인것같습니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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