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LB] 스타열전 (79) - 배리 지토 (1)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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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클랜드 영건 3인방을 형제로 비유한다면? 팀 허드슨(26)이 과묵한 자수성가형의 큰 형이라면 마크 멀더(24)는 깔끔한 이미지의 엘리트형의 둘째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지토는? 아마도 겁을 상실한 자유분방한 장난꾸러기 막내의 이미지가 아닐까. (사실 그는 실제로도 3남매 중 막내이다.)

갈기머리에 유니폼위로 높이 올려 신은 스타킹이 트레이드 마크인 배리 지토(24, 오클랜드 어슬레틱스). 그는 유난히도 수식어를 많이 달고 다니는 선수이다. ‘fearless’(겁없는), ‘free-spirited’(자유분방한), ‘colorful’(화려한), ‘entertainer’(연예인) 등등.

하지만 그의 개성을 표현하는 이런 단어들을 제쳐두고 투수로서 그를 가장 잘 표현한 말은 아마도 클리블랜드 짐 토미(31)의 한 단어가 아닐까 싶다. “nasty”(지저분한)

지토는 말 그대로 화려하면서도 지저분하기 짝이 없는 커브와 뛰어난 제구력을 앞세워 17승(8패, 방어율 3.48)을 거두며 2001년을 그 어느 선수보다도 뜨거운 해를 만들었다.

특히 그가 막판 9연승을 비롯, 시즌 후반기에 그가 보여준 엄청난 활약은 팀을 시즌 초반 지구 꼴찌팀에서 102승의 와일드카드 팀으로 변모시킨 일등공신이었다.(후반기 11승 2패, 방어율 2.29)

사실 집안환경만 놓고 본다면 지토는 뮤지션이 되었어야 했다. 그의 아버지 조 지토는 냇킹 콜, 프랭크 시나트라와 함께 음악을 했었고 한때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지휘를 맡기도 한 유명한 음악가였고, 그의 어머니 역시 유명한 연주가였다. 그의 두 누이역시 훗날 음악가로 성장하였다.

하지만 지토만은 달랐다. 악기를 배우기는 했지만 3살 때 크리스마스 선물로 플라스틱 배트와 공을 받은 이후 그는 유난히 야구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물론 지금의 자유분방하고 연예인적 기질은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것이지만.

아이러닉하게도 지토가 야구선수로서 훌륭히 성장할 수 있었던 바탕에는 음악가 아버지의 헌신적인 뒷바라지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아버지는 음악생활을 은퇴하고 샌디에고로 이사를 하면서 아들 배리가 야구를 체계적으로 배울 수 있도록 도왔다. 집 뒷뜰에 작은 야구 그라운드를 만드는가 하면 배리가 13살이 되자 전 파드레스의 좌완투수이자 1976년 사이영상 수상자였던 랜디 존스에게 약 4년간 개인교습을 받게 했다. 수업료가 1년에 2,500달러나 되었지만 결과적으로 개인교습은 배리가 큰 선수로 성장하는데 좋은 계기가 되었다.

UC컬리지와 피어스 컬리지를 거쳐 남가주 대학 재학시절 12승 3패, 방어율 3,28에 112이닝 동안 삼진을 무려 154개나 잡아내며 전미 장학생(All-American honors)으로 선발되는 등 일약 유망주로 떠오른 지토는 1999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1라운드 전체 9번에 어슬레틱스에 지명되었다.

그리고 곧바로 159만 달러의 보너스를 받고 오클랜드에 입단하게 되었다. 피어스 컬리지 시절인 98년 드래프트에서 텍사스 레인저스로부터 3라운드에 지명되어 계약금 30만 달러를 제시받았던 것과 비교한다면 1년 만에 크게 발전한 셈.

약 1년간의 짧은 마이너리그 생활을 거친 후 지토는 드디어 당시 선발 오마 올리바레스의 부진을 틈타 전격 메이저리그에 입성을 하게 되었다.

2000년 6월 22일 애너하임 에인절스와의 첫 선발등판 및 빅리그 데뷔전을 갖은 지토는 5회 무사만루에 위기에서 상대 중심타자인 팀 새먼(33), 모 본(34, 현 뉴욕 메츠), 개럿 앤더슨(29)을 연속 삼진으로 처리, 팀을 승리로 이끌면서 데뷔전에서 깊은 인상을 심어주게 된다.

이후 데뷔전 포함 14번의 선발등판에서 7승 4패, 방어율 2.72라는 신인으로서 놀라운 센세이션을 일으키게 되었다. 특히 9월에만 5승을 거두며 ‘가을의 사나이’로서의 예고를 시작하였다.

하지만 그가 팬들을 정말로 놀라게 한 것은 뉴욕 양키스와의 AL 디비전 시리즈 4차전. 어슬레틱스가 1승 2패로 벼랑에 몰린 상황에서 선발로 나온 지토의 맞상대는 바로 사이영상 5회 수상의 ‘로켓맨’ 로저 클레멘스(39). 어느 누구도 클레멘스의 승리를 의심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백전노장’ 클레멘스와 뉴욕 양키스의 강타자들을 5.2이닝 동안 이 겁없는 22살의 청년에게 철저히 농락당했다.(5.2이닝 5안타 1실점) 이 경기를 통해 지토는 팬들로 에게 자신의 이름을 확실히 각인시키게 된다.

이듬해 지토에게도 어김없이 2년생 징크스가 찾아오는 듯 했다. 타자들이 상대적으로 치기 편한 직구를 노려치기 시작했고, 그에 비해 지토의 칼 같던 제구력과 변화구는 위력이 떨어진 듯 보였다. 언론에서는 그의 정신자세를 문제 삼기까지 하였다.

하지만 지토의 뒤에는 언제나 아버지가 있었다. 7월 24일 미네소타 트윈스와의 원정경기에서 6실점을 허용하며 2이닝 만에 강판 당한 후 아버지는 지토를 찾았다. 아버지는 지토의 아파트에서 머물며 아들에게 정신적 해이를 지적하며, 야구를 기본에서부터 다시 시작할 것을 주문했다.

아버지의 허심탄회한 충고와 격려 이후 지토는 완전히 달라진 모습을 보이게 된다. 예의 날카로운 제구력과 커브는 되살아났고 5점대가 넘던 방어율은 이내 3점대로 낮아졌다. 8월과 9월에는 잇달아 ‘AL 이 달의 투수상’을 수상하기도 하였다.

지토의 부진과 맞물려 나가던 팀 성적 역시 그의 부활에 힘입어 엄청난 속도로 상승하였다. 전반기 간신히 5할 턱걸이 승률이었던 어슬레틱스는 후반기들어 연일 승리행진을 펼치며 후반기에만 무려 58승을 기록, 당당히 와일드카드로 포스트시즌에 진출하게 되었다.

이석무 명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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