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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치부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지난 3일 밤과 4일 새벽에 이르는 2시간동안 퍼부은 비로 남대문지하도에는 한창 심한 때에는 80센티 가량의 물이 괴었었다.
그래 교통이 붐비는 이곳을 보행하는 사람들은 하는 수없이 발을 벗고 건너야했다.
수도서울의 위용을 자랑하는 구경거리 중에서도 으뜸가는 것이 얼마 전까지 만해도 남대문지하도였다. 한때는 그 속에 소매상들이 번화하게 들어서 있었고 시골의 상경객들은 으례 지하도를 남대문이상으로 중요 화제거리로 삼았었다.
그러나 그 지하도는 이제는 다른 건설사업에 밀려 빛을 잃게된 듯하다. 낫에도 희미한 조명에 어둠침침하고, 어디선지 퀴퀴한 오물냄새와 곰팡내가 보행자들의 이맛살을 찌푸리게 하는 때가 있다. 또 밤이면 험상궂은 불량배들의 배회로 가슴을 섬뜩하게 만들어 놓고 있는 때도 있다.
특히 남대문은 외국인 관광객들이 자주 찾아드는 곳. 그 속에서 외국인을 만나면 얼굴이 붉어진다. 차라리 이번 장마에 드러나게 된 이 지하도의 치부가 말짱히 씻겨졌으면 좋겠다.
그러나 이런 치부는 여전한데 그대로 있기를 바라는 것들은 자꾸 헐려만 간다. 이제 「사랑의 이발사」영송여사가 고아들의 뒷바라지를 위해 경영해오던 이발관이 무허가 건물이라 하여 헐리게 되었다.
나무판자로 엉성하게 차렸던 15평 남짓한 그 이발소는 혹은 덮어두고 싶을 만큼 창피스런 또 하나의 치부로 보일지는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전쟁고아 35명에게는 사랑의 아늑한 보금자리나 다름없었다.
그리고 또 그곳은 국경을 넘어선 인류애와 따뜻한 인간의 체온을 상징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곳이 허름한 누더기 조각모양으로 보이면 보일수록 더욱 우리에게 깊은 감동을 던져주는 것이기도 했다. 그것은 결코 치부가 될 수는 없는 곳이다.
도로 계획에 걸린 「사랑의 이발소」는 이제 15일까지엔 헐리게된다. 이 때문에 갈곳이 없게되는 것도 35명의 고아들만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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