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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 최대 스포츠 외교대전 … 뜨거운 '베드로의 도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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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러시아의 아름다운 고도(古都) 상트페테르부르크가 29일 세계 뉴스의 중심이 된다. 향후 십수 년간 지구촌 스포츠계의 운명을 결정할 외교대전이 치열하게 전개되는 까닭이다. 이날부터 사흘간 일정으로 열리는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집행위원회 얘기다. 이번 회의는 여느 때와는 사뭇 다른 긴장감이 감돈다. 굵직한 3대 이슈를 놓고 개막 전부터 뜨거운 파워게임이 펼쳐지고 있다. ▶정말 레슬링이 퇴출되느냐 ▶누가 차기 IOC 위원장이 되느냐 ▶첫 이슬람권 올림픽 개최가 이뤄지느냐, 어느 하나 흘려 넘길 만한 게 없다. 이슈마다 이면에는 대륙 간 숨은 자존심 대결이 똬리를 틀고 있다. 이번 집행위는 스포츠어코드(SportAccord·IOC 집행위와 종목별 총회, 학술회의와 산업전시회 등이 열리는 국제스포츠계 최대 이벤트)의 일환으로 열리는 만큼 대부분의 IOC 위원이 참석한다. 위원들을 상대로 공식적인 로비를 벌일 수 있는 최대이자 마지막 기회인 것이다.

미·러·이란 레슬링 지키기 ‘적과의 동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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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뭐니뭐니해도 하이라이트는 지난 2월 집행위 결정으로 2020년 올림픽 핵심 종목(25개)에서 탈락한 레슬링의 설욕 여부다. 집행위는 이번 회의에서 실시할 프레젠테이션 등을 근거로 2020년 올림픽에 새로 포함시킬 종목의 후보를 결정한다. 여기에라도 들어서 퇴출을 막아야 하는 레슬링 말고도 새로 진입을 노리는 종목이 7개가 더 있다. 9월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열리는 총회에서 투표를 통해 한 종목을 최종 결정한다.

 처음에는 레슬링이 영구 퇴출된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분석이 지배적이었다. 그런데 국제레슬링연맹(FILA)뿐 아니라 세계적 반발이 거세게 일자 상황이 달라졌다. 앙숙이던 레슬링 강국 미국·러시아·이란이 의기투합해 레슬링 구하기에 발벗고 나서는 초유의 상황까지 벌어졌다. 이달 중순에는 미국 LA와 뉴욕에서 3국의 레슬링 메달리스트 수십 명이 모여 경기를 벌이는 대형 이벤트도 열었다. FILA도 자체적으로 흥미를 높일 수 있도록 세트제를 폐지하고 패시브 제도를 바꾸는 등 규칙을 개정했다. 여성 부회장 자리를 신설하는 등 조직도 정비했다.

 당황한 IOC의 기류 변화도 감지됐다. 곧 퇴임하는 마당에 레슬링계와 척질 필요 없는 자크 로게 위원장(71)이 갑자기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 FILA의 개선 노력을 칭찬하고 나섰다. AP통신은 “당초 한 종목을 후보로 올려 사실상 이번에 새 종목을 확정할 것으로 예상됐던 집행위가 3, 4개 종목을 후보로 낼 것으로 보이며 레슬링이 포함될 확률이 높다”며 레슬링의 ‘원대 복귀’ 가능성을 높게 내다봤다.

로게 후임 6명 각축 … 유럽 독주 깨질 수도

  올해 12년의 임기를 마치는 로게의 후임도 초미의 관심사다. ‘스포츠계의 대통령’을 노리는 후보들에게는 이번 회의가 가장 중요한 유세 현장이다. 다음달 10일 후보 마감일을 앞두고 현재까지 공식적으로 출마 의사를 밝힌 후보는 여섯 명이다. 지금까지 후보가 가장 많았던 선거는 다섯 명이 나섰던 2001년이었는데, 이번에는 더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게 됐다.

 위원장 선출은 9월 총회에서 이뤄진다. 하지만 이번 집행위가 총회 전에 열리는 가장 큰 행사여서 투표권을 가진 위원들을 대상으로 치열한 로비전이 불가피하다. 위원장 선출은 IOC 위원 100여 명에게 투표권이 있고, 참석 위원의 과반이 나올 때까지 최저득표자를 제외하는 녹다운 방식으로 진행한다. 후보 난립으로 초반 투표에서 표가 갈릴 경우 예상 밖의 승자가 나올 수도 있다.

 지금까지 역대 위원장 8명 가운데 한 명이 미국 출신인 것을 제외하면 7명이 유럽 출신이었다. 이에 차기 위원장은 다른 대륙에서 배출할지 관심을 모으고 있다. 현재 잠정 후보 6명의 출신 대륙은 유럽 3명, 아시아 2명, 중남미 1명이다. 독일의 토마스 바흐(60) IOC 부위원장이 우세라는 평이 있지만 유력한 후보는 없다는 것이 외신들의 분석이다. 특히 레슬링에 약한 유럽 국가 위원들이 다수인 집행위가 레슬링 퇴출을 도모하면서 반유럽 기류가 조성된 데다, 유로존 경제위기 이후 유럽에 퍼진 반독일 정서도 변수다. 싱가포르의 세르미앙 응(64) 부위원장, 대만의 우징궈(67) 집행위원 등 아시아 후보들이 유럽의 독주를 막을 다크호스로 등장할 가능성도 있다. 특히 벨기에 출신의 로게 위원장이 중립을 유지하고 있어 표심의 향배가 더욱 안갯속이다. 2001년 로게가 처음 선출될 때 안토니오 사마란치(스페인) 당시 위원장은 같은 유럽권인 로게를 지지했다.

첫 이슬람 vs 일본 부활 … 2020 개최지 눈독

  2020년 여름 올림픽을 두고선 세 도시가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스페인 마드리드가 재정위기로 인해 사실상 여력이 없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이를 틈타 아시아의 두 도시가 치고 나왔다. 도쿄(일본)와 이스탄불(터키)은 각기 다른 이유로 올림픽 개최 당위성을 내세우고 있다.

 도쿄는 1964년 도쿄 올림픽 때처럼 일본 경제의 부활을 이끄는 대형 이벤트로 올림픽을 치르겠다는 각오다. 지난 3월 IOC 실사단의 일본 방문 당시 아베 신조 총리가 직접 노래를 불렀을 정도로 열심이다. 이스탄불은 이슬람권 국가로는 처음으로 올림픽을 개최, 문화와 종교적 통합의 상징이 되겠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최근 몇 년 사이 안정된 국내 정치와 경제 발전을 토대로 국제적 위상 강화에 나선 터키는 올림픽을 계기로 명실상부한 지역 맹주로 자리매김할 심산이다.

 양국의 신경전도 치열하다. 일본에선 이노세 나오키 도쿄도지사가 지난달 26일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 “이슬람 국가들은 서로 싸움만 하고 있다”며 “터키 사람들이 장수하고 싶다면 일본 같은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는 이슬람 비하 발언을 해 홍역을 치렀다. 터키는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총리가 지난 3일 터키를 방문한 아베 총리와 공동 기자회견을 하며 “일본은 한 번 하지 않았나. 양보해달라”는 뼈있는 농담을 하기도 했다.

 IOC 규정상 부정 행위를 막기 위해 후보 도시와 위원 사이의 개별 접촉은 제한돼 있다. 다음 달 후보 도시들에 대한 IOC 평가보고서가 나오면 7월 마지막 홍보 일정과 9월 개최지 결정만 남아 있다. 운명의 사흘을 앞둔 양국 관계자들은 극도의 긴장 속에 30일 프레젠테이션 행사를 준비하고 있다. 아시아권 내부 경쟁인 만큼 다른 대륙의 표심을 어떻게 끌어당길 수 있을지도 관건이다.

유지혜·정종훈 기자

로게

◆ 국가원수 예우 받는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

100여 명의 위원으로 구성된 IOC의 수장. IOC 의결 기구인 총회와 집행위원회 의장을 당연직으로 맡고 IOC 내 각종 위원회를 설치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다. 무보수 명예직이지만 전 세계에서 국가원수에 준하는 예우를 받는다. 위원장 숙소에는 IOC기와 함께 위원장 국적기가 게양된다. 위원장이 요청할 경우 해당국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국가원수와의 면담을 주선하는 게 관례다. 막강한 권한으로 인해 장기 집권에 따른 독재와 부패 가능성이 부각되며 1999년 임기 8년에 한 차례에 한해 4년 연장할 수 있는 규정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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