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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재 칼럼] 심상찮은 밀양 송전탑 갈등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324호 30면

경남 밀양 송전탑 공사를 둘러싼 현지 주민과 한국전력 간 대치가 끝이 보이지 않는다. 25일로 벌써 엿새째다. 어느 한쪽의 극적인 양보가 없이는 쉽게 돌파구가 열리지 않을 것 같다.

 공사가 지연되면서 올여름 전력난으로 대규모 정전사태(블랙아웃)가 빚어지는 건 아닌지 걱정이다. 언제부터 혹서·혹한 때 블랙아웃을 걱정하는 나라가 되었는지 부아가 나기도 한다. 아직 여름철이 시작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수은주는 섭씨 30도를 오르내린다. 푹푹 찌는 한여름이 되면 선풍기로는 어림 없고, 얼마나 에어컨을 틀어대야 할지 걱정이다. 그러면 전력 부족으로 제한 송전을 한다는 둥, 실내온도를 몇 도 이상으로 맞춰야 한다는 둥 각종 절전대책이 쏟아질 것이다.

 석유 한 방울 나지 않는 나라에서 절전이야 당연하지만, 예비전력이 얼마 남았다든지, 이런 추세라면 올여름 무사히 넘기기는 힘들 거라든지, 이런 발표가 나올 것 같아 마음이 불안하다.

 이런 상황에서 밀양 송전탑 건설을 둘러싸고 주민들과 정부가 밀고 당기고 있으니 때이른 무더위만큼이나 마음이 답답하다. 송전탑 건설이라는 공공성 사업이 주민·시민단체의 반발과 정치권의 개입으로 지연되고 있어서다. 딱 들어맞는 사례는 아니지만 문득 천성산 도롱뇽 사건이 떠오른다. KTX 경부선 주행시간을 단축하기 위해 경남 양산의 천성산 원효터널 공사를 둘러싸고 환경단체와 노무현정부가 지루하게 대치한 사건이다. 이 과정에서 지율 스님과 일부 환경단체는 “천성산에 터널이 뚫리면 늪에 물이 빠져나가 산에 도롱뇽이 살지 못하는 등 생태계가 파괴된다”며 장기간 공사를 막았다.

 환경단체는 “지율 스님도 살리고 도롱뇽도 살려야 한다”며 공사금지 가처분 신청과 함께 범국민적 반대운동까지 벌였다. 결국 이 사건은 4년 만인 2006년 6월 대법원이 소송기각 결정을 내린 뒤에야 공사가 재개됐다. 당초 계획보다 훨씬 늦은 2010년 11월에야 터널이 완공됐다. 공사 중단으로 인한 공기(工期) 지연과 물적 피해는 말할 수 없이 컸다.

 그럼 일부 환경단체의 주장처럼 터널 개통 후 천성산 늪은 물이 말라 비틀어지고 도롱뇽은 자취를 감췄을까. 아니다. KTX가 하루 수십 차례 터널을 지나다녀도 늪은 여전히 도롱뇽들의 천국으로 남아 있다. 환경단체의 트집성 발목 잡기로 애꿎은 이용객들만 손해를 보고, 막대한 세금만 날린 꼴이 됐다.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을 둘러싼 논란도 비슷하다. 2007년 6월 노무현 대통령이 제주 남방해역에 대한 주권사수 차원에서 해군기지 필요성을 역설했고, 강정마을의 주민투표를 통해 입지가 결정됐다. 그런 과정에 외부세력들이 개입하면서 얽히고 꼬인 끝에 뒤늦게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무엇을 위한 대치였는지 묻고 싶다.

 밀양 사태의 본질은 무엇일까. 단순히 마을 주민과 한전 간의 갈등은 아닌 것 같다. 또다시 ‘희망버스’가 밀양을 찾는 현실에서 드러나듯, 원자력발전소 건설을 저지하려는 반핵 움직임, 송전탑의 유해성, 토지수용 불만 등 복합적인 성격을 드러내고 있다. 특히 전력 수급을 위해 원전 발전 규모를 확대하려는 정부와 이를 막으려는 반핵 단체 간의 갈등 기류가 두드러진다.

 이럴수록 박근혜정부의 조정력과 돌파력이 중요하다. 송전탑 문제가 제때 해결되지 못하면 오는 12월 가동을 목표로 한 신고리 원자력 3호기의 전력을 제때 실어나를 수 없다. 그럴 경우 올겨울 대규모 정전사태가 우려된다.

 그렇다면 밀양 주민들의 요구사항 중 수용할 수 있는 건 과감히 수용하되, 설득이 필요한 부분은 진정성 있는 대화로 풀어 나가는 정성과 지혜가 필요하다. 주민들도 외부세력의 감언이설에 현혹될 게 아니라 마음을 열고 대화에 나서주기 바란다. 정치권도 행여 포퓰리즘적 언사로 갈등을 오히려 부추기는 우를 범하지 말기를 바란다. 그게 천성산 사태와 강정마을에서 얻은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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