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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 제국의 두 기둥, 슈밋 회장 - 코언 소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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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지난 21일 영국 런던의 구글 사무소에서 만난 에릭 슈밋 구글 회장(왼쪽)과 제러드 코언 구글 아이디어스 소장. ‘사이버 제국’ 구글을 이끄는 두 사람은 인터넷의 미래를 진단하고 한국에 대한 관심을 표했다. [런던=이상언 특파원]

‘사이버 제국’ 구글의 에릭 슈밋(58) 회장은 인사를 주고받자마자 “나는 한국의 열렬한 팬”이라고 말했다. 곁에 있던 제러드 코언(32) 구글 아이디어스(구글의 다국적 사업 전략을 연구하는 싱크탱크) 소장도 거든다. “에릭은 한국에 갈 때마다 신이 난다. 한번은 ‘뭐가 그리도 좋으냐’고 물어봤더니 ‘모든 게 다 좋다’고 하더라.” 슈밋 회장은 “정신없이 바쁜 와중인데도 한국인이 읽을 인터뷰라서 즐거운 마음으로 시간을 비웠다”고 생색을 잔뜩 냈다.

 구글 내부 행사 참석을 위해 영국에 온 두 사람을 지난 21일 런던의 구글 사무소에서 만났다. 슈밋 회장은 올 1월의 북한 방문에 대해 “회사 사업과는 완전히 무관한 인도주의적 차원의 일이었다”고 말했다. 처음으로 한국 언론에 방북 목적을 직접 밝힌 것이다. 그는 북한도 머지않아 인터넷의 세계에 편입될 것으로 믿고 있었다. 방북은 그 시기를 앞당기기 위한 것이었다고 설명했다.

 슈밋 회장과 코언 소장, 지난달 『새로운 디지털 시대(New Digital Age)』라는 책을 함께 펴낸 구글의 두 기둥은 인터넷과 얽힌 인류의 미래를 진단하고 한국 경제에 대해 애정 어린 조언을 펼쳤다. 슈밋 회장은 가수 싸이에 대한 질문을 받자 잠시 엉덩이를 들썩이며 춤을 춘 뒤 “우리(구글 자회사 유튜브와 싸이)는 동업자 관계”라며 웃었다.

 - 한국과 한국인이 왜 좋은가.

 “성향이 맘에 든다. 기술적인 부분에 관심이 많고, 뭐든 빨리 하고, 이기는 것을 좋아하고, 나처럼 음악을 사랑한다.”(슈밋)

 - 지난 1월 북한을 방문한 목적이 정확히 무엇인가. 북한의 정보기술(IT) 인력을 구글에 활용하려는 것이라는 등 당시 추측이 난무했다.

 “우리는 구글과 무관하게 개인적인 자격으로 방문했다. 미국의 법이 바뀌지 않는 한 미국 기업과 북한의 협력사업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주민들의 인터넷 사용을 허용하도록 북한 정권을 설득하는 게 목적이었다. 북한인들이 조금이나마 덜 비참한 생활을 하게 해야 한다는 인도주의적 의무감에서 시작된 일이다. 최소한 휴대전화용으로 쓰고 있는 3세대(3G) 통신망(이집트 통신회사가 설치)으로라도 인터넷 접속을 개방하라고 얘기했다. 우리는 북한이 인터넷을 허용하면 정권도 지금보다는 선량해지고, 주민들의 정치적 힘도 커질 것으로 믿고 있다.”(슈밋)

 - 북한 당국자들의 반응은 어떠했나.

 “경제적 성장을 원한다면 인터넷을 허용하라고 열심히 얘기했다. 그들은 묵묵히 듣기만 한 뒤에 ‘대단히 고맙다(Thank you very much)’라고 짤막하게 대꾸했다. 그게 반응의 전부였다. 태도는 아주 공손했지만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보내는 분위기였다. 북한은 최근 3G 해외전화 연결(로밍) 서비스를 시작했다가 금세 철회한 것으로 알고 있다.”(슈밋)

지난 1월 8일 북한 평양의 김일성종합대학을 방문한 에릭 슈밋 구글 회장과 빌 리처드슨 전 미국 뉴멕시코주지사(뒷줄 왼쪽 둘째와 셋째)가 한 학생이 구글로 자료를 검색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 『새로운 디지털 시대』에서 2020년께에는 전 인류가 인터넷을 활용할 것으로 예견했다. 북한 주민들도 그때쯤이면 인터넷을 사용하게 되리라고 생각하나.

 “우리는 인터넷 없이는 경제적 성장을 이룰 수 없는 시대에 살고 있다. 북한도 수년 내에 인터넷을 도입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아마 중국의 통신업체가 인터넷망 운영을 맡을 것이고, 중국처럼 정보 유통에 대한 국가적 통제가 가해질 것이다. 그래도 없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슈밋)

 - 책에서 말하는 ‘새로운 시대’란 어떤 시대인가.

 “머지않아 모든 인류가 인터넷을 사용하게 되고, 대부분 이동통신기기를 통해 온라인으로 연결될 것이다. 우리는 그 시대에 정부와 사회가 어떤 일을 해야 하는가를 말하고 싶었다. 한국인은 이미 그런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에 잘 상상이 안 가겠지만 많은 나라에서는 엄청난 변화가 생길 것이다. 최근 미얀마에 다녀왔는데 인터넷에 대한 통제를 풀자마자 소수민족과 정부의 갈등 문제가 불거졌다. 미얀마 인구의 40%가량이 소수민족이다.”(슈밋)

 “현재 인터넷을 사용하고 있는 20억 명에 대한 얘기는 이미 진부해졌다. 이제는 통신설비 부족이나 국가의 통제로 인터넷을 사용하지 못하고 있는 나머지 50억 명의 인류에 대한 얘기를 하고 싶다.”(코언)

 - 인터넷이 인류의 행복에 기여하는 게 분명한가.

 “그런 의문을 품는 것은 ‘경제 발전이 세계를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드는가’라고 의심하는 것과 같다. 경제 성장은 더 나은 의료보장, 더 좋은 교육, 더욱 민주적인 국가운영(거버넌스)을 보장한다. 한국·대만·홍콩·싱가포르를 보면 경제 발전이 삶을 얼마나 윤택하게 하는지 생생히 알 수 있다. 콩고에서 물고기를 팔아 생계를 유지하는 여성을 만났다. 이 여성은 온라인 주문을 받게 되면서 물고기를 미리 잡아놓아 썩히는 일이 없게 됐다. 이 여성의 가족은 이제 굶주림에서 벗어날 확률이 높아졌다.”(슈밋)

 “2009년 아프가니스탄의 여성 감옥에 갔을 때 수감자 대부분이 성폭력이나 간통의 피해자이면서도 자신이 죄를 지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들이 인터넷을 통해 자신들에게 인권이 보장돼 있음을 알게 된다면 사정은 매우 달라질 것이다.”(코언)

 - 인터넷 때문에 인류는 새로운 위험을 맞이하기도 했다. 집에서 폭탄 만드는 법을 배우고, 3차원(3D) 프린터로 사제 총을 만들 수도 있게 됐다.

 “신기술이 새로운 위험을 불러온 측면이 있는 것은 맞다. 그런데 IT 기술이 테러의 위험을 줄이는 측면도 있다. 한 탈레반 지도자는 수년간 숨어 다니다 조카의 결혼식에 가려고 전화를 해 은신처를 노출했다. 최근 미국 보스턴 폭탄테러 사건에서 용의자가 경찰에 빨리 포착된 것은 휴대전화를 차 안에 놓고 내려 위치가 추적됐기 때문이다. 인터넷은 테러범이나 범죄인의 활동에 큰 제약이 되기도 한다. 인터넷에서 3D 프린터로 총을 만드는 파일을 내려받는 순간 당신은 경찰의 요주의 인물 명단에 오를 수도 있다.”(슈밋)

 - 최근 당신들과 한국 가수 싸이가 함께 찍은 사진이 한국에서 화제가 했다. 싸이는 구글의 유튜브가 만든 스타이기도 하다. ‘싸이 열풍’의 원인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나는 오래전부터 K팝 팬이었는데, 언젠가 아시아를 벗어나 미국을 비롯한 전세계에서 인기를 얻으리라는 기대는 하고 있었다. 그런데 왜 하필 싸이가 갑자기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한국인이 됐는지는 잘 모르겠다는 게 솔직한 생각이다. 싸이에게도 물어본 적이 있는데, 그는 ‘나는 그저 사람들을 웃기려고 했을 뿐’이라고 대답했다.”(슈밋)

 - 한국의 새 대통령은 ‘창조경제’를 경제 정책의 핵심으로 내세웠다. 이를 이루기 위해 무엇을 우선적으로 해야 한다고 보나.

 “한국 정부에 기초과학, 교육, 창업정신 육성, 여성의 사회적 진출에 좀 더 힘을 쏟았으면 좋겠다는 말을 하고 싶다. 특히 여성들이 창업에 뛰어들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길 바란다.”(슈밋)

 “한국은 동북아는 물론 전세계의 핵심 국가로 떠올랐다. 한국처럼 물리적인 힘과 ‘사이버 파워’를 함께 갖고 있는 나라는 많지 않다. 세계 최고 수준의 이동통신기기나 철강을 만드는 기술력과 소프트웨어적 역량을 결합시키면 엄청난 국가적 기회를 잡을 것이라 믿는다.”(코언)

 - 구글도 많은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특히 유럽에서는 시장 독점, 사생활 침해 등의 논란에 휩싸여 있다. 국가 권력과 ‘사이버 권력’의 충돌로도 비춰진다.

 “유럽에서의 문제는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 민주주의가 발달해 있는 곳에서는 중류층이 추구하는 가치의 방향으로 사회가 나아간다. 따라서 그런 논란들이 크게 위협적이지는 않다. 진짜 걱정하는 문제는 중국처럼 시민들이 바라는 바를 무시하는 곳에서 생겨나는 일들이다.”(슈밋)

 “국가는 인터넷 세계에 대한 이해에 늘 뒤처진다. 2006년부터 4년 동안 미국 정부에서 일하던 때를 돌이켜보면 관료들은 유튜브와 페이스북이 뭔지 잘 몰랐다. 그들은 한때의 유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 그들은 ‘우리가 당시에 세계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 매우 중요한 부분을 간과했다’고 얘기하고 있다.”(코언)

 - 한국 방문 계획은.

 “올가을에 갈 생각이다. 한국에서 안드로이드(구글의 스마트폰 운영시스템)는 폭발적 성공을 거뒀다. 한국에는 우리가 함께하고 싶은 사업이 무궁무진하다.”

런던=이상언 특파원

◆에릭 슈밋=2001년부터 구글의 최고경영자(CEO) 자리를 맡아오다 2년 전 이사회 회장이 되면서 경영 일선에서 한발 물러섰다. 미국 프린스턴대(학사)와 UC버클리(석·박사)에서 전산학을 전공했다. 썬마이크로시스템즈 등에서 프로그램 개발자로 일한 뒤 구글 창업자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에 의해 구글에 영입됐다. 잡지 포브스의 세계 부호 명단에 138위로 올라 있다.

◆제러드 코언=23세 때인 2004년 미국 국무부 인턴으로 채용돼 2년 뒤 콘돌리자 라이스 당시 국무장관의 정책 수립을 돕는 직원으로 발탁됐다. 2010년까지 국무부에서 주로 비민주적 국가에서 인터넷이 미치는 정치적 힘에 대해 연구하다 구글의 싱크탱크인 구글 아이디어스의 초대 소장이 됐다. 미국 스탠퍼드대에서 역사·정치학을 전공하고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국제관계학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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