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은 내일 몇시에 하나요?"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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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술은 내일 몇시에 시작하나요?"
"아직 잘 모르겠는데요. 앞에 연세 많으신 분들이 끝나야 되니까...."
'그래도 대강이라도 ...."
"환자분이 40대 중반이시니까 오전은 안되고 점심시간 전후가 되겠는데요. 그것도 앞의 수술시간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고요"

저녁 병실 회진은 문제 있는 환자와 다음날 수술 예정인 환자 중심으로 돈다. 근데 다음날 수술에 대하여 설명이 끝나고 돌아서 나올려고 하면 꼭 물어오는 질문 중의 하나가 "내일 수술 몇 시에 하나?"이다.

환자 가족으로는 미리 알고 싶은 것이 당연하지.....마음의 준비도 하고, 수술실로 이동할 때 동행도 해 줘야 하고(이게 가족으로서는 꼭 해야 하고 해 주고 싶은 일이지), 교인이라면 목사님(신부님, 스님)도 시간 맞춰 오셔서 기도도 해야 하고...
수술실 입구에서 손도 잡고 용기를 주고 으싸으싸 빠이빠이 영화 장면도 나와야 하는데, 의료진 측에서는 몇 시에 시작되는지 알 수 없다니 답답하기 짝이 없는기라.

직장 나가야 하는 남편이 하루 휴가 내고 종일 죽치고 기다려야 된다는 말이 아닌가..
얼마 전 어떤 환자는 오후 쯤에 될거라고 해서 남편이 자리를 뜨고 없는데 갑자기 오전에 저승사자(환자 이송 보조원을 환자들은 이렇게 부른단다)가 와서 혼자 수술실로 내려가게 되어 매우 황당했다고 했는데......
어떻게 정말 환자나 환자 가족의 편의를 위해 수술시작 시각을 사전에 정확하게 얘기해 줄 수 없을까?
그래야 예정된 시간에 가족이 모이고 환자는 마음의 준비를 하고 수술에 임할 수 있지 않겠는가?

수술받는 환자나 환자가족의 애타는 마음을 의료진은 몰라도 너무 모르는 것 같다.
어떻게 병원에서 수술시간 하나 정확하게 짜지 못하나 ?
필자를 포함한 의료진들이 환자측의 애타는 마음을 모를 리가 없다.
알면서도 환자측의 요구대로 해줄 수가 없다. 수술을 하루에 1~2건 정도 하는 작은 병원이라면 모를까. 하루에 100~ 300건씩 하는 대형 병원이라면 얘기는 달라진다.

우선 수술실 확보가 가장 문제다. 수술실 배정은 각 과별로 외과, 산부인과, 정형외과,, 신경외과,흉부외과 등등으로 되고, 다시 각 과내에서 위장외과, 대장항문외과, 간담췌외과, 유방외과, 갑상선 내분비외과 등으로 배정되고, 갑상선내분비외과는 다시 수술집도의의 서열 순으로 배정된다.
필자는 톱 클라스 서열이니까 당연히 수술실 사용이 오전 첫 시간부터 가능하다. 따라서 수술이 예정된 여러 환자들 중 나이가 가장 많은 환자 분이 첫번째 수술자가 되니까 이 분만큼은 수술 시작시간을 알려 드릴 수 있다. 나머지 환자들도 나이 순으로 수술이 진행될 것이고.....
근데 때로는 이 순서가 뒤바뀌는 수도 있다. 바로 앞 환자의 검사결과가 이상하거나 미진해서 다시 검사를 해야 하는 사태가 일어날 때다.

순서가 바뀌어서 좋아하는 환자도 있지만 아직 보호자가 도착하지 않은 환자는 참 난처해 한다.
사랑하는 아내가 수술실로 끌려갈 때(?) 옆에서 지켜 주고 싶어 헐레벌떡 도착했으나 이미 수술은 시작되었다 하고...
허탈하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하고... ..(무슨 병원이 이래..... 이래도 되는 거야?)
그러나 수술실은 바삐 돌아간다. 한 환자가 끝나면 수술실 청소와 소독을 하고 곧 다음 환자를 부른다. 근데 이게 들쭉 날쭉이다. 앞 환자 수술이 예상외로 빨리 끝나기도 하고 반대로 아주 늦게 끝나기도 해서 다음 환자 수술 시작시각을 미리 가족에게 얘기해 줄 수가 없는 것이다.
집도의사가 서열이 낮은 젊은 외과의라면 더욱 더 오리무중이 된다.
사정이 이럴진데 수술전날에 정확한 수술 시작시각을 환자측에 알려 준다는 것은 절대로 불가능하고 불가능하다.

이런 사정인데도 마음 약한 우리 장항석 교수는 환자측 편의를 생각해 준답시고 " 내일 오후 2시쯤 수술이 될 것입니다" 했다가 예측대로 되지 않아 곤란을 당하기도 했다지 않은가. 이 친구 가끔은 너무 순진해 탈이지...
그럼 수술실 배정은 누가 할까? 외과에서 하냐구? 그러면 필자와 같은 외과의사에게는 좋겠지만 수술실 배정은 전통적으로 마취과에서 한다. 아마도 각 전문과목 환자들을 수술하려면 필연적으로 마취가 필요했기 때문에 그렇게 되었을 것이다.
수술실에서 마취과 의사의 위력을 우리 환자들은 알까?
마취의사들이 몽니를 부리고 마취를 제대로 안해주면 제 아무리 잘난 외과의사라 해도 별 볼일이 없어지는기라.

필자가 서열이 낮았던 젊은 시절에는 필자 환자가 수술을 받으려면 수술실 배정이 오후 늦게 되어 환자도 의사도 고충이 많았는기라.
지금은 그런 일이 없어졌지만 그 때는오후 5시가 넘으면 마취를 못해주겠다고 버티는 마취과 때문에 마음 고생을 얼마나 했는지 모른다.
불쌍한 필자의 환자는 수술 기다린다고 아침부터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배를 쫄쫄 굶고 있고......
마취는 못해 준다 하고.......지금 생각하면 말도 안되는 수술실 관행이 그 시절에는 통하고 있었으니 참.......,.

모름지기 마취과 의사한테 잘 보여야 환자는 물론 외과의사도 고생을 좀 덜 했던기라.
모르기는해도 지금도 이런 전통이 쪼끔은 남아 있을지도 ......
환자와 환자 가족들은 정말로 수술 시작시각을 알고 싶어한다.
가족 중에 누군가가 수술을 받는다는 것은 비상사태다.
이 비상사태 때 서로 격려하고 사랑을 확인하는 것은 지극히 인간적인 일이 아니겠는가.
"내일 수술은 몇 시에 시작하나요?"
그런데 의료진의 사정은 환자측의 소망에 부응할 수 있는 답을 못 내놓고 있으니 이 얼마나 답답한 노릇인가.
정말 무슨 방법이 없을까? 이 답답한 사정을 하느님은 알랑가 몰라......


☞박정수 교수는...세브란스병원 외과학 교실 조 교수로 근무하다 미국 양대 암 전문 병원인 MD 앤드슨 암병원과 뉴욕의 슬론 케터링 암센터에서 갑상선암을 포함한 두경부암에 대한 연수를 받고 1982년 말에 귀국했다. 국내 최초 갑상선암 전문 외과의사로 수많은 연구논문을 발표했고 초대 갑상선학회 회장으로 선출돼 학술 발전의 토대를 마련한 바 있다. 대한두경부종양학회장, 대한외과학회 이사장, 아시아내분비외과학회장을 역임한 바 있으며 국내 갑상선암수술을 가장 많이 한 교수로 알려져있다. 현재 퇴직 후에도 강남세브란스병원에서 주당 20여건의 수술을 집도하고 있으며 후진 양성에도 힘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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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수 교수 기자 sohopeacock@naver.com <저작권자 ⓒ 중앙일보헬스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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