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위기 때 연대보증 빚 70% 탕감한다는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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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외환위기 때 연대보증을 섰다가 빚을 떠안은 사람들이 회생 기회를 갖게 됐다.

 금융위원회는 21일 “외환위기로 도산한 기업의 빚을 대신 떠안은 연대보증자의 빚을 최대 70% 감면하겠다”고 밝혔다.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 채무자로 전락해 최장 16년간 빚 독촉과 경제적 어려움에 시달려 온 사람들에게 활로를 열어주자는 취지다.

 탕감 대상은 기업 부도율이 급등했던 97~2001년 생긴 연대보증 채무를 지금까지 갚지 못하고 있는 11만3830명이다. 이들이 안고 있는 빚은 13조2000억원에 이른다. 이해선 금융위 중소서민금융정책관은 “은행들은 이들을 ‘연대보증 연체자’로 등록해 금융거래를 할 때 적잖은 불이익을 줘왔다”며 “채무 감면이 이들에게 경제적으로 재기할 수 있는 발판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이번 대책은 박근혜 대통령이 올해 3월 청와대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을 받던 당시 사업 실패로 금융거래 자체가 막혀 새로운 경제활동을 못하는 국민이 많다”고 지적한 데 따른 후속조치다. 금융위는 외환위기 당시의 연대보증 채무를 감면해 주는 건 이번이 처음이라고 설명했다.

 채무조정 신청은 7월 1일부터 연말까지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를 통해 접수한다. 신청이 받아들여지면 이자는 자동으로 탕감되고, 원금의 40~70%를 깎아준다. 나머지 빚은 최장 10년간 분할 납부하면 된다. 신용불량자는 채무 감면과 함께 은행연합회에 남아 있는 연체기록도 삭제된다. 채무조정 한도는 10억원으로 정했다. 대상자 11만여 명 중 97%가 10억원 이하의 연대보증 빚을 지고 있다. 이를 위해 캠코는 다음달부터 연대보증 채무자가 빚을 진 보증회사·금융회사 등으로부터 관련 채권을 사들이기로 했다. 이해선 정책관은 “오래된 연체 채권은 값이 싸므로 캠코가 투입하는 돈이 200억원에 못 미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대책의 실효성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연대보증 채무를 ‘오래된 남의 빚’이라고 여기고 살아온 채무자가 많아 실제 채무조정을 신청할 사람은 적을 거라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10년도 더 지난 다른 사람의 채무를 대신 갚겠다고 적극적으로 나설 사람이 얼마나 되겠느냐”고 반문한다. 특히 기업 연대보증 채무는 소액의 개인채무와 달리 규모가 크다. 보통 수억원이기 때문에 원금의 70%를 깎아준다고 해도 여전히 부담스럽다.

조남희 금융소비자원 대표는 “연대보증자 중에는 100만~200만원도 갚기 어려운 저소득층이 많다”며 ”원금을 깎아준다고 채무조정을 신청하는 이는 많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2003년 카드사태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연대보증을 떠안은 채무자와의 형평성 논란도 제기되고 있다. 

이태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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