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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앞에 남북남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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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프랑스 파리에서 19일 열린 세계탁구선수권 혼합복식 결승전에서 한국 박영숙-이상수 조와 북한 김정-김혁봉(왼쪽부터) 조가 격돌했다. 북한에 2-4로 패했지만 한국 혼복은 이번 대회에서 중국을 두 번이나 꺾는 성과를 거뒀다. [사진 월간탁구]

지금 세계 탁구는 중국 천하다. 그러나 한국은 혼합복식에서 잇따라 파란을 일으켰다.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제52회 세계탁구선수권에서 한국 혼복 대표팀이 중국을 두 번이나 제압했다. 조언래(27·에쓰오일)-양하은(19·대한항공) 조는 16강에서 천치-후리메이를 4-3으로 꺾었다. 이상수(23·삼성생명)-박영숙(25·한국마사회) 조는 준결승에서 왕리친-라오징웬 조를 4-1로 누르고 결승에 진출했다.

 19일 새벽(한국시간) 열린 결승전은 남북 ‘코리안’의 맞대결이었다. 이상수-박영숙 조는 북한 탁구 간판 김혁봉(28)-김정(24) 조와 금메달을 다퉜다. 남북 모두 세계탁구선수권 우승은 머나먼 과거 일이다. 한국은 1993년 예테보리(스웨덴)에서 현정화가 여자 단식 우승을 차지한 이후 20년째 1위에 오르지 못했다. 북한은 36년 전인 77년 버밍엄(영국)에서 박영순이 여자 단식에서 우승한 게 마지막이다.

왼쪽부터 이상수(남)·김정(북)·박영숙(남)·김혁봉(북).

 북한의 핵 위협 속에서 탁구에서 남북이 대결하는 모양새라 외신의 관심도 컸다. 중국 탁구가 세계선수권대회의 특정 종목에서 결승에 오르지 못한 건 2003년 파리 세계선수권 남자 단식 이후 10년 만이다.

 경기는 팽팽했지만 한국은 마지막 고비를 넘지 못하며 2-4(6-11, 8-11, 3-11, 11-6, 11-8, 7-11)로 패했다. 이상수-박영숙 조는 1~3세트를 내준 뒤에도 포기하지 않고 4·5세트를 빼앗으며 역전극을 노렸지만 6세트에서 7-11로 패하며 준우승에 만족했다. 한국으로서는 두 번씩이나 만리장성을 넘고도 북한이라는 벽을 넘지 못한 셈이다. 한국이 세계탁구선수권 은메달을 딴 건 2003년 남자 단식 주세혁(33·삼성생명) 이후 10년 만이다.

 김혁봉과 김정 조는 북한이 2000년대 초반부터 집중 육성한 탁구 영재다. 2007년 세계선수권부터 호흡을 맞춰 왔다. 반면 이상수-박영숙 조는 호흡을 맞춘 지 2개월밖에 되지 않았다. 개인 세계랭킹에서 이상수가 47위(국내 7위), 박영숙은 77위(국내 12위)에 불과하다. 하지만 오른손 셰이크핸드인 이상수의 드라이브 공격과 왼손 셰이크핸드 박영숙의 짧은 볼 처리 능력이 조화를 이룬다. 특히 강하게 몰아붙이는 공격 탁구로 중국을 단숨에 넘어서는 저력을 보였다. 강문수(61) 대표팀 총감독은 “이상수-박영숙 조가 중국을 쉽게 꺾는 경기력을 보고 다른 나라에서 ‘중국을 넘을 나라는 한국밖에 없다’며 칭찬이 자자했다”고 했다.

 시상식을 치른 뒤 혼복 결승에서 경쟁한 네 선수는 함께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아담 샤라라 국제탁구연맹(ITTF) 회장은 “남북이 선의의 경쟁을 펼치는 장면이 훈훈했다”고 말했다. 프랑스 AFP는 ‘북한이 동해상에 유도탄을 발사하는 등 긴장 관계에서도 두 조 모두 완벽한 하모니를 이뤘다’고 전했다.

김지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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