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에 슬리퍼 신고 오니 운동화 내 준 '한국의 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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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김선빈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김해 동상시장에서 유성식육점을 경영하는 오경란 대표는 운영혁신에 성공한 강소상인이다. 그가 이렇게 평가되는 이유는 각고의 노력 끝에 모든 상인이 부러워할 정도의 매출과 수익을 올리고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유통시장 개방의 여파로 자신의 점포는 물론 주변의 시장 상인들이 모두 곤경에 처했을 때 근심하고 낙담하기보다는 먼 미래를 내다보며 착실하면서도 열정적으로 경영을 혁신했다. 또 주변 상인들까지도 그가 추진하는 변화에 동참하도록 견인하는 데 성공했기에 주목받고 있는 것이다.

 오 대표를 성공으로 이끈 결정적 동인은 현실을 직시하는 용기였다. 보통 사람이면 경영부진에 직면하면 좌절할 만도 하지만 그는 굴하지 않았다. 점포 혁신의 벤치마킹 대상을 백화점과 대형마트로 잡고 세밀하게 살핀 뒤 주변의 우려에 아랑곳하지 않고 냉장고를 비롯해 점포 내 설비를 전면 교체하는 고가의 리모델링을 감행했다. 수천만원의 리모델링 비용을 어떻게 감당하겠느냐는 주위의 걱정 어린 시선을 고객 증가로 화답하면서 결국에는 동상시장 상인들이 리모델링 행렬에 참여하도록 유도했다.

 오 대표가 유성식육점이 성공할 수 있었던 또 하나의 요인은 틈새시장에 대한 체계적인 공략이다. 그는 동상시장에 찾아오는 외국인 근로자들에 주목했다. 이들을 단골고객으로 유치하려면 먼저 그들을 이해하고 마음을 여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에 착안했다. 그는 처음에는 가벼운 인사를 손님들의 모국어로 건네면서 친분을 쌓았고 진심을 다한 친절로 다가섰다. 추운 날씨에 슬리퍼를 신고 온 외국인 근로자를 보면 운동화를 내주는 등 어머니·누나와도 같은 한국의 정을 느끼도록 해주었다.

 오 대표가 진심만으로 멀리 떨어진 부산·진해 등에서도 고기를 사기 위해 찾아오는 점포로 만든 것은 아니다. 그는 태국·캄보디아 등 외국인 근로자들의 식성과 유사한 지역의 전통시장을 방문해 어떤 부위의 고기가 잘 팔리고 가격은 어느 정도인지를 조사해 점포운영에 적용했다. 또 대형 도매상과 직거래를 통해 가격경쟁력도 확보했다. 유성식육점이 걸어가는 혁신의 길은 시장조사와 조달뿐만 아니라 판매와 마케팅에서도 남다르다. 독신의 외국인 근로자를 배려하는 1000원 단위 소량 포장 판매와 함께 부위별 요리법도 친절하게 설명해 줌으로써 호평을 얻고 있다.

김선빈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 중앙일보·삼성경제연구소 공동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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