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지구촌 입 홀려라 … 일본 '0.06%명품' 고베 비프 승부수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6면

지난달 26일 일본 효고(兵庫)현 고베(神戶)시 중앙 서부시장.

 일본 최고의 쇠고기로 불리는 ‘고베 쇠고기(고베 비프)’의 총 60%가 거래되는 곳이다. 80평 남짓한 보관창고에선 6명의 검사관이 심각한 표정으로 쇠고기에 현미경을 들이대고 있다. 일부는 손전등까지 비추면서 육질을 검사했다. ‘고베 비프’란 칭호는 여기서 정해진다.

▷여기를 누르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최고급 와규(和牛·일본 재래종 소)인 효고현 다지마(但馬)우 중에서도 또다시 최고위 등급 기준을 충족시킨 쇠고기에만 ‘고베 비프’란 이름을 붙일 수 있다. ‘통과 확률’은 약 55%. 일본 내 연간 총 쇠고기 소비량 120만t 중 고베 비프 출하량은 고작 720t(0.06%)이다. ‘희소 보석’이라 불리는 이유다.

 마리당 평균 100만 엔(약 1100만원) 하던 ‘고베 비프’에 최근 격변이 일고 있다. 국내 유통을 고집하다 지난해부터 수출을 시작한 것이다. 30년 만의 일이다. 1차 목표는 미국과 홍콩·마카오·태국·싱가포르다. 전국농업협동조합연합회 효고현본부 축산과 데라오 다이스케(寺尾大輔) 조사역은 “지금까지 전 세계에서 ‘고베 비프’란 이름으로 유통된 쇠고기는 다 가짜라고 보면 된다”며 “이제 ‘진짜 고베 비프’로 세계시장에서 당당히 평가받고 싶다”고 말했다.

 조금이라도 육질을 좋게 하기 위한 노력도 다양하다. 고베시 가와기시(川岸) 목장에선 섬세하고 자주 배탈을 일으키는 다지마우를 안정시키고 식욕을 돋우기 위해 24시간 모차르트의 음악을 틀어놓는다. 다니모토 데쓰노리(谷元哲則) 축산과장은 “일본의 TPP(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 참가가 고베 비프의 수출을 늘릴 수 있는 하나의 돌파구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0.06%’의 파워로 세계 정복에 나서겠다는 의욕이 넘친다.

와규 중에서도 최고 등급 ‘고기의 보석’

 교토 도심에서 30분가량 떨어진 히가시야마(東山). 정오 무렵이 되자 운치 있는 돌담길 끝자락에 위치한 부지 1000평 규모의 고풍스러운 건물에 택시를 탄 외국인들이 속속 들어섰다. 미국·중국·싱가포르 등 국적도 다양했다. 일본요리점 ‘기쿠노이(菊乃井)’를 찾는 이들이었다. 예약 손님으로 13개의 방은 이미 가득 차 있었다.

 이 음식점은 세계적 권위의 미슐랭 평가에서 최고로 치는 별 셋을 2009년 이후 연속으로 받고 있다. 지점 2곳(교토 도심, 도쿄 아카사카)은 동일 국가, 동일 음식점에는 별 셋을 중복해서 줄 수 없게 돼 있는 규정 때문에 별 둘이다. 1921년 창업해 101년의 전통을 자랑하지만 이곳의 3대째 주인 무라타 요시히로(村田吉弘·62)의 ‘음식 철학’은 “전통에 구애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식자재도 국적을 따지지 않는다. 주방 역시 미국인, 노르웨이인이 섞여 있었다. 고객도 외국인이 전체의 3분의 1 이상이다. “세계로 눈을 돌린 이유가 뭐냐”고 묻자 기다렸다는 듯 답이 돌아왔다. “솔직히 한국에 다 져 버렸다. 이제 일본이 해외에 팔 수 있는 건 식문화 정도밖에 없는 것 아니냐.”

 “그러다 일본 요리가 뒤죽박죽 되는 것 아니냐”고 묻자, “고객에게 ‘(일본) 요리란 이런 것’이라 강요해선 안 되는 법”이라고 손사래를 쳤다. 미국의 초밥집에는 캘리포니아 롤, 프랑스 초밥집에는 초콜릿 초밥이 있듯, 그 지역 고객의 입맛과 문화를 감안한 세계화 전략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현지화가 세계화 … 초콜릿 초밥도 있다

 단 일본 요리의 핵심적 가치인 ‘저칼로리’는 양보할 수 없는 마지노선이다. 무라타 사장은 “예컨대 일본의 전통 가이세키 요리(일본식 코스 요리)는 보통 65개 식재료로 구성된 10개 품목이 나오는데 총 칼로리가 1000㎉밖에 되지 않는 반면 프랑스 코스 요리의 경우 23개 식재료에 2500㎉나 된다”며 “이걸 살린다면 일본 요리는 세계에서 충분히 성공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실제 일본 전국의 일본요리점 차원에서 보다 효과적 방법으로 염분을 줄이기 위한 연구가 주요 대학 연구소와 공동으로 진행 중이다. 이른바 ‘요리의 과학화’다.

 일본의 또 다른 식문화 세계화 전략은 ‘오감 만족’이다. 단순히 맛만 추구하는 게 아니라 그릇의 색상과 형태, 상에서의 음식 배치, 음식을 나르는 종업원의 동선까지 종합적으로 섬세하게 분석한다. ‘일식 세계화’란 단어를 쓰지 않고 ‘식문화 수출’이란 표현을 고집하는 이유다. 무라타는 “음식점은 종합예술을 선보이는 리빙 뮤지엄(살아 있는 미술관)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음식점은 종합예술극장 … 오감 만족 전략

 내친 발걸음에 오사카(大阪) 야마자키(山崎) 마을에 위치한 산토리 야마자키 증류소에도 들렀다. ‘일제 위스키’가 처음으로 생산된 성지라 불리는 곳이다. 세계 시장에서 스코틀랜드산 위스키에 눌리기만 하던 일본 위스키는 섬세한 맛을 추구하는 소비자를 끌어들이는 데 성공, 비약적인 성장을 하고 있다. 지난해의 경우 ‘히비키(響)’의 미국 수출 물량은 전년 대비 2.6배, 유럽연합(EU) 시장은 1.8배로 늘었다. ‘하쿠슈(白州)’는 중국 수출이 5.2배, 대만이 5.2배로 껑충 뛰었다. 최근 10년간의 전체 수출 규모를 보면 대략 20배의 신장세다. ‘히비키 30년’과 ‘야마자키 25년’ 같은 프리미엄 위스키는 웃돈이 2배 이상 붙을 정도라 한다. 이 회사의 야가사키 데쓰야(矢ヶ崎哲也) 위스키부 과장은 “저출산 추세로 일본 인구가 점점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주요 목표를 해외시장으로 돌리고 있다”고 말했다.

 위스키뿐 아니라 일본 정종(사케)도 마찬가지다. 일본 국내 수요는 전성기의 3분의 1로 떨어졌지만 적극적인 수출 전략으로 10년 전에 비해 해외 수출 물량은 2배가량 뛰었다.

요리를 세계무형문화유산 등록 추진

 일식 세계화는 일본 정부와 음식점들의 생존 전략이다. 일 정부는 의료산업 등과 더불어 ‘식문화 수출’을 ‘미래의 성장동력’으로 책정한 상태다. 이를 위해 일 정부는 일식 관련 민간 부문으로 하여금 세계로 눈을 돌리도록 촉진하는 한편 일본 요리의 우수성을 부각시키기 위한 국가 전략을 차곡차곡 진행 중이다. 민관(民官) 총력전이다.

 대표적인 게 일본 요리의 유네스코 세계무형문화유산 등록 신청이다. 현재 프랑스·지중해 요리 등 전 세계에 4건에 불과한 만큼 일본 요리를 같은 반열에 올려 세계화 전략의 성장 엔진으로 삼겠다는 방침이다. 결과는 올해 중에 최종 결정된다.

오사카·교토·고베=김현기 특파원

◆ “한식 세계화 성공하려면 양념 버리세요”

‘기쿠노이(菊乃井)’ 사장 무라타 요시히로(村田吉弘·사진)는 한식 세계화에 대해서도 조언했다.

 - 한식이 보다 세계에 파고들려면 어떻게 해야 한다고 보나.

 “양념을 버려야 한다. 일본 사람 입장에선 한국의 된장찌개는 너무 맛이 진하고 미역국은 너무 싱겁다. 반대로 일본의 스이모노(吸い物·맑은 장국)는 한국인에게 진하고 미소시루(일본 된장국)는 싱겁게 느껴질지 모른다. 그 나라 특성에 맞게 하는 수밖에 없다. 나라마다 미묘한 밸런스의 차이가 있다. 세계적 레벨과 평균화하는 게 중요하다. 한식의 경우 고춧가루나 마늘이 많이 들어간 요리는 와인과 맞지 않는다. 한국에선 다른 주장을 할지 모르지만 현실이 그렇다. 해외로 나아가려면 그 국가의 식생활을 잘 관찰하는 수밖에 없다.”

 - 그렇다면 한식 중 뭐가 세계에서 인기를 얻을 수 있겠나.

 “단연 삼계탕이다. 양념도 크게 필요 없고 닭고기라 어디 서나 인기를 끌 것이다.”

 - 그 밖에 조언을 한다면.

 “단품으론 한계가 있다. 제대로 구성된 코스 요리를 더 개발해야 할 것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